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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연중24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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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9-17 조회수1,675 추천수11 반대(0) 신고

◎ 2003년 9월 17일 (수) -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 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주교 학자 (1542-1621) 기념일

 

  로마 가톨릭에 항거하여 종교개혁을 주동했던 마르틴 루터(1483-1546)는 1530년 아욱스부르크 신앙고백을 작성함으로써 로마교회와 결별하였고, 그가 주창했던 프로테스탄트교회(복음주의적 교회)는 온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종교개혁은 가톨릭교회를 걷잡을 수 없는 파문으로 몰아갔고, 이에 가톨릭교회는 내적 쇄신은 물론 개신교와의 관계정립을 해야하는 단계에 이른다. 후자에 해당하는 노력에 일생을 바친 성인이 바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로베르토 성인이다.

   

  1542년 이탈리아의 중부 토스카나에서 태어난 로베르토는 18세에 이냐시오 데 로욜라(1491-1556) 성인이 창설한 예수회에 입회하여, 1570년 사제로 서품 되어 루벵 대학교의 예수회 출신 첫 교수가 되었다. 1576년 로마대학으로 불려온 성인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신학적 차이점에 대한 강의로 일약 유명세를 탔다. 이 강의에서 나온 작품이 1593년 완성된 3권의 "그리스도 신앙의 논쟁에 관한 토론"이다. 1597년 "그리스도교 교리" 소책자를 발간하였고, 1598년엔 완본(完本)을 내놓았다. 1599년 교황 클레멘스 8세(1592-1605)는 그를 추기경으로 추대하였고, 1602년 카푸아의 대주교에 임명하였다. 1605년 다시 로마로 돌아와 교황청의 도서장관과 자문위원을 맡았다. 성인은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가르침을 삶과, 설교와 저서를 통하여 현실화시켰다. 1621년 9월 17일 세상을 떠난 성인은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1930년 성인의 반열에 올랐고, 1931년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오늘의 복음]  루가 7,31-35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31)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도대체 무엇과 같을까? 32) 마치 장터에서 편갈라 앉아 서로 소리지르며,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하는 아이들과도 같다. 33) 너희는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니까 ’저 사람은 미쳤다’ 하더니 34)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까 ’보아라, 저 사람은 즐겨 먹고 마시며 세리나 죄인들하고만 어울리는구나!’ 하고 말한다. 35)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지혜를 받아들인 모든 사람에게서 드러난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잔치놀이와 장례놀이

 

  오늘 복음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완고함을 꼬집은 비유(31-32절)와 이 비유의 뜻을 풀이하는 내용(33-34절)을 담고 있다. 어제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젊은이여, 일어나라"(14절)는 단 한 말씀으로 과부의 죽은 아들을 소생시키신 기적을 보았다. 이 기적사화는 세례자 요한이 보낸 제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주기 위한 생명의 주인으로서의 예수님의 자기계시적 업적이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답변을 듣고 물러간 다음 예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세례자 요한을 높이 칭찬하셨다.(24-28절) 예수께서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사람보다 크다"(28절)는 말씀으로 세례자 요한을 극찬(極讚)하셨으나, 동시에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것이라도 이 세상의 어느 무엇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밝혀 주셨다. 28절 후반부의 말씀은 예수께서 요한을 너무나 높이 칭찬하셨기에, 그 높이를 조정하려는 복음사가의 의도가 곁들여진 듯한 느낌이 든다. 아무튼 극찬 뒤에 숨겨져 있는 하느님나라의 지고(至高)함을 깨달아야 한다.

 

  문제는 온 백성이 요르단강에 있는 요한에게 와서 그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지고(至高)의 하느님나라에 성큼 다가섰으나, 백성의 지도급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세례를 거부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였다는 것이다.(29-30절) 이들을 두고 예수께서는 오늘 복음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장터에서 놀이하는 아이들의 비유에서 <피리-춤>은 잔치놀이를, <곡-울음>은 장례놀이를 의미한다.(32절) 놀이는 혼자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잔치에는 술과 음식과 여흥이 필요하지만, 장례에는 금욕과 절제가 필요하다. 따라서 장례놀이는 회개와 참회의 세례를 선포했던 금욕주의자 요한에 비유되고 있으며, 잔치놀이는 혼인잔치에서 신랑의 역의 맡아 잔치에 초대받은 모든 사람들과 어울려 식음(食飮)하시는 예수님에 비유되고 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요한의 세례를 거부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외면하였으니, 결국 장례놀이에도 잔치놀이에도 호응하지 않은 세대로 낙인이 찍혀버린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잔치와 장례가 벌어진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잔치만으로도 살 수 없으며, 장례만으로도 살 수 없다. 혼인잔치의 신랑이신 예수께서 더는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잔치는 일단락 되었고,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는 장례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떠나가신 예수님은 성령 안에서 세상 끝까지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기에 잔치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잔치와 장례가 뒤섞인 세상에 우리는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잔치놀이든 장례놀이든 놀이가 벌어질 때 적극적으로 그 놀이에 참여하고 호응하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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