제목 | 하느님 나라의 충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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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근호 | 작성일2003-08-29 | 조회수1,50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03.08.29. 오늘의 말씀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나의 백성에게 일러 주어라.....두려워하지 마라....내가 네 옆에 있어 도와 주리라. "무엇이 든지 다 들어 주마."....이미 맹세한 바도 있고 또 손님들이 보는 앞이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양약고구(良藥苦於口)". 이에 대해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 은나라 탕왕(湯王)은 간하는 충신이 있었기에 번창했고,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은 따르는 신하만 있었기에 멸망했다. 임금이 잘못하면 신하가, 아버지가 잘못하면 아들이, 형이 잘못하면 동생이, 자신이 잘못하면 친구가 간해야 한다. 그리하면 나라가 위태롭거나 망하는 법이 없고, 집안에 패덕(悖德)의 악행이 없고, 친구와의 사귐도 끊임이 없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충언을 하는 신하를 충신이라 한다. 그러나 항상 충신에게는 천적이 있다. 간신이 그들이다. 간신은 임금의 입과 귀를 달콤한 것에 길들여지게 한다. 결국 충신은 간신에 의해 제거되고 만다. 충신이 많으면 탕왕처럼 성군이 되고 나라를 태평성대로 만드나, 간신이 많으면 주왕처럼 멸망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복음의 헤로데왕, 그는 성군의 자질을 타고 난 거 같다. 세례자 요한의 진언을 기꺼이 들어왔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세례자 요한을 보호하기까지 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자질을 완성시키지 못했다. 그는 결국 충신을 죽이고 만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 첫째는 간신인 헤로디아와 그 딸 때문이요, 둘째는 그의 경솔함과 체면 때문이다.
헤로디아와 그녀의 딸은 헤로데를 감각적인 것에 빠지게 만든다. 춤으로 헤로데를 즐겁게 한 그들은 충신, 세례자 요한을 제거하고자 한다. 헤로데는 너무 경솔하게 맹세하고 말았다. 또한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왕으로서의 체면과 권위가 꺽이는 것을 걱정한 나머지 세례자 요한을 죽이라 한다. 결국 그는 죽고 그의 나라는 패망하고 만다. 충신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하느님 나라 건설의 밑거름이다.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아에게 두려워 말고 외치라 하신다. 정의와 진리의 외침은 계속되어야 한다. 죽을 지라도....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다. 하느님의 신하이다. 우리는 충신인가? 간신인가? 감각적인 것, 체면, 권위를 중시한다면 간신의 무리와 한통속인 간신이요, 정의와 진리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잘못에서 돌아설 줄 안다면 우리는 충신이다. 하느님 나라의 태평성대를 이룰 일꾼이 될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충고를 듣고, 나의 약점을 지적당할 때 나는 어땠는가? 감각적인 것을 찾고, 체면과 권위를 지키고자 했던 모습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람들의 칭찬과 떠받듬에 익숙해진 나는 오늘도 세례자 요한을 죽이는 헤로데가 아닌가?
"주님, 제 귀를 열어 주소서. 또한 제가 정의를 외치는 충신이 되게 하소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주니의 도우심을 믿고 주님의 도구로, 충신으로 길을 가고자 선택한 모또, "내가 네 옆에 있어 도와주리라." 귀를 간지르고, 입에 단 것만 선택했던 나 자신을 돌이켜 보며, 첫 마음으로 되돌아가고자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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