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John 3:35
아버지께서는 아들(딸)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맡기셨다.
The Father loves his Son, and he has given him authority over everything. (N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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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여러분들도 이런 퀴즈를 풀어본 적이 있으시지요?
"자 이제, 여러분은 아주 거대한 사막을 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여기 다섯 마리의 동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자,양, 말, 소, 원숭이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사막이 끝날 때까지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씩 차례로 버리면서 가야합니다. 당신은 무엇부터 버리고 가겠습니까?" (*^^*)
저는 이 퀴즈를 약 2년 전 쯤에 처음으로 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이렇게 대답했지요
"일단 양을 가장 먼저 버린다. 양은 나약해서 사막이라는 험하고 먼 길을 함께 갈 파트너가 되지 못한다. (*^^*) 긴 여행인데 걸리적 거릴 것은(!) 하루 속히 제거하는 것이 상책이다.
다음으로는 원숭이를 버린다. 원숭이랑 함께 가면 말도 걸고 재미있겠지만, 자꾸 귀챦게 하고 결국 또 걸리적 거릴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이야기하고 나면 다음으로 버리는 것이 좋다.
세 번째로는 사자를 버린다. 사자는 백수의 왕이니 그와 함께 가면 든든하고 멋있기는 하겠지만은, 내가 사막으로 점점 깊이 들어서면서 힘이 없어지게 되면, 오히려 나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음... 말과 소가 좀 애매모호하긴 한데...
아무래도 소를 끝까지 가져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목적지까지 끝까지 가려면 말 역시 필요하고 좋긴 하지만, 그래도 소가 더 든든할 것 같다. 소는 말보다 더 풍만해서(*^^*) 나에게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 소는 더 기꺼운 식량이 되어 줄 것이다(*^^*).....
그랬더니 저의 이 대답에 대한 해석자의 해석이 어떻게 나온 줄 아세요?
"여기서 사막이란 바로 우리 인생의 길고 험한 길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대답은 당신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드러내주는 것이지요.
양은 배우자를 상징합니다. 양은 포근한 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별로 도움이 되어주지는 않지요(*^^*).
당신은 아마도 배우자와 독립적으로 인생을 잘 살수 있을 것 같군요. 양을 끝까지 가져가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배우자와 깊이 연관짓고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배우자를 사랑하고, 그래서 또한 배우자가 먼저 죽으면 다시 새로운 배우자를 얻으려고 하기가 쉽지요.
원숭이는 자식을 상징합니다. 당신은 원숭이도 빨리 버린 것을 보니, 자식에 대해서도 그다지 연연해 하지 않을 것 같군요(*^^*). 이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저 자식의 인생은 자식의 인생, 내 인생은 내 인생...하면서 그 인생들을 서로 지나치게 묶어내려고 하지 않는 다는 뜻입니다. 원숭이를 끝까지 가져가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자식은 바로 나의 전부...하고 자식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그런 부모들이기 쉽지요.
그리고 사자는 자존심을 의미합니다. 이미 말씀하신 것처럼 사자는 백수의 왕이지요... 그래서 자존심이 매우 강합니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사자는 포효합니다. 당신은 자존심을 소중하게 여기지만, 그것에 그리 목숨까지 걸지는 않겠군요. 혹시 주변에 사자를 끝까지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면, 가능하면 그 사람하고 새롭게 친구맺지 마세요(*^^*). 하지만 이왕 친구가 된 상태라면, 그 사람의 의견이나 주장에 대해서는 일단 무조건 들어주고, 별 일 아니면 양보해주십시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 사람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면 안되지요.
마지막으로 말과 소는 조금 비슷하긴 하지만, 말은 주로 당신이 하는 ’일’을 상징한다면, 소는 ’돈이나 자산’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평생 아주 오랜동안 일을 놓지 않고 하겠군요. 그리고 돈을 소중하게 여기니, 자산관리도 잘하고 아마 자산도 상당히 모을 것 같습니다. 소를 끝까지 가져가는 사람에게 자산관리를 맡기면 정말 안심 든든입니다.
...*^^*....
어때요?
조금은 우스운 것 같지만, 어찌보면 일견 상당히 일리가 있는 해석인가요? 더구나 저는 그 당시 그 퀴즈를 내고 해석해준 분이 제가 평소에 참 존경하는 분이여서 그런지, 정말 꽤 진지하게 그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분의 흉내를 내서, 내가 아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이 퀴즈를 내고, 해석을 해주기도 했지요.
그런데... 지나고보니 사실 그런 퀴즈가 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 퀴즈는 정말 잠시간의 재미꺼리, 웃음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자주 잘 변하는 것만큼이나 하루 아침에도 얼마나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인지요...
그 퀴즈를 풀고 2년이 지난 지금... ,저는 지금 참으로 많은 생각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변화는 ’이제 양을 결코 처음으로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결심입니다.
양이라는 동물이 처음의 제 생각처럼 나약하고 어쩌면 걸거적 거리는 동물이라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생각은 나약하고 걸거적 거린다고 해서, 내게 당장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주어진 무언가를 버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럴수록 감싸안고 오래 가져가야 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사실 양이란, 바로 우리들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 아닙니까? 나약하고 나약해서, 어리석고도 어리석어서, 선한 목자이신 하느님의 품을 수시로 벗어나 길을 잃고 헤매는, 그 선한 목자가 찾아와 구해내 주기 전까지는 스스로 혼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그런 나약한 피조물... 그런 피조물 양이, 바로 우리들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느님께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양의 미욱함과 아픔, 그리고 한편 그 외면과 내면속의 포근함을 늘 기억하게 됩니다. 저 자신안의 그런 모든 요소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만약 제게 그런 양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고 십습니다.
또한 이제 멀고 험한 인생의 사막같은 긴 길을 갈 때, 저 혼자 힘으로 그 먼 길을 가야한다, 갈 수 있다고 오만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갈 수 없다, 이런 나를 다 아시는 주님이시니 주님께서는 나를 인도해주실 것이다...아주 굳게 믿고, 겨우겨우 하루하루 길을 걸어갈 용기를 내 보겠습니다.
일견 나를 강하게 보이게 하는 세상적인 강함들은 일찌감치 내려놓고, 일견 나를 약하게 보이게 하는 세상적인 약함들로 서로 의지하며 서로 위로하며 살아 가고 싶습니다. 제가 약하면 약할수록, 제 약함을 솔직히 인정하면 할수록 예수님이 더 가까이 계실 것임을 굳게 믿고 체험하면서 말입니다.
사랑의 주님,
당신께서 저희 아들 딸들을 사랑하셔서 저희를 믿고 모든 것을 맡겨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당신께서 저희에게 보내주신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모든 것들을 순종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오늘 저희에게 더 많은 용기와 지혜를 허락해주십시오. 우리의 자애로우신 어머니, 복되신 동정마리아와 함께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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