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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연중22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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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9-02 조회수1,355 추천수12 반대(0) 신고

◎ 2003년 9월 2일 (화) -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오늘의 복음]  루가 4,31-37

<나는 당신이 누구이신 지 압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때에 31) 예수께서 갈릴래아의 마을 가파르나움으로 내려 가셨다. 거기에서도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32) 그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듣는 사람마다 그 가르침에 경탄하여 마지않았다. 33) 때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가 들린 한 사람이 와 있다가 큰소리로 34) "나자렛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이신 지 압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십니다" 하고 외쳤다.

35) 예수께서는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썩 나가거라" 하고 꾸짖으셨다. 그러나 마귀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사람을 쓰러뜨리고 떠나갔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36) 이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놀라며 "정말 그 말씀은 신기하구나!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명령하시니 더러운 귀신들이 다 물러가지 않는가!" 하면서 서로 수군거렸다.

37) 예수의 이야기가 그 지방 방방곡곡에 퍼져 나갔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마귀의 실존

 

  어제 복음(4,16-30)에서 보았듯이 나자렛 회당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통하여 하느님의 절대적인 인류구원 계획과 그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선포하셨다. 예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를 그 증거로 봉독하셨고, 이것으로 공생활의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셨다. 사람들은 예수를 너무 잘 안다는 근거로 한 발짝 물러난다. 예수께서는 "사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24절)는 말씀으로 자신을 위로하시지만,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기원전 850년경)에 하느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베푸신 축복을 언급하시면서(1열왕 17,7-16; 2열왕 5,1-14), 하느님의 손길이 이스라엘을 떠났음을 지적하셨다. 화가 치밀어 오른 고향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예수를 벼랑으로 끌고 가서 죽이려 했으나, 글쎄 아직은 시기상조(時機尙早)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 한 가운데를 지나 가야할 길을 계속 가신다.(30절)     

 

  마르코복음(1,21-28)에서와 마찬가지로 루가복음은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의 첫 번째 행적으로 "마귀 들린 사람의 치유", 즉 구마기적을 보도한다. 나자렛을 떠나 가파르나움으로 오신 예수께서 가르침을 내리신 후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해 주신 것이다. 왜 예수님의 첫 번째 행적이 구마기적인가? 왜 마르코와 루가는 예수님 공생활의 첫 번째 행적으로 마귀 들린 사람의 치유를 보도하는 것일까?

 

  오늘날 마귀나 귀신에 관하여 얘기하면 사람들은 웃는다. 요즘에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다가 엑소시스트 영화의 제목이나 소재로나 쓰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마르 7,21-22) 등 사람 안에서 나오는 온갖 악(惡)에 관하여 얘기한다면, 아마 웃는 입을 다물게 될 것이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마귀나 악의 기운을 실존(實存)하는 세력으로 간주하였고, 사람과 결탁된 이런 기운을 몰아내는 일이 예수님의 일상적 소관(所關)만은 아니었다. 마귀나 악은 비인격적으로 존재하는 독자적인 세력일수도 있고, 인격적으로 사람에게 속한 개성일수도 있다. 우리가 "나쁜 사람" 또는 "악한 사람"이라고 할 때, 그 사람은 이런 나쁘고 악한 기운과 세력에 습관화된 사람을 말한다. 이 습관이 행동으로 성취되면 죄(罪)가 되는 것이다.

 

  성서(聖書)는 마귀에 대한 어떤 정확한 정의도 내리지 않고 있다. 다만 마귀가 사람과 결탁하였을 때의 현상을 보여준다. 마귀 들린 사람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보다 더 이상한 현상을 보이는 것에 주목하여야 한다. 마귀 들린 사람은 더 이상 "자기자신"이 아닌 셈이다. 모든 가치와 규칙과 기준이 고유한 자신의 의도를 벗어나 버리는 것이다. 필자는 사도 바울로가 로마서간에서 훌륭하게 풀어 가는 "마음의 법칙과 육체의 법칙"의 관계에 참으로 공감한다. 바울로는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선(善)은 행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악(惡)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결국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들어 있는 죄(罪)입니다"(로마 7,15.19-20) 라고 하였다.

 

  선(善)이 모자라면 악(惡)이요, 악(惡)이 행동하면 죄(罪)가 되고, 악(惡)이 될 수 있는 생각은 이미 사람의 마음 안에 들어 있다. 그런 생각을 태도로 보이거나 행동으로 옮기고 나면 후회해도 소용없다. 마음에 들어 있는 악한 생각을 쫓아낼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길 때, 우리는 조금씩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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