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투르의 성 마르티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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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11-11 | 조회수1,751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 2003년 11월 11일 (화) -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316-397)
성 마르티노는 316년경 오늘날 헝가리의 판노니아 지방 사바리아에서 외교인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15세의 나이에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아버지의 뜻을 좇아 군에 입대한 마르티노는 친위대 기병이 되었고, 얼마 후 아버지의 전속(轉屬)으로 서유럽, 지금의 프랑스 북쪽 아미엥 지방으로 이주하게 된다. 어느 추운 겨울, 아미엥 성문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거지에게 자신의 망토를 반으로 갈로 입혀준 그날 밤, 꿈속에서 그가 낮에 주었던 반쪽의 망토를 입고 있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이 일로 해서 마르티노는 즉각 세례를 받았으니, 그 때의 나이는 18살이었다. 그 뒤 40살까지 줄곧 황제의 친위대로 근무한다.
356년 자의(自意)에 의해 군생활을 청산하고 프와티에르의 힐라리오 주교를 찾아가 삶의 조언을 구하지만, 주교는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한다. 판노니아 고향으로 돌아온 마르티노는 어머니를 개종시키고,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였다. 당시 성자의 신성(神性)을 부정하고, 양자설(養子說)을 주장하던 아리우스가 325년 니체아공의회를 통해 파문을 당하고,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헝가리의 일리리꿈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다. 마르티노는 이곳에서 아리아파와 논쟁을 벌이다 몰매를 맞고 쫓겨나, 이탈리아 밀라노로 가지만 거기서도 아리아파 계열인 주교로부터 추방되어 숨어 지낸다. 360년 다시 힐라리오 주교를 찾아가 그의 도움과 지도를 받아, 361년 리귀제에 수도원을 세웠으니, 이 수도원이 당시 갈리아 전역의 첫 수도원이 되었다. 그 후 많은 은수자들이 몰려들어 큰 수도공동체를 이룬다.
371년 마르티노는 성직자들과 시민들의 만장일치로 루아르 강변에 위치한 투르(Tours)의 주교로 임명된다. 자신은 375년 마르무씨에르에 세운 수도원에 기거하면서 정열적이고 사목과 설교로 주교직을 수행한다. 마르티노 성인은 주변의 이교도인들을 선교하는 도중 397년 11월 8일에 세상을 떠났고, 시신은 11월 11일 투르에 안장되었다. 성 마르티노는 예수 그리스도 이후 순교(殉敎)하지 않고 성인반열에 오른 첫 번째 인물이며, 서방 수도회의 사부인 베네딕토(480-550) 성인 이전에 서방 수도회의 제도를 개척한 탁월한 지도자이다.
[오늘의 복음] 루가 17,7-10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7) "너희 가운데 누가 농사나 양치는 일을 하는 종을 데리고 있다고 하자. 그 종이 들에서 돌아오면 ’어서 와서 밥부터 먹어라’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8) 오히려 ’내 저녁부터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실 동안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고나서 음식을 먹어라’ 하지 않겠느냐? 9) 그 종이 명령대로 했다 해서 주인이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10)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는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종들의 세상
오늘 복음은 "종의 의무에 관한 비유"를 들려준다. 오늘날 보수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회적 구조 속에서 "종의 신분"에 관하여 논한다는 것은 전근대적인 발상으로 치부(置簿)될 지도 모른다. 굳이 논한다면 "자원봉사"의 개념으로 알아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종의 신분이 법적으로 인정되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오늘 비유는 쉽게 이해된다. 품꾼이 보수를 요구하는 일은 당연하지만 종은 무상(無償)으로 일해야 한다. 종은 주인의 법적인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누구를 염두에 두고, 종의 의무에 관한 비유를 들려주시는 것일까? 앞서간 부정직한 청지기의 비유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16,1-15)에서 보았듯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을 잘 준수한 대가로 넉넉한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율법준수가 재물을 보상으로 줬다는 말이다. 그들은 이렇게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사상에 깊이 젖어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사람을 주인이신 하느님에 대한 종의 신분으로 설정하신다. 인간이 하느님의 종이라면, 인간은 하느님께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어떤 보상도 요구할 수 없다. 반대로 하느님만이 인간에게 온전한 섬김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이다.(루가 6,13; 마태 6,24)
인간이 하느님께 보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인간은 하느님께 큰 빚을 지고 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곧 빚이 아닌가? 그 빚을 우리는 도저히 갚을 수가 없다. 당시 빚을 갚을 수 없는 채무자가 채권자의 종으로 귀속되는 이치만 봐도 우리는 하느님의 종이다. 그래서 하느님이신 예수님도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던 것이다.(필립 2,7) 결국 예수께서는 종의 신분으로 종들인 인간을 죄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여 자유를 주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착각을 경계로 삼아 예수님의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는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10절) 하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은 그저 하느님의 은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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