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연중31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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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11-03 | 조회수1,599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 2003년 11월 3일 (월) -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 수도자 (1569-1639) 기념일
1962년 5월 6일 교황 요한 23세는 마르티노의 시성식에서 그가 "애덕의 마르티노" 라고 마땅히 불릴 만하다고 하면서 "마르티노는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 용서를 빌었고,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마땅히 훨씬 더 엄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가장 쓰라린 모욕까지도 용서해 주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힘으로 죄인을 속량하려고 애썼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농장의 노동자들과 흑인들, 노예들, 그리고 당시 노예와 비슷하게 간주되던 혼혈아들을 도와주었다" 하고 말하였다.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성인 마르티노는 스페인에서 페루로 이주해온 귀족 출신의 아버지 후안 데 포레스와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노예 사이의 혼혈아로 1569년 12월 9일 리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에게는 귀찮은 존재로,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누구보다 귀한 아들이었던 마르티노는 어머니의 눈물과 사랑 속에서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났다. 성인은 12살부터 낮에는 의사보조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십자가 앞에서 끊임없이 기도했다. 1594년 마르티노는 도미니코 수도회에 들어가 처음에는 제3회원으로, 나중에는 평신도 보조원으로 생활하였다. 당시 혼혈아는 사제는 물론 수도자도 되기 힘들었다. 그러나 성인의 9년간 수도원생활은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겸손과, 인종과 신분을 모르는 불굴의 애덕 그 자체였다. 결국 마르티노는 정식 수도서원을 올리게 된다. 성인이 생활하던 수도원이 한번은 큰 빚을 지게 되자 "나는 가련한 혼혈아요 노예일 뿐입니다. 나를 파시오. 나는 수도원의 재산입니다. 나를 파시오" 하고 말했다고 한다. 하느님께서는 남을 하늘같이 생각하고 자신은 노예처럼 여기며 애덕을 실천했던 마르티노를 통하여 많은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고 한다. 당대의 성녀 리마의 로사(1586-1617)도 성인을 공경했다고 한다. 마르티노는 1639년 11월 3일 세상을 떠났다.
[오늘의 복음] 루가 14,12-14 <네 친구를 초대하지 말고 가난한 자와 불구자들을 초대하여라.>
12) 예수께서 당신을 초대한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점심이나 저녁을 차려 놓고 사람들을 초대할 때에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잘 사는 이웃 사람들을 부르지 마라. 그렇게 하면 너도 그들의 초대를 받아서 네가 베풀어 준 것을 도로 받게 될 것이다. 13) 그러므로 너는 잔치를 베풀 때에 오히려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사람들을 불러라. 14) 그러면 너는 행복하다. 그들은 갚지 못할 터이지만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느님께서 대신 갚아 주실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보상 아닌 보상
오늘 복음에는 간단하면서도 참으로 아름다운 가르침이 담겨있다. 물론 실천하기에 쉽지 않은 가르침이다. 오늘날 진수성찬(珍羞盛饌)의 연회를 준비해 놓고 길거리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사람 등 면식(面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초대할 주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거의 모든 경우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잘 사는 이웃 사람들을 초대하여 음식을 나눌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초대받아 가서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끼리는 서로 즐거울지 모르나,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칭찬 받을 일이 될 수 없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가시적인 면과 비가시적인 면을 동시에 가진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그 속내가 더 중요하다.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정중한 "술과 식사의 초대"는 그 뒤에 감추어져 있는 "허기진 이해득실"을 동반한다. 이 경우 초대는 향응(饗應)이 된다. 투자한 만큼의 대가를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경우, 대인관계는 이러한 이해득실의 계산에 기초한다.
사람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아무런 계산도 없이,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도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데 있을 것이다. 사랑이 바로 그렇다. 사랑은 계산을 할 줄 모르고 그저 베풀 줄만 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가진 것이 없어 갚을 수도 없는 그런 사람들을 당신의 식탁에 초대하신다. 바로 이런 하느님 사랑의 정신이 우리들의 사랑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나중에 하느님 나라에서 그만한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하늘 나라의 보상이 약속된 것은 확실하지만, 그 보상은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사랑을 실천한 의인(義人)에게 주어지는 보상이기 때문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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