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Deuteronomy 11:13
오늘 너희에게 내리는 나의 명령을 귀담아 들어 너희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쏟아 그를 섬겨라.
"If you carefully obey all the commands I am giving you today, and if you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soul, and if you worship h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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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에 나타난 애정의 전부를 합치더라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에는 비교가 되지 않을게요" 나의 멋진 현처, 나의 귀여운 남덕, 나만의 소중한 사람이여 8월24일 보낸 편지를 9월6일에야 받았소,
건강하다니 무엇보다 반갑구려, 어제부터 석유로 간단히 15분 정도로 되는 석유곤로를 사다가 혼자 밥을 끓여 먹으면서 제주도 생활도 연상하면서 귀여운 남덕이가 옆에 없는 것이 무척 쓸쓸하지만 남에게 신세를 지지 않아 마음도 편하고 밖에 안나가도 되고....하루 종일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오히려 편하고 좋소, 그러나 역시 그대들이 없는 홀아비 생활은 하루 종일 마음을 공허하게 하오,
7월 말에 토오쿄에 갔을때 여러 가지로 당신의 입장을 괴롭게 한 것은 주인으로서, 아빠로서, 화공으로서, 송구했을 뿐이오. 마음 아프게 생각할 따름이오. 하지만 그대들을 만나 여러 가지 사정도 알고 분명한 현실적인 각오도 새롭게 하였소, 정신을 가다듬고 최선을 다하려는 각오로 이제부터는 정말 악착같이 노력할 테니 걱정 마오. 대향(이중섭의 호)의 진정과 변하지 않는 애정만을 믿고 참고 기다려 주기 바라오.
당신은 매일 같이 두 아이를 데리고 짬짬이 연약하고 가냘픈 손으로 삯바느질에 열심이겠구려. 당신은 실로 드문 갸륵한 여인이오 당신의 하늘이 감동할 정도로 따뜻한 진정에 나는 다만 감사할밖에 없소. 대향은 지금 우리 네 가족의 장래를 위해서 목돈을 마련키 위한 제작에 여념이 없소. 대향이 얼마간의 생활비를 버는 데도 무능하다는 그런 생각으로(조금도)(꿈에도)실망하지 말고 용기백배해서 기다리고 있어 주기 바라오. 기다려 주겠지요?
어떠한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고 해도, 어떠한 젊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현재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열렬한 애정만한 애정이 또 없을 것이오. 일찍이 역사상에 나타나 있는 애정의 전부를 합치더라도 내가 현재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열렬한 애정만한 애정의 전부를 합치더라도 대향, 남덕이 서로 열렬하게 사랑하는 참된 애정에는 비교가 되지 않을게요. 그것은 확실하오.
당신의 멋지고 훌륭한 인간성이 대향의 사랑을 샘처럼 솟게 하고, 화산처럼 뿜어오르게 하고, 바다처럼 파도치게 하는 것이오. 화공 대향의 가슴에 하늘이 베풀어 준 나만의 보배로운 아내, 나만의 슬기로은 아내. 참된천사, 나의 남덕이여. 대향의 열렬하고 참된 애정을 받아주시오.
당신은 어찌하여 그렇게 놀라웁소? 당신의 발가락에 몇 번이고 입맞추는 대향의 확실하고 생생한 기쁨은 당신이외의 세상의 온갖 여신의 온갖 아름다운 모든 꽃잎에 입맞추는 기쁨에 비교할 수도 없는 최대 최고의 기쁨이오.
1953년 9월 초 무렵, 이중섭(대향, 애칭 아고리)이 그의 아내 남덕(마사코, 한국귀화 )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 두 사람은 이중섭이 23살 때 일본 유학 중에 같은 대학 같은 과에 다니던 학생으로 만남. 이후 이중섭은 아사코를 향해 그림엽서를 그려보내기 시작했고, 아사코는 부유한 집안과 자신의 전공을 버리고 현해탄을 건너 이중섭과의 사랑을 택했다.(성서속의 사랑 11월-부터의 사랑의 화가 이중섭 참고). 이후 아들 둘을 낳고 생활고에 견디다 못해 일본으로 다시 넘어간 남덕은 이후 단 한번 중섭을 본 것이 전부다. 여기에 소개된 마지막 편지를 쓰던 무렵 이중섭은 제주도에서 참으로 외롭고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다음해 1956년 이중섭은 정신병자로 오인되어 정신병원에 갔다가 한 요양원에서 홀로 숨을 거두었다. 3일 후에나 이 사실이 알려져서 장례가 치루어졌다.
"세상은 언제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오." 나의 귀엽고 소중한 남덕군, 새해 복 많이 받았소? 하루 바삐 건강해 주시오. 그 뒤 몸 컨디션은 어떤지요? 12월8일자 편지는 12월11일에 받고 당신의 곤란한 입장 잘 알았소.
그러나 날마다 마음이 무거워서 오늘까지 답장을 쓰지 못했소. 올해도 또 혼자 쓸쓸하게 새해를 맞아 매일같이 어둡고 공허한 기분이오. 여러가지 사정도 있지만 이 이상 연기해 본들 해결이 될 리는 없고 차츰 복잡해 질 뿐이오. 그러다가는 모든 것이 끝장이 나 버릴거요. 내가 그리로 가도 누구에게나 신세를 지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정양해 주오.
당신 의견대로 연기해 볼 생각도 들지만 내가 이상 연기하면 돌이킬 수 없는 서로의 불행을 초래하는 결과 밖에 안되오. 이번 일이 잘 되든지 아니면 수속을 밟아 당신들이 빨리 이리로 오든지, 그 어느 쪽도 안 된다면 서로 헤어지는 것 밖에는 길이 없겠소.
이 사정 저 사정에 끌려서 자꾸만 연기를 하면 점점 꼼짝할 수 없는 불행한 결과를 낳을 뿐이오. 내가 가더라도 좁은 방 한 칸에 두어달 먹을 식비만 있으면 내 힘과 노력으로 하루 한끼나 두 끼 먹고도 생활을 시작할 수 있소. 어떤 노동이라도 할거니 염려하지 말고 내가 가는 일에 찬성해 주시오. 세상은 언제나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라오.
조건이 좋아질 때가지 기다려 본들 결코 우리 생각대로 조건이 좋아지는 건 아닐거요. 또 무슨 다른 사정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마음이 정해지거든 용감하게 행동하는 것이 살아가는 유일한 태도요. 발레리의 시의 한 구절처럼 ’지금이야말로 굳세게 강하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될 때요
1954년 1월 7일 편지 중에서
소처럼 무거운 걸음을 옮기면서 나의 오직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이여! 나만의 사람. 마음의 사람인 남덕이여! 나는 당신의 편지와 그립고 그리운 아이들과 당신의 사진을 기다리고 있소.
지금은 싸늘하고 외로운 한밤중...., 뼈에 스미는 고독 속에서 혼자 텅 빈 마음으로 있소. 그림도 손에 잡히지 않아 휘파람,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시집을 뒤적이기도 하오. 당신의 편지가 늦어지는 걸로 봐서 혹시 당신이나 아이들이 감기로 눕지나 않았는지요? 억척으로 견디어 하루바삐 감기 따위는 쫓아버리고 건강하다는 반가운 소식 길게 길게 써보내 주시오.
이렇게 소식이 뜸해지면 맥이 풀리오. 아고리군은 그저 편하게 지내면서 제작을 하는 건 아니오.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소처럼 무거운 걸음을 옮기면서 안간힘을 다해 제작을 계속하고 있소. 오직 하나의 즐거움, 매일 기다리는 즐거움은 당신에게서 오는 살뜰한 편지뿐이오. 당신의 편지를 받는 날은 그림이 한결 더 잘 그려지오. 정말 외롭구려. SOS....SOS....SOS.... 하루빨리 건강하고 다사로운 기쁨의 편지 보내 주기 바라오.
오늘밤은 이쯤에서 당신과 아이들의 건강을 빌면서 내일의 활기찬 제작을 위해 자야겠소. 내일은 태현,태성에게 재미있는 그림을 그려 편지와 함께 보내겠소. 어서길고 긴 반가운 소식과 당신의 사진을 보내 이 아고리군으로 하여금 힘을 내게 해 주시오. 나만의 사람, 나의 보배 남덕군.... 자 살뜰하고 긴 뽀뽀를...., 당신과 함께 있는 꿈을 꾸면서 잠자리에 들려오. 푹자고 내일은 걸작을 그릴 작정이오. 힘을 내서 버텨 봅시다.
1954년 11월 21일 편지 중에서
"새로운 표현과 대작을 그리는 것이 염원이오." 나의 최고 최대 최미의 기쁨, 그리고 한없이 상냥한 최애의 사람, 오직 하나인 현처 남덕군. 잘 있었소?
나는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꽉 차있소. 수속이 잘 안된다고 해서 속을 태우거나 초조해 하지마오. 소품전이 끝나면, 곧 구형의 도움으로 가게 될거요. 당신의 아름다운 마음이 동요하지 않도록 해주기 바라오. 하루종일 제작을 계속하면서 남덕군을 어떻게 해서 행복하게 해줄까.... 하고 그것만을 마음속에서 준비하고 있다오.
나의 소중하고 소중한 멋진 천사 남덕군, 힘차게.... 마음을 더욱 밝고 건강하게 가져주오. 이제 얼마 안있어 살뜰한 당신의 마음과 아름다운 당신의 전부를 포옹할 수 있는 기쁨을 생각하면 아고리는 만족해서 마음 속으로 혼자 싱글벙글 웃고 있다오.
사람들은 아고리가 제 아내만을 생각하고 있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아고리는 당신과 같은 사랑스런 애처와 오직 하나로 일치해서 서로 사랑하고, 둘이 한 덩어리가 되어 참인간이 되고, 차례차례로 훌륭한 일(참으로 새로운 표현과 계속해서 대작을 제작하는 것)을 하는 것이 염원이오.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소중한 애처를 진심으로 모든 걸 바쳐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결코 훌륭한 일을 할 수 없소. 예술은 무한한 애정의 표현이오. 참된 애정의 표현이오. 참된 애정에 충만으로써 비로소 마음이 맑아지는 것이오. 마음의 거울이 맑아야 비로소 우주의 모든 것이 올바로 마음에 비치는 것 아니겠소? 다른 사람은 무엇을 사랑해도 상관이 없소. 힘껏 사랑하고 한 없이 사랑하는 남덕의 사랑스런 모든 것을 하늘이 점지해 주셨소. 다만 더욱더 깊고 두텁고 열렬하게, 무한히 소중한 남덕만을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열애하고, 두 사람의 맑은 마음에 비친 인생의 모든 것을 참으로 새롭게 제작 표현하면 되는 것이오.
나의 아스파라가스군(발가락군)에게 몇번이고 몇번이고 살뜰한 뽀뽀를 보내오. 한없이 부드럽고 나굿한 나만의 아스파라가스군에게 따뜻한 아고리의 뽀뽀를 전해 주구려. 나만의 소중한 감격, 나만의 아스파라가스군은 아고리를 잊지나 않았는지요? 어디 물어보고 답장을 자세하게 써 보내 주시오. 태현군, 태성군, 아스파라가스군, 남덕군 모두 감기에 들지 않도록 조심들 하시오. 아고리는 더욱 더 기운차게 열심히 제작을 계속하고 있소.
안심, 안심,,기뻐해 주시오. 자, 나만의 소중하고 소중하고 또 소중한 한없이 착한 오직 유일한 나의 빛, 나의 별, 나의 태양, 나의 애정의 모든 주인인 나만의 천사, 최애의 현처 남덕군, 건강하게 기운을 내주오.
1955년 초 부인에게 보낸 편지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도, 인간에 대한 사랑도 말입니다.
앞서 첨부한 화가 이중섭의 길고 긴 편지들을 보면 그가 사랑에 얼마나 의지하며, 주어진 처지에서 그 사랑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그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정결케, 성공하게 하려고 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보고 싶었던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오해받고 버려져서 41세의 젊은 나이게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혼자서 외롭게 죽었습니다. 그가 그렸던 수많은 그림들은 가난으로 인해서 중간중간 팔려져서 많은 것이 유실되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그의 그림과 글들의 상당히 많은 것은 오직 그의 부인 남덕에게 보낸 수많은 그림엽서와 편지들 뿐입니다.
중섭은 죽었지만 그의 부인 이남덕은 아직도 일본에 살고 있습니다. 그의 큰 아들 태현은 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정말로 싫어한다고 합니다. ’우리 엄마를 그렇게 고생시킨 나쁜 분, 야속한 분.’으로만 기억하고 있다는 군요. 하지만 둘째 태성군은 좀 다릅니다. 아버지로 인한 고생을 적게 겪어서일까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그득한 그는 지금 일본에서 표구상을 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아버지의 그림을 일본에서 전시하는 것이 꿈이랍니다.
그의 부인 남덕은 아주 고운 할머니가 되어 일본에서 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삯바느질을 계속하며, 이 중섭의 그림과 가치를 알리는 일에 조용히 조용히 참여하고 있지요. 저는 이 남덕에게 묻고 싶어요. "너는 왜 바보같이 그렇게 무능하게 살았니? 너는 부자집 딸이었고 너도 좋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으며, 더구나 너는 나라를 버릴만큼 이 중섭을 사랑하지 않았니? 그런데 왜 그렇게 바보같이 무능하게 아무 일도 않고 오직 이중섭만 믿고 이중섭만 쳐다보고 있다가 그가 생활고에 찌들려 아주 슬프게 죽을 수밖에 없게 했니? ....
그리고 이 중섭에게 이렇게 묻고 싶지요. "야, 이 중섭, 너는 맨날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한다면서 왜 그렇게 살지 못했니? 넌 어쩜 그리 말은 잘한다...그런데 그 말이 사람을 먹여살리는 것은 아니쟎니? 더구나 그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너의 그림조각이 아니라 그 그림조각을 팔아 생긴 생활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너도 했쟎니...그러면 그렇게 괴팍하게 살지 말고 사람들한테, 친구들한테 가서 네 그림도 알리고, 좀 제대로 돈 받고 팔고, 멍청하게 맨날 사기나 당하지 말고, 그렇게 좀 야무지게 살지를 그랬냐? 바보같이 그렇게 사니까 결국 그렇게 일찍 죽었쟎아. 네가 네 몸 잘돌보고 오래오래 살았더라면 네 말처럼 인류를 위해 더 좋은 감동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지 어떻게 아니?...."
예...
저의 이런 질문과 비난이 참으로 더 우습게 들리지요? (*^^*) 저의 이런 모든 것은 다 그 과정에 참여해보지 않은 그저 팔짱끼고 냉정히 쳐다보는 제 삼자의 무책임한 평가일 뿐입니다. 아무도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5마일을 걸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 모두의 인생은 하느님이 주신 저마다의 삶의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해서, 또 우리의 이웃을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적인 잣대로 보면 어쩌면 무지 무지 한심하고 불행해질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 길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행복한 길임에 분명합니다. 왜냐면 그것은 주님이 저희에게 주신 가장 첫 번째 계명이니까요.
하느님은 우리를 처음부터 행복을 누리고 살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수많은 죄의 기억들이 그것을 어렵게 하지요. 하지만 늘 죄를 지으면서도 다시금 본향을 향하고, 우리의 뿌리를 향하는 결단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랑의 주님,
주님은 이 세상을 만드시고, 또 우리 인간을 만드시고 ’보기에 참 좋았더라." ’참으로 기뻤더라." 하셨습니다. 주님, 저 스스로는 아주 보잘 것 없이 평가하는 이 못난 저도 주님의 마음에는 참으로 기쁜 존재겟지요? 그러니 주님, 저는 오늘도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존재처럼 생각하며 하루를 살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저를 세상에 보내시고 당신을 알 게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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