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어떤 자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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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봉순 | 작성일2003-10-20 | 조회수1,291 | 추천수14 | 반대(0) 신고 |
늘 영혼의 마지막 준비를 하며 사는 한 자매님이 계십니다. 몇 일,길을 떠나게 되면 집안 구석구석은 물론 옷장까지 정리를 해놓고, 교무금이며 후원회비까지 내고 떠나느라 분주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언제 자신을 불러 가실지 모르는 일이 아니냐며 미리 준비를 하지 않으면 어떤 영혼의 상태로 하느님을 뵐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중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가끔 그녀의 집을 방문하여 말벗이 되어주던 제게, 그녀는 머리 맡에 둔 성서를 펴고 각각 다른 페이지에서 만원짜리 한 장씩을 꺼내주며 각종 후원회비를 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아픈 이의 벗이 되어주러 갔다가 그녀의 파리한 손끝으로 하느 님을 더듬는 그 믿음을 발견 했을 때, 오늘의 복음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저 모습은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부자와 얼마나 대조적인 모습인가를 생각하며 저 역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저도 한 때는 그런 부류에 속하는 인간이 아니었나 싶어서였습니다.
아흔 아홉섬을 가진 사람이 한섬을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아 백 섬을 채우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오 늘의 복음 말씀은 무소유가 주는 행복을 깨닫게 하는 주님의 상 세한 가르침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누고 또 나누어도 모자라는 마음, 그 비움에서 뵙는 주님만이 우리에게 확실하게 윤곽을 드러 내시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영적으로 높은 경지에 이르신 분들은 하늘에도 땅에도 매임이 없을 것입니다. 바로 지금 천국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자식들과 함께 제주도를 다녀왔다며 소식을 전해 온 그 자매님의 전화를 받는 순간, 분명 하느님께서 일구신 기적이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긴 투병생활을 지켜보며 그녀가 비행기를 타고 나들이를 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늘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소유라는 것을 생각하며 살고 싶습 니다. 그러면 하루, 한 날도 감사하지 않을 날이 없을 것입니다. 이럴 때 심연에 깔리는 기쁨이 진정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상의 기쁨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잔잔한 기쁨은 그 어떤 세파의 풍랑 에도 흔들리지 않고 죽음도 조용히 받아드릴 수 있는 빈자의 향기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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