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연중 제26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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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09-28 | 조회수1,512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 2003년 9월 28일 (일) - 연중 제26주일
[오늘의 복음] 마르 9,38-43.45.47-48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 버려라.>
그때에 38) 요한이 예수께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우리와 함께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9) 예수께서는 "말리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나를 욕하지는 못할 것이다.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41)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여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상을 받을 것이다. 42) 또 나를 믿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나올 것이다. 43)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불구의 몸이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45) 발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발을 찍어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절름발이가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47) 또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애꾸눈이 되더라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외유내강(外柔內剛)
겉으로는 부드럽고 순한 태도를 보이나 마음속은 단단하고 굳센 의지를 지니고 있음을 뜻하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이라는 말이 있다. 바로 오늘 복음을 두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아닌가 싶다. 제자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스승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을 막았다는 요한의 옹졸함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이를 말리지 말라는 외유(外柔)의 태도를 보이신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예수를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며,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냉수 한 잔이라도 대접하는 사람에게 보상까지 약속하신다. 타인에 대한 예수님의 한량없이 넓은 도량이다.
2000년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 교회가 진즉 배웠어야 할 도량이 아니던가? 사실인즉, 우리 교회는 적어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 타종교와 비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하여 단호한 외강(外剛)의 입장을 취하여 왔다. 우리 교회는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철의 장벽을 치고 구원을 위한 말씀과 성사를 우리들만의 것으로 여겼고, 이에 대한 타인의 참여를 철저하게 배제하였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헌장, 교회일치에 관한 교령, 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 등의 문헌을 통하여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기본공식을 수정하였다. 공의회는 우리 가톨릭교회밖에도 얼마든지 성화(聖化)의 요소가 발견되며, 타종교 안에도 하느님 "말씀의 씨"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과 그리스도 신앙인은 그것을 "기쁨과 경의를 가지고 발견하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천명하였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죄를 짓게 만드는 사람과 실제로 죄를 짓게 하는 신체의 일부에 대하여 예수님은 내강(內剛)의 태도를 보이신다. 그것도 소름끼칠 정도로 단호하고 엄격한 차원이다.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차라리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져죽는 편이 훨씬 낫다니,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씀인가. 그 뿐이 아니다. 손이 죄를 짓게 하면 그 손을 잘라버리고, 발이 죄를 짓게 하면 그 발을 찍어버리며, 눈이 죄를 짓게 하면 그 눈을 빼어버리라는 말씀은 실로 엄청난 요구사항이 아닐 수 없다. 때로는 듣지 않고 피해버리고 싶은 부분의 말씀이기도하다. 우리가 결코 지킬 수 없는 과장된 요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다.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의 믿음에 책임이 있으며, 신체의 일부라 할지라도 그것이 죄를 유발시킨다면 몸 전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 뿌리부터 잘라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손과 발과 눈은 어떤 것인가? 사람의 행동을 성취하고, 그 행동을 얼마든지 악행(惡行)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신체의 기관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들 신체의 기관들이 악행의 도구가 될 바엔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말 그대로 따라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다. 매일 죄를 지으며 사는 수억 명의 신자들이 사지(四肢)가 멀쩡한 채 그대로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실 손과 발과 눈은 인간의 내적 지향이 결정하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외적 표현에 불과하다. 그러니 신체의 기관, 즉 도구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내적 지향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결론으로 오늘 복음의 말씀을 쉽게 넘겨서는 안 된다. 비록 과장되고 무리한 요구이긴 하지만, 죄의 심각성을 진지하게 깨닫고, 우리 신체의 모든 기관들이 선행(善行)의 도구로 사용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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