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연중22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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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09-05 | 조회수1,724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 2003년 9월 5일 (금) -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오늘의 복음] 루가 5,33-39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을 할 것이다.>
그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께 33) "요한의 제자들은 물론이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제자들까지도 자주 단식하며 기도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합니까?" 하며 따지자 34)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잔칫집에 온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그들을 단식하게 할 수 있겠느냐? 35) 이제 때가 오면 신랑을 빼앗길 것이니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을 할 것이다." 36) 그리고 예수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내어 헌 옷을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못 쓰게 만들뿐만 아니라 새 옷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37) 그리고 새 술을 헌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릴 것이니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는 못 쓰게 된다. 38)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39) 또 묵은 포도주를 마셔 본 사람은 ’묵은 것이 더 좋다’ 하면서 새것을 마시려하지 않는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묵은 포도주는 달고, 새 포도주는 떫다.
우리가 연중 제22주간 월요일부터 연중 마지막주간 토요일까지 평일미사의 복음으로 줄곧 루가복음을 봉독하게 되었다고 해서 복음의 모든 부분을 연이어 듣지는 못한다. 이 말은 평일미사에 제공된 복음을 읽고 한정된 부분만으로 복음의 참뜻을 깨우치려들면 무리가 생긴다는 뜻이다. 이러한 시도는 늘 복음의 참뜻을 위협한다. 한정된 어느 한 단락의 복음만 가지고 전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이 된다. 그러다 보면 때로는 예수께서 공들여 설파한 복음전체의 내용뿐만 아니라 복음사가들의 편집의도를 곡해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미사의 그날 복음으로 제공된 부분의 앞뒤 문맥을 함께 살펴야 하며, 진정한 신자(信者)라면 "매일미사" 책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신구약 합본성서를 늘 곁에 두고 빠진 부분을 함께 읽어야 한다. 예를 들어 편리상 위에 실어놓은 오늘 복음이 "매일미사" 책의 금요일 복음에 따라 "그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께" 하고 시작되지만, 성서의 원문에는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이" 라고 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무슨 말씀을 듣고 예수께 반론을 제기하는 지는 앞부분을 살펴야 알 수 있는 일이다.
아무튼 권위 있는 가르침과 기적행적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명성이 순식간에 나자렛과 가파르나움을 넘어 사마리아와 유다지방 일대 방방곡곡에 퍼져나갔다.(4,37.44; 5,15) 급기야 이를 확인하고 감찰할양으로 예루살렘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께서 계신 곳으로 파견된 것이다.(5,17) 그들은 이미 예수의 말씀과 행동에 반감을 가지고(5,21), 못 마땅하게 여겨 트집을 잡기 시작하였으며(5,30), 오늘은 복음에서와 같이 단식문제로 예수께 시비를 걸고 있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오늘 복음을 묵상한다면 잘 이해할 수 있겠고, 좋은 결론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단락으로 구성된 오늘 복음은 단식에 관한 말씀과 옷과 포도주를 소재로 한 이중비유를 담고 있다. 물론 후반부의 이중비유는 전반부의 단식에 대한 부연설명으로 이해해도 좋다. 오늘 담론은 예수님과 적대자들 사이의 논쟁으로 보아도 타당하다.
단식(斷食)이란 회개의 표징으로서 용서와 자비의 기다림이다. 구약성서와 유다교에서 단식은 약속된 메시아의 도래와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되어 있다.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이미 도래하셨으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단식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ipso facto) 모순이다. 제자들은 물론 세상이 온통 메시아 도래의 기쁨에 차 있기 때문이다. 먹고 마시는 일은 기쁨으로 가득 찬 잔치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에게도 단식의 날이 오게 될 것인즉, 예수께서 더 이상 그들 곁에 계시지 않을 때가 바로 그때가 될 것이다.(33-35절)
<새 옷 - 헌 옷, 새 포도주 - 묵은 포도주, 새 부대 - 헌 부대>를 소재로 한 이중비유는 단식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한층 더 또렷하게 밝혀준다.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도래는 하느님나라의 도래를 말한다. 이제 헌 것은 가고 새 것이 도래한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로워졌고 새 하늘과 새 땅(2베드 3,13; 묵시 21,1)이 도래했다. 새로이 도래한 하느님나라를 헌 것을 가지고 맞을 수 없는 일이다. 묵은 포도주는 달고, 새 포도주는 떫기 마련이다. 여기서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이다. 하느님나라를 향한 준비는 마음의 "어느 한 조각"으론 불가능하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에게 삶과 태도의 전적인 회개와 변화를 촉구하시는 것이다. 당장은 맛이 좀 떫고 불편하더라도 하느님나라에 통용될 새로운 법칙을 배워나가야 할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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