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곳에서는 재미있는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시립 오케스트라가 주최하는 마라톤으로 슬로건은 "베토벤을 두드려라(Beat Beattoven)." 였다.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재 레코딩한 기념으로 연주시간 49분 9초 내에, 정해진 거리 8km를 완주하는 참 재미있고 기발한 대회였다.
달리는 구간 구간마다 베토벤과 관련된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는데, 하이라이트는 도착지점 부근에서 시립 오케스트라가 직접 나와 ’잠자는 베토벤을 두드리기 위해’, 아니, 힘들어하는 주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우리의 9번 교향곡을 연주하며 맞아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마라톤대회에 서너 번 참가한 적이 있는데, 아무리 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완주를 앞 둔 목표지점 부근에서조차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만나면 웬지 힘이 쑥 빠지곤 했다. 그냥 미소지어주고 박수만 쳐주어도 좋을 텐데, 시립오케스트라가 나와서 연주까지 해주다니... 날아갈 듯 하겠는걸...싶다.
마라톤 대회라고 해서 달리는 사람만 참가하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걷고 싶으면 걸어도 된다. 다만 이 경우 달리는 사람의 절반거리인 4km를 역시 정해진 시간 내에 완보하면 되는 것이다.
이 외에도 대회운영 상 갖가지 아이디어들이 즐비했다.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먹는다’를 슬로건 하에 미리 등록하는 사람 참가비 할인 해주기, ’규모의 경제’를 적용해 가족단위 신청에 패키지 요금적용, 단체참가자 중 최우수팀을 뽑아 시립오케스트라 포스터에 이름 실어주기, 대회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후원자가 되면 그 중에서 추첨해 내년 뉴욕마라톤 대회참가 행운권 증정 등등...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넘어서서 내게 가장 의미심장하게 와 닿았던 것은, 마라톤을 잘했다 못했다하는 기준을 적절하게 선정하여 참가자 대부분을 즐거운 승자로 만들어주었다는데 있다.
마라톤대회에 참여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무리 혼자와의 싸움이라고 할 지라도 막상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상대적인 기록이나 등수에 신경이 쓰이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베토벤의 시간 속으로만 들어오면 누구나 승자가 되는 것이다. 마치 마라톤의 정신을 더 철저하게 드러내어 자신과의 싸움, 자신에의 도전에 유머러스한 절대기준을 만들어준 셈이랄까?
이와 관련되어 성경에는 그 유명한 달란트의 비유가 나온다. 사람들에게는 각자 나름대로 주어진 달란트가 있다. 5달란트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고, 2달란트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다. 5달란트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2달란트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보다 우수한 것이 결코 아니다. 5달란트를 가진 사람은 스스로와 경쟁해서 5달란트를 더 만들어내고 2달란트를 가진 사람은 2달란트를 더 만들어내면, 둘 다 잘했고 둘 다 승자이다. 상대비교하지 않고 달란트에 따른 유연한 절대기준을 적용하면 다같이 인정받는 행복한 삶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이러한 유연한 절대기준은 과연 어디쯤 있는 것일까? 이번 베토벤 대회가 보여준 것과 같은 적절한 성취기준은 과연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일까? 분초를 다투는 경쟁에 에너지를 소모하지도 않고, 또 스스로에게 너무 느슨해져 창조적 에너지를 낭비해버리지도 않는, 그런 보이지 않는 손길 같은 기준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