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연중 제25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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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09-20 | 조회수1,363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 2003년 9월 21일 (일) - 연중 제25주일 ▣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 (없음)
[오늘의 복음] 마르 9,30-37 <사람의 아들이 잡혀 넘어갈 것이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때에 30) 예수의 일행이 그곳을 떠나 갈릴래아 지방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예수께서는 이 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31) 그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따로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잡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그들에게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하고 일러 주셨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 33) 그들은 가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께서는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에게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4) 제자들은 길에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서로 다투었기 때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35) 예수께서는 자리에 앉아 열두 제자를 곁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고 말씀하신 다음 36)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앞에 세우시고 그를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곧 나를 보내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전단계의 인간본성
올 여름엔 비가 참으로 많이도 왔다. 여름이 시작할 때 더웠던 며칠을 빼고는 햇볕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더구나 9월 12일 저녁 무렵부터 6시간에 걸쳐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매미"가 남기고 간 잔인한 흔적은 기억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지 아무도 모른다. "매미"가 앗아간 것은 인명과 재산과 삶의 터전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꿈과 희망도 앗아갔다. 조금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가진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의 통탄함을 그 누가 함께 해 줄 수 있겠는가? 부디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남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빼앗긴 사람들과 가진 바를 나누기를 빌어본다.
약 반 백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많다. 가까운 일들에서 멀게는 아득한 어릴 적 일들까지 별로 좋지 않은 경험들 때문에 지금껏 시달리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방위나 민방위 출신 등의 평생 붙어 다니는 딱지 같은 것도 있고, 초등학교 시절에 항상 ’꼴찌’했던 기억들도 있을 것이다. 달리기에 꼴등, 시험에서 꼴등, 급우들간의 이것저것 내기에서 꼴등... 이런 기억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다망구, 진도리, 말타기 등의 놀이에서 편가르기를 때, 힘께나 쓰는 두 놈이 한사람씩 데려가고, 맨 나중까지 남아있어야 했던 그런 기억은 추억이라기보다는 아픔에 속한다. 게다가 마지막까지 남은 나를 보고 내뱉는 그 놈의 말: "니는 아무 데나 가라!" 참으로 가슴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고로 어디든 자신이 쓸모 있기를 원한다. 남에게 뭔가를 보여 주고 싶어하고, 남보다 더 낫기를 원한다. 어른들 사이에서 이런 가치추구는 더더욱 심각하다. 경기를 하거나 시험을 쳐서 등수를 매기지 않는 곳에서는 지식, 재물, 주택, 출신, 학력, 직업, 건강, 신체 등에 대한 비교적 우월감과 열등감이 상대적으로 작용한다. 태어나면서부터나 살아 가면서나 꼴찌와 소외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예수님의 제자들도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 중에 예수님 다음으로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이냐는 문제로 다투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질문에 부끄러워 아무 대답도 못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지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35절)는 예수님의 말씀은 "꼴찌만은 안 된다"는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대부분 인간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예수님의 의도는 생생한 표본인 어린아이에게서 확연히 드러난다. 어린아이는 무력하고 많은 부분에서 성인의 전적인 도움을 필요로 한다. 아이들은 성인들의 관심사인 영향력 행사, 권력다툼, 실적 세우기 등의 게임에 아직 가담하지 않은 전단계의 인간본성에 위치한 자들이다. 바로 이 전단계의 인간본성으로 제자들이 돌아 갈 것을 예수님은 원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선물로 내려주신 "전단계의 인간본성"이란 아이들처럼 하느님 앞에 무력하고, 전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불완전한 본성이며, 여기에는 우리가 배운 위아래 따짐도 필요 없고, 처음과 나중의 순서 매김도 필요 없고, 자신의 열등감을 탓할 필요도, 우월감을 힘들여 증명할 필요가 없는 곳이며, 편짜기에서 아무 데도 갈데 없는 자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이다. 여기가 바로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아이며 아들이었던 예수의 본성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은 곳이다. 예수의 본성은 아버지 앞에 스스로 무력했고,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맡겼던, 타인(他人)을 위한 몰아적(沒我的) 본성이다. 자신을 송두리째 바쳐 인간을 구하고자하는 사랑으로만 가득 찬 그런 본성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본성에로 제자들을 초대하고자 하시며,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 모두를 또한 초대하고자 하신다. 예수님은 타인을 위한 몰아적 본성에 의해 꼴찌로서 첫째가 되셨으며, 죽기까지 낮추심으로써 모든 것 위에 높임을 받으신 분이 되신 것이다.
꼴찌로서의 삶이란 기쁨보다는 아픔이 많은 법이며, 산뜻함보다는 피곤함이 더 많은 법이다. 예수께서는 인간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의 봉사로 스스로 피곤하게 되셨으며 꼴지가 되셨다. 그분은 몸소 모든 인간 중에 마지막 꼴찌에 서서, 그들을 보살피시고 다독거리셨으며, 봉사하시면서 어린아이와 같은 전단계적 본성을 보여 주셨다. 누구든지 예수를 따르고자 한다면 예수의 바로 이런 본성을 닮아야 하며, 우리 교회의 모습 또한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한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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