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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등의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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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10-20 조회수2,214 추천수30 반대(0) 신고

10월 21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루가 12장 35-38절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녘에 오든 준비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은 얼마나 행복하겠느냐?"

 

 

<내 등의 짐>

 

오늘 미사를 도와주러 오신 한 자매님께서 식사가 끝나자마자 "빨리 집으로 가야한다"고 일어나셨습니다. "차라도 한잔하고 가시면 좋을텐데...무슨 일이냐?"고 여쭸더니 "집에 영감님이 계셔서, 점심 준비를 해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연세가 꽤 지긋하신 분이셨기에 제가 농담조로 "영감님한테 전화하셔서 오늘 점심은 짜장면 시켜 드시라. 이제 그럴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자매님은 펄쩍 뛰시면서 "절대로 그럴 수 없다"며 발걸음을 재촉하셨습니다.

 

영감님 점심준비를 위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시는 자매님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보기 좋아 보였습니다.

 

그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 준비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루 온종일 직장에서 시달릴 남편을 생각하며 정성껏 그리고 진지한 모습으로 맛갈진 식사를 준비하는 아내의 모습처럼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모습은 없을 것입니다.

 

태어날 아기에게 필요한 유아용품들을 목록에 따라 차근차근 준비하는 산모의 모습은 그 자체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흐뭇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키워드는 "준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준비되어있다는 말처럼 가슴 흐뭇하고 뿌듯한 일은 다시 또 없는 것 같습니다. 준비되어 있다는 것은 매사에 충실하다는 것, 그래서 삶에 여유가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가끔씩 한 선배 신부님의 충고가 생각납니다. "여러분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청소년들 앞에 서지 마십시오."

 

가끔씩 저도 삶에 쫓기다보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물론 성령께서 활동하셔서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기도 하지만 제대로 준비하지 않음으로 인한 결과는 대체로 불을 보듯이 뻔합니다. 횡설수설, 우왕좌왕, 좌충우돌을 반복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수도자로서 가장 좋은 준비, 준비중의 준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봅니다.

 

그 준비는 다름 아닌 영적인 준비이겠지요. 또한 영적인 준비의 핵심은 "깨우침"이겠습니다.

 

"돌아보니 삶의 모든 국면이 다 은총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깨우침",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십자가도, 행복도 불행도 모두가 주님께서 주신 것이었음을 자각하는 깨우침"이 우리 삶 안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좋은 글"이라는 홈페이지에서 읽은 "내 등의 짐"이란 글을 읽고 큰 공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과 함께 또 다른 깨우침을 위한 여정을 새 출발하는 은총의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내 등의 짐>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사랑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을 느꼈고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도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미숙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가 내 삶의 무게가 되어 그것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성숙시킨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겸손과 소박함의 기쁨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의 짐 때문에 나는 늘 나를 낮추고 소박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기쁨을 전해 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물살이 센 냇물을 건널 때는 등에 짐이 있어야 물에 휩쓸리지 않고,

화물차가 언덕을 오를 때는 짐을 실어야 헛바퀴가 돌지 않듯이

내 등의 짐이 나를 불의와 안일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게 했으며,

삶의 고개 하나하나를 잘 넘게 하였습니다.

내 나라의 짐, 가족의 짐, 직장의 짐, 이웃과의 짐, 가난의 짐, 몸이 아픈 짐,

슬픈 이별의 짐들이 내 삶을 감당하는 힘이 되어 오늘도 최선의 삶을 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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