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없이 슬펐던 눈동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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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3-09-13 | 조회수2,673 | 추천수37 | 반대(0) 신고 |
9월 14일 성십자가 현양 축일-요한 3장 13-17절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한없이 슬펐던 눈동자>
크게 상처받은 사람이나 심한 좌절을 체험한 사람 앞에서 인간의 언어란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아무리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로 위로하려 들어도 속수무책입니다.
그렇다면 깊은 상처로 인해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이 기운을 차리고 자신을 추스를 때는 언제이겠습니까? 역설적이게도 더 큰 상처를 통해서입니다.
나의 고통은 그 누군가의 더 큰 고통을 통해서 치유됩니다.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큰 내 슬픔은 묘하게도 그 누군가의 더 큰 슬픔을 통해서 극복됩니다.
누군가가 자신보다 더 큰 상처를 입고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신기하게도 상처는 아물기 시작합니다. "저런 사람도 견디고 있는데, 저런 사람도 살고 있는데..."하면서 자신을 극복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역사상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그분은 다름 아닌 수 천 번도 더 되는 채찍질을 고스란히 견뎌낸 수난 예수이십니다. 육체적인 상처보다 더욱 그분을 고통스럽게 만든 상처는 정신적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숱한 모욕과 조롱, 침 뱉음 그 사이를 뚫고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역사상 가장 큰 슬픔을 겪었던 사람, 가장 큰 고통을 겪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십자가상 예수님이셨습니다. 슬픔이나 고통, 좌절이나 십자가의 가장 정점에 계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당신 친히 우리의 모든 고통과 슬픔, 좌절과 방황을 당신 등에 지시고 골고타 산을 오르십니다.
우리 깊은 상처를 치유하시기 위해서, 우리 눈에서 슬픔의 눈물을 닦아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견디기 힘든 십자가를 가볍게 해주시기 위해서 높이높이 십자가 위에 매달리십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죄로 물든 이 세상의 정화를 위해서, 길을 잃고 정처 없이 헤매 다니는 당신 양떼를 위해서, 심하게 상처받아 죽어가고 있는 우리를 위해서 특효약을 내어놓으셨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당신의 십자가입니다.
하느님께 대들고 반항하면서 딴 길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진노를 사서 불뱀에게 물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치료약으로 제시된 것이 높이 매달린 구리뱀이었습니다. 이제 그 구리뱀 자리에 예수님께서 또 다른 특효약으로 높이 매달려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른 일이 아니라 높이 매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우리가 극심한 고통에 힘겨울 때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 역시 처절한 고통을 겪으셨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깊은 슬픔에 빠져들 때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한없이 슬펐던 눈동자를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고 가는 일상의 십자가가 너무 무겁게 여겨질 때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가심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주님께서 소리 없이 우리의 십자가를 받쳐주고 계심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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