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연중32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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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11-13 | 조회수1,808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 2003년 11월 13일 (목) -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루가 17,20-25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20)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겠느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문을 받으시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21) 또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 22) 그러고 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영광스러운 날을 단 하루라도 보고 싶어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아라, 저기 있다’ 혹은 ’여기 있다’ 하더라도 찾아 나서지 마라. 24) 마치 번개가 번쩍하여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환하게 하는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그날에 그렇게 올 것이다. 25)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은 먼저 많은 고통을 겪고 이 세대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야 한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나의 유언장
연한 어둠이 하늘땅 사이에 깔리고, 간간이 뿌리는 빗방울이 쌀쌀한 바람을 타고 땅을 적시고 있던 어제 오후 2시쯤, 우리 대학교 재학 중인 1학년 학생 하나가 도서관 옥상에서 허공을 가르며 투신하여 운명을 달리 하였다. 오전 시간에 수업 과제물로 "나의 유언장"을 제출하고 난 뒤, 교문 앞에서 함께 점심을 먹자는 친구들의 손을 뿌리치고 도서관에 가야 한다며 걸음을 재촉하던 그 학생은 그 길로 그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갔다. 말수는 적었지만 급우들과 우애가 깊었고, 성실하고 머리도 꽤 좋았던 그 학생, 열심한 개신교 신자로 교회에서 남달리 모범적이었고 주일학교 선생도 맡았던 그 학생은 공부하던 책들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인생의 고뇌들을 적어둔 노트들을 담은 가방을 잘 놓아두고, 안경을 벗어 둔 채로 우리 곁을 떠났다.
갑작스런 비통함에 하늘도 땅도 모두가 울었고, 모여든 학생들과 급우들의 눈에도 금방 눈물이 고였다. 각 부서에서 여러 가지 정황과 자료들을 모았고, 총장님을 비롯하여 처장들이 모여 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 입들은 모였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이것저것 자료들을 살펴보긴 했지만 어떤 말로도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는 것이 어려운 만큼 죽는다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왜 그렇게 쉽게 가야했냐는 것이다. 친구가 마지막으로 누워 있었던 그 자리에 비를 맞지 않게 갓을 만들어 촛불을 켜고, 꽃도 가져다 놓고 주위의 사람들과 기도를 드렸다. 굽어 살펴달라고 기도했다.
현대병원 영안실에 빈소를 마련했는데,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내일 바로 출상을 해야할 처지라는 소식을 듣고 늦은 시간이었지만 조문을 갔다. 아버지는 없었고,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은 어머니와 집사님 한 분, 우리 학생들과 친구들 몇몇이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한눈에 그녀의 깊은 신앙심을 읽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니는 몫 돈으로 적지 않은 외아들의 등록금 마련을 위해 하루종일 일하는 손을 가지고 계셨고, 바빠서 아들에게 정답게 해 주지 못했음을 못내 아쉬워하셨다. 빈소에서 소리내어 연도를 바치고 성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227)를 불러주며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좀더 있으면서 함께 고민하고 갈등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면서 고인(故人)의 영원한 안식을 빈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죽음 앞에서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은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이제 내가 산 삶을 뒤돌아보고자 한다. 뒤돌아보니 보이는 것은 몇몇 절친한 친구가 보이고, 부모님도 계신다. 선생님들까지 계신다. 나의 삶의 일부였던 분들이 생각난다. 죽음 앞에 삶은 잠깐 불어 스쳐 지나간 바람처럼 느껴진다. 지나간 시간들은 이제 내 머릿속에 한 조각의 기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특히 표면적으로 볼 때 중요해 보이던 것들이 이제 가치 없는 한 줌의 재로 바람에 흩날린다. 공부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 친구들과 즐거웠던 시간들, 소중하게 간직해온 물건들, 이제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럼 이제 죽음 앞에서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향한 마음만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사는 동안 수없이 쓰러지고 넘어질 때 잡아주시고 일으키시던 그 손이 내 손을 꼭 잡고 계신다. 내가 죽으면 육신은 깨끗하게 화장시켜서 적당한 산(우리 집 뒷산이나 아무 산에나)에 뿌려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주기 바란다. 내 나머지 물건이나 재산은 교회에서 처리해 주어 구제하고 선교하는데 쓰길 바란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별할 수 있어서 참 큰 복이다. 남아있는 나의 후손들에게는 인생을 없어져버릴 것에 쓰지 말고, 죽음 이후에도 남을 것에 쏟으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은 스치는 것이니 다른 헛된 것을 붙잡으려해도 붙잡지 못하니 조심하여 참된 길을 걷기에 힘쓰기 바란다."◆[고인의 유언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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