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는 구성원 대다수가 ’나를 위한 공동체’에서 ’공동체를 위한 나’로 전이될 때, 그리고 각자가 예외없이 다른 사람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 때 최상의 공동체가 된다. 이는 곧 이기심에서 사랑으로, 죽음에서 부활로 넘어가는 운동이다.
사랑은 감상적인 것도 아니고 스쳐 자나가는 무슨 감정같은 것도 아니다. 사랑은 점차 투신으로 화하는 타인과의 친화력이요, 계약, 즉, 서로가 서로에게 귀속되어 있음을 승인하는 인준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그들의 감정을 함께 느낀다. 사랑은 그들의 요구와 가장 절실한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다.
사랑은 그들과 함께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들이 울 때 울고, 그들이 즐거워할 때 즐거워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그곳에 있을 때 행복을 느끼고 거기에 없을 때 슬픔을 느끼는 것이다. 사랑은 서로의 내심에 살아있으면서 서로에게서 안식처를 구하는 것이다.
데니스 아레오파고스는 "사랑이란 일치의 힘"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동일한 안목과 동일한 이상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은 다른 사람이 하느님의 계획에 입각하여 타인에게 봉사하는 가운데, 스스로 완성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스스로 받은 부르심에 충실하고 또 그들 존재의 모든 측면에서 자유로이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음이 이기심에서 사랑으로, ’나를 위한 공동체’에서 ’공동체를 위한 나’, 즉, 하느님과 곤궁한 이들을 위한 공동체로 옮겨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또한 대단한 정화작업과 새로운 부활을 창출하는 부단한 죽음이 요구된다.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 자신의 안위를 끊임없이 포기해야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감수성 통제와 극복이 망라된 의지적인 행위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 사랑하는 일에는 자발적으로 상대방을 향하는 순화된 마음과 감정도 요구된다. 그리고 이러한 심오한 자기 정화는 오직 하느님의 선물을 통해서만, 성령께서 생활하고 계시는 우리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솟아나는 은총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위로자이신 성령을 파견하시어 이 새로운 에너지, 이 힘, 이 훌륭한 마음을 불어넣어주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상대방을-심지어 그가 적일지라도- 있는 그대로 환영하며, 모든 것을 견디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랄 수 있게 해주마고 약속하셨다.
사랑을 배우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우리 존재의 가장 내밀한 구석구석까지, 공포감과 장벽과 질시가 자리잡고 있는 모든 곳까지 두루 스며드셔야 하기 때문이다. 각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반갑게 맞이하고 사랑하고자 노력할 때 공동체는 이룩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인 것 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들여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로마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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