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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다 큰 바다로 나아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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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10-11 조회수2,105 추천수32 반대(0) 신고

10월 12일 연중 제28주일-마르코 10장 17-30절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보다 큰 바다로 나아가기 위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무조건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라나서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 복음은 바로 나를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본 제 수도생활 늘 부끄럽기만 합니다. 입회 때, 첫서원 때, 종신서원 때, 사제서품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폼이란 폼은 있는 대로 다 잡고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만을 따르겠다"고 수백 번도 더 다짐을 했었건만, 돌아보니 버리기는커녕 엄청 쌓아만 왔습니다.

 

때로 "다시 한번 버리자"며 옷장을 정리한다, 대청소를 한다 설쳐댔지만, 또 다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줍잖은 모습으로 대충대충 살아가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희 같은 수도자들에게 있어 진정한 버림은 내적인 버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옷장 안에 걸려있는 옷가지 몇 벌이나 제가 애지중지하던 물건들은 마음 한번 크게 먹으면 단 10분만에 박스 몇 개에 넣어 버릴 수가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버림은 내적인 버림, 영적인 버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버림은 그릇된 우리의 의지를 과감히 접고 하느님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일입니다.

 

참된 버림은 하느님의 뜻을 보다 적극적으로 따르기 위해, 이웃을 보다 적극적으로 포용하기 위해 우리의 쓸데없는 고집, 지나친 자존심, 우월감, 자리에 대한 지나친 애착, 경직되고 완고한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일입니다.

 

보다 큰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작고 잔잔한 시냇물을 포기하듯이 보다 크신 하느님께 잠기기 위해 우리의 작은 인간적인 욕구나 애착을 자제하는 것이 진정 주님께서 원하시는 버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솔직히 느끼는 바인데, 요즘 인사이동철만 되면 수도회나 수녀회 인사권자들은 골머리를 앓습니다. 물론 변화무쌍한 시대에 걸맞게 순명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때로 "너무하다" 싶은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데는 어디든 좋습니다만 거기만큼은 못 가겠습니다. 그 일만큼은 제발 제게 맡기지 말아주십시오." 어디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언제나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가라고 말씀하시는 대로 어디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이왕이면 남들이 다들 가기 싫어하는 곳, 가장 힘든 곳으로 저를 보내주십시오." 수도자의 자세는 이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버린다는 것은 "높이 한번 올라가 보겠다" "내 계획대로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올라가 보겠다"는 인간적인 가차없이 접고 또 다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찾는 일입니다.

 

끊임없이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는 일,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쇄신시키는 일,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버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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