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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이 짠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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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25 조회수1,470 추천수21 반대(0) 신고
6월 26일 연중 제13주일-마태오 복음 10장 37-42절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마음이 짠해져서>


이 한세상 살다 보면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십자가들, 절대로 바라지 않았던 십자가들이 수시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때로 그 어떤 십자가는 지독하게도 우리 주변을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 삶 전체를 휘감습니다. 어쩌면 평생 우리가 지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며칠 전 기운이 하나도 없는 얼굴로 저를 찾아온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너무도 딱했습니다. 얼굴을 뵙기조차 송구스러웠습니다. 마음이 짠해져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고작 마흔 밖에 안 된 딸이 먼저 세상을 뜬 것입니다. 이틀 전에 장례식을 치루셨답니다. 아직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건강도 여의치 않다는데, 앞으로 어머님이 지고 갈 십자가를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자식 먼저 앞세운 부모님들, 참으로 그 가슴이 찢어집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한 평생 죄인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십니다. 가장 힘든 것이 자식을 저리 황망히 세상을 떠났는데...숟가락 들기가 그렇게 힘들다고 하십니다. 참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셨지요.


아직 어리지만 기구한 인생여정 끝에 저희 집에 입소한 형제가 있습니다. 두 아이가 지금까지 겪어온 사연들을 듣고 있노라면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는지 소설도 그런 소설이 없습니다. 둘만이라도 헤어지지 말고 꼭 붙어 다니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서로의 존재가 부담스러웠는지 그 동안 둘 사이는 꽤 껄끄러운 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 조금 철이 든 형이 동생에게 사랑의 공개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를 듣고 있노라니 눈시울이 다 뜨거워졌습니다.


“사랑하는 동생 **에게. **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너에게 쓰는 편지다. 어색하기도 하고 무슨 말을 써야 할 지 모르겠다. 형이 너한테 지금까지 살면서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고 형으로써 안 좋은 모습만 보인 것이 정말 후회가 된다. 생각과 마음으로는 너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었다. 불편한 너의 손발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럽다. 정말 미안해. 늦었지만 이제 내가 너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어. **야, 힘내고, 너의 입가에 미소가 계속 번질 수 있으면 좋겠어. **야, 그리고 사랑한다. 이런 말을 이제야 하게 되니 정말 미안하다. 하나 밖에 없는 동생에게 형이.”


참으로 가슴 흐뭇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가슴 미어지는 사연입니다. 부모가 잘 뒷바라지해줘도 제 몫을 하기가 어려운 세상인데, 부모 없이 홀로 서기 위해 한평생 죽을 고생을 겪어야 할 아이들의 십자가가 너무도 커보였습니다.


때로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수용하기 힘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라는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십자가는 난 데 없이 다가오는 것입니까? 피할 방도는 없습니까? 어떻게 십자가를 이해해야 합니까?


한평생 십자가를 예방하면서, 살얼음 위를 걷듯이 조심조심 살아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 누구도 무작정 십자가를 피해 다닐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십자가에 대한 적극적 수용' '십자가의 가치 인정' '십자가에 대한 의미부여'입니다. 결국 십자가 앞에 대범해지는 길입니다. 십자가에 지나치게 연연해하지 말고 십자가를 친구처럼 여기자는 것입니다. 십자가 가운데서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고맙게도 우리가 매일 걷는 십자가의 길 그 도상 위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십자가의 인간' 예수님이십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우리가 지고 가는 매일의 십자가에 대한 이해와 수용, 의미부여가 가능합니다.


번민과 고통의 십자가가 엄습해오는 순간은 하느님 만날 준비를 하는 순간으로 생각하십시오. 치욕의 십자가가 다가오는 순간은 하느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은총의 순간임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도 힘에 겨운 십자가를 지고 휘청휘청, 비틀비틀 걸어가는 이웃들을 바라봅니다. 신앙인으로서 그들을 위해 어떻게 처신해야하는지 생각해봅니다.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그들을 위해서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그들이 십자가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게 할 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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