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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성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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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10-04 조회수1,702 추천수9 반대(0) 신고

◎ 2003년 10월 4일 (토) -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1182-1226)

 

  오늘 축일의 주인공은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 페루지아현에 속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다. 성인께서 세상을 떠날 무렵 이탈리아에 태어난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1225-1274) 함께 스콜라철학의 대가였던 성 보나벤투라(1221-1274)가 오늘의 성인을 두고 한 말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그는 "프란치스코 성인 안에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는 또 한번 세상에 드러났다" 하고 말하였다. 그렇다고 프란치스코 성인이 고분고분하고 순한 성격의 소유자는 결코 아니었다.

 

  1182년 아시시의 유복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온갖 편안한 생활을 누리면서 향락을 추구하였고, 기사(騎士)가 될 꿈을 가지기도 하였으나, 25세 때에 전격 회심(回心)하여, 가산을 퍼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조건 나누어주었다. 아버지가 찾아와 말리며 비난하자 입은 옷까지 벗어 아버지에게 돌려주는 등, 재산과 유산과 세속적인 모든 삶을 청산하고 글자 그대로 청빈과 겸손, 이웃사랑을 서약하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성인에게 "대충"이나 "대략"은 없었다. 성인은 철저하고 완전한 청빈생활을 몸으로 실천하기에 이른다. 1209년부터 성인을 따르는 형제들을 모아 교황 이노첸스 3세의 허가를 받아 청빈을 주지(主旨)로 한 "작은 형제의 모임"을 설립하였다. 또한 성인을 따르던 성녀 클라라를 권유하여 "클라라회"를 설립하고, 다시 속인(俗人) 남녀를 위한 "제3회"도 조직하였다. 성인이 회원들에게 요구한 것은 복음에 나타난 철저한 청빈과 십자가 추종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성인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청빈의 목적이 이들에 대한 사랑임을 설파한다. 성인은 스스로 청빈과 사랑, 편력(遍歷)설교와 고통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그대로 걸어가길 원했다. 1224년 베르나산에서 홀로 기도하는 중에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오상(五傷)을 받는다.

 

  1226년 엄청난 고통으로 임종하기 직전에 성인은 자신이 지어만든 "태양의 노래"를 불렀고, 장상에게 마지막 순간이 오면 자기의 옷을 벗겨 갖도록 하고, 주님을 본받아 땅 위에 벌거벗은 채로 누워 운명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성인은 1226년 10월 3일 세상을 떠났고 1232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프란치스코를 성인반열에 올렸다. 성인 프란치스코는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와 함께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또한 스페인의 도미니코(1170-1221) 성인과 함께 서방 수도생활의 일대 전환기를 이루는 탁발(托鉢)수도회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탁발수도회는 예수께서 12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내리신 엄격한 여장규칙(마태 10,8-10)을 그대로 따르려 하는 수도회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성인이 철저한 복음정신에 의한 스스로의 삶이 가져온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오늘의 복음]  루가 10,17-24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그때에 17) 일흔 두 제자가 기쁨에 넘쳐 돌아와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들까지도 복종시켰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18) 예수께서 "나는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9) 내가 너희에게 뱀이나 전갈을 짓밟는 능력과 원수의 모든 힘을 꺾는 권세를 주었으니 이 세상에서 너희를 해칠 자는 하나도 없다. 20) 그러나 악령들이 복종한다고 기뻐하기보다는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21) 바로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을 받아 기쁨에 넘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 22)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아들이 누구인지는 아버지만이 아시고 또 아버지가 누구신지는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23) 그리고 예수께서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말씀하셨다. "너희가 지금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사실 많은 예언자들과 제왕들도 너희가 지금 보는 것을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했으나 듣지 못하였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선교의 참된 기쁨

 

  오늘 복음은 확연히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부분(17-20절)은 선교에서 돌아온 일흔 두 제자들이 그 결과를 보도하는 내용이고, 둘째 부분(21-24절)은 결과보고에 대한 예수님의 감사기도를 담고 있다. 첫 부분은 루가복음의 고유사료로서 앞서 파견된 12제자의 귀환 때에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9,10)

 

  예수께서 일흔 두 제자들을 파견하는 대목을 보면, 12제자의 파견 때와는 달리, 다만 병자들을 고쳐주고 하느님나라가 다가왔음을 선포하라고 하셨다.(10,9) 그런데 선교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일흔 두 제자들은 예수께서 명하신 두 가지 일에다 마귀들까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종시킨 것에 대하여 상당히 기뻐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하시면서 제자들의 활동을 내다보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제자들이 자신의 활동들에 대하여 대단히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한다고 해서 선교활동의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섣부른 판단이다. 제자들의 기쁨과 선교결과는 꼭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교의 결과는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말이다. 코라진, 베싸이다, 가파르나움과 같은 마을들을 보라! 그들에게 주어진 가르침과 기적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그들은 듣고 보고도 회개하지 않고 믿지 않았다. 따라서 선교자들이 기뻐할 것은 선교의 결과보다는 선교를 했다고 하는 그 사실이다. 하늘에 선교사들의 이름이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의 둘째 부분은 예수님의 감사기도와 계시말씀, 그리고 제자들의 행복선언에 관한 내용으로서 마태오복음(11,25-27; 13,16-17)에도 병행절이 발견된다. 예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는 이유는 하늘나라에 관한 모든 지혜를 똑똑하다는 사람들보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드러내 보이신 것 때문이다.(21절) 예수께서는 당신의 복음이 당대의 똑똑한 바리사이들과 율사들로부터는 배척을 받았지만, 그래도 어린아이와 같은 처지의 제자들만이라도 이를 받아들이고, 두루 다니며 선포한 것을 기뻐하는 하는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을 배척한 대가는 결국 하느님에 대한 무지(無知)로 이어진다. 무지는 곧 죄(罪)이다. 하느님과 일치하신 예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을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택하신 사람들에게만 하느님에 대한 인식(認識)과 지식(知識)이 허락된다.(22절) 그러니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귀와,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보는 눈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당신 제자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사실 시간과 공간의 차원에서 볼 때 세상의 어떤 누구도 제자들처럼 하느님을 직접 만난 사람들은 없는 셈이다.(23-24절)◆[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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