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연중30주간 목요일) | |||
---|---|---|---|---|
이전글 | 왜 살아야 하는지... | |||
다음글 | 책임져야죠! | |||
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10-30 | 조회수1,571 | 추천수20 | 반대(0) 신고 |
◎ 2003년 10월 30일 (목) -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루가 13,31-35 <예언자가 예루살렘 아닌 다른 곳에서야 죽을 수 있겠느냐?>
31) 바로 그 때에 몇몇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가까이 와서 "어서 이곳을 떠나시오. 헤로데가 당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32) "그 여우에게 가서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를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이면 내 일을 마친다’고 전하여라. 33)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 예언자가 예루살렘 아닌 다른 곳에서야 죽을 수 있겠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너는 예언자들을 죽이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으려했던가! 그러나 너는 응하지 않았다. 35) 너희 성전은 하느님께 버림을 받을 것이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하고 너희가 말할 날이 올 때까지 너희는 정녕 나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축복과 저주의 예루살렘
회개촉구의 설교가 효력이 있었던 것인가? 바리사이파 사람 몇몇이 예수의 말씀에 크게 뉘우쳤던 모양인지 예수께 호감을 가지고 "가까이 와서"(31절) 비밀을 폭로한다. 헤로데가 예수를 죽이려 하니 어서 피하라는 것이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헤로데 대왕의 아들로서 로마제국의 통치하에서 B.C 4년부터 A.D 39년까지 갈릴래아와 베레아 지방을 다스리던 영주였다. 일찍이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어 죽인 헤로데가 예수 때문에 불안해하고 밤잠을 설친지가 벌써 오래되었다.(마르 6,17-29; 루가 9,7-9) 갖가지 소문을 몰고 다니는 예수는 헤로데에게 있어서 가히 위협적인 인물이었다. 따라서 헤로데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결탁하여 이제는 예수를 제거하려고 심증을 굳혔던 것이다.
그러나 헤로데는 당당하게 예수와 맞서지 못했다. 그가 세례자 요한을 다루었던 것처럼 예수를 잡다가 가두거나 추방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스스로가 당당하지 못했고 군중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여우"라는 말을 듣게 된다. 여우라는 동물은 간교함과 해로움의 상징이다. 여우가 직접 사냥을 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먹이를 구하듯이 헤로데도 힘들이지 않고 그 날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스스로 죽음의 길을 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오늘이나 내일은 아니다. 길지 않은 날들이겠지만 그 날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그 날은 예루살렘에서 맞이하실 것이다.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말씀과 현존의 상징이며, 이스라엘이 야훼 하느님과 맺은 구약(舊約)의 상징이다. 여기서 예수님도 당신을 마지막을 맞이하실 것이다. 그 때까지는 어느 무엇도 예수님의 길을 막을 수 없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에 의해, 예루살렘을 통해서 죽어야 하는 예언자들 대열에 세우셨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예언자로 말이다. 예루살렘은 마지막 예언자인 예수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임무를 다하게 될 것이고, 동시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성전에서 당신의 말씀과 현존을 거두어 가실 것이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현존을 거두어 가시는 그 날은 예루살렘이 파괴를 맞이해야 하는 날이다.(35절) 예루살렘은 기원후 70년 8월 29일 티투스가 지휘한 로마군단에 의해 실제로 성전이 짓밟히고 모두 불타버렸다. 이는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려는 것처럼, 수없이 시도했던 하느님의 갖은 노력이 모두 허사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예수와 함께 다가온 구원의 날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스라엘이 회개하여 예수님을 "주님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여, 찬미 받으소서!" 하고 맞이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예수님도 이 날을 기대하고 계신다. 다만 그 날이 세상의 마지막 심판날이 되기 않기를 바랄 뿐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