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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장 바니에- 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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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배순영 쪽지 캡슐 작성일2003-11-11 조회수1,157 추천수4 반대(0) 신고
소명

 

 


 




 

 

   
   
투신
 




      한 곳에 뿌리를 내리면 자신의 자유가 구속받으며 다시는 다른 곳에 뿌리내릴 수 없게 되지 않을까 두려운 나머지 투신을 피하는 이들이 있다. 한 여자와 혼인하면 다른 수백만여자들을 포기해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을 자유의 구속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자유란 추상적인 개념 작용속에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란 특정한 사람들이 있는 특정한 토양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른 사람들을 위해 투신할 때 비로서 내적 성장이 가능해진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너무나도 투신할 줄을 모른다. 여러 면에서 내적 뼈대가 부실하고 결정적으로 "예"를 할 줄을 모른다. 그들의 세계는 거의 지나칠만큼 실존주의적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자기에게 충실하는 어떤 인물을 만나게 되면 충실이 의미하는 바를 차츰 깨닫고, 마침내는 스스로를 투신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만사에 시기가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태동기가 있으면 성숙기가 있고, 걷거나 달릴 때가 있는 가하면 가만히 서 있는 때가 있고, 발견하는 때가 있는 때가 있는가 하면 선택해야하는 때가 있다. 나무가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해야지 억지로 빨리 자라게 하면 나무는 피해를 입거나 죽는다. 그 이유는 뿌리를 내린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죽음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죽음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은 자라기를 갈망하는 새생명의 음성이 들릴 때 뿐이다.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부활시기- 부활을 향한 죽음-이다. 그리고 우
리는 오직 우리의 내적 성장이 특정한 지점까지 도달했을 때, ’제 집에 와 있다.’는 기분과 함께 하느님의 은총을 입어, "예, 아멘,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는 말로 우리 형제 자매들과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결단을 내리게 된다.



     어떤 공동체가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기 때가 이르기도 전에 결단을 내리도록 압력을 가한다면, 그것은 공동체 자체가 아직 자유를 획득하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공동체가 너무도 불안정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 공동체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설립된 것이라면 그리고 만약 성령께서 우리 공동체의 근원에 자리잡고 계시다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보내주실 것이다. 공동체는 기쁜 마음으로 사람들을 떠나 보낼 줄 알고, 또 하느님께서 다른 형제 자매들을 보내주시리라 믿을 줄도 알아야 한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그 모든 것은 너희에게 덤으로 주실 것이다."



      사람들은 공동체 안에 들어와 따뜻한 마음과 정서적 생명력을 지니기 전에 적극적인 일꾼이 될 수는 없다. 그러면 그들은 곧 굳어져 버리게 된다. 공동체는 사람의 정서적 욕구와 따뜻한 마음을 존중해야 한다. 공동체는 이런 것들의 성장의 자리이다.



     어떤 사람들은 공동체를 비판한다. 그 비판이란 결국 ’나는 투신하기 싫다.’는 말을 달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자기 변명의 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솔직히 털어놓는 편이 더 낫다. ’내가 투신해야 할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공동체 안에서 평안감을 느끼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를 이 정도의 깊이에서 발견하고 함께 나누는 일이 중요하다. 만일 자기 때가 아직 오지 않았을 경우, 그 들이 불편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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