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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장 아름다운 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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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황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7-06-11 조회수1,385 추천수21 반대(0) 신고

 

 

 

『가난한 과부의 헌금』
황 미숙 소피아 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8-44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 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사진작가 최민식(76)씨의 사진, 굿 뉴스 자유게시판
1976년 부산. 자갈치 시장의 생선장수 아주머니가
아이를 업고 자장면으로 점심식사를 대신 하고 있는 모습」

 

 

위 사진은 자유게시판에 올려진
「보릿고개」사진 중의 한 장면으로,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 엄마, 우리 서민, 우리의 모습을
가장 진솔하게 보여주는 걸작품이 아닌가 한다.

 

 

나는 이 사진 앞에서 가슴 찡~한 큰 감동을 받으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가난한 과부가
바로 이 사진 속의 억순이 엄마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가난한 과부는 사진 속의 억순이 엄마처럼
자신의 현실과 인생에 대해 매우 솔직하면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봉헌하러 줄을 서서 나갈 때,
자신의 헌금 액수,
구체적으로 돈 칼라와 숫자에 조금 신경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며
어깨너머로 우연하게 외모에서 풍기는 ~티에

어울리지 않은 칼라 색상을 목격하기도 한다.
나도 내 헌금 칼라와 액수가 스스로 부끄럽다고 생각될 땐
애써 남에게 보이지 않도록 신경 쓰기도 한다.*^^*

 

 

누군가 헌금 궤를 지켜보고 있고,
부자들은 자랑스럽게 큰돈을 넣고 있는데
가난한 과부는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동전 두 닢을 달랑 헌금 궤에 넣고 있다.

 

 

나 같으면 헌금 궤를 지켜보는 사람과
부자들의 헌금에 주눅이 들어
아예 헌금을 하지 않는다거나,
아무도 없을 때 슬쩍 동전 두 닢을 넣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 바닥에서 아이를 등에 업고
누가 보든 말든 자장면 한 그릇을 열심히 비워가는
사진 속의 억순이 엄마처럼,
가난한 과부도 누가 보든 말든 보무당당하게
헌금 궤에 동전 두 닢을 넣고 있다.
아, 이 당당함이란!

 

 

동전 두 닢!
이 여인에게 동전 두 닢은
참 깨끗하고도 정직한 돈이 아닐까 한다.

 

 

아이를 등에 업고 시장 바닥에서 생선장사를 하는
사진 속의 억순이 엄마는
정직한 노동으로 돈을 버는 건전한 노동자이다.
남을 등쳐먹는 불량한 사기꾼이나

불로소득(不勞所得)자가 아니다.
억순이 엄마가 백 원을 벌었든 천원을 벌었든,
그 돈은 검은돈이 아닌 깨끗하고도 정직한 돈이다.

 

 

대부분 우리 주위에서도
정직한 방법으로 돈을 번 사람들은
비록 소액일지라도 감사할 줄 알며,
남에게 희사할 줄도 알고 정직하게 돈을 쓴다.
양심에 꺼리지 않게 돈을 벌어
적재적소에 돈을 잘 쓰는 것도
멋지게 인생을 사는 한 방법이 아닌가 한다.

 

 

설혹,
천 원짜리 한 장을 봉헌한다 하더라도
내 형편과 분수에 맞는 금액이라면
결코 나 자신과 주님께 부끄러운 봉헌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부정직한 방법으로
많은 돈을 벌어 많은 금액을 봉헌한다면
어디까지나 양적인 봉헌일 뿐이지
주님께서 기뻐하실 질적인 봉헌은 아닐 것이다.
먼저 주님과 자기 양심에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올바른 봉헌, 진정한 봉헌은 아니다.

 

 

부자는 자신의 넉넉한 소유물 중 일부를
헌금함에 넣었지만
가난한 과부는 번제물처럼
자기 자신을 통째로 헌금함에 봉헌했다.

 

 

믿음과 사랑은 온전한 투신이다.
가난한 과부는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허세를 부린 것도 아니요,
어리석은 행위를 한 것도 아니다.

 

 

부자들은
한 손은 나를 위해 얼마를 쥐고 있고
한 손은 주님께 얼마를 봉헌하고 있지만,
가난한 과부는 두 손으로
동전 두 닢을 몽땅 헌금함에 넣음으로써
주님의 헌금함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투신하고 있는 것이다.

 

 

부자들이 물질적인 돈을 헌금하고 있다면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믿음과 사랑을 봉헌하는 행위,
곧 영적인 헌금을 하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투신인가!

 

 

오늘 복음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는다.

 

 

주님 앞에 시커먼 양심과 시커먼 돈다발 대신
자기 분수에 맞게
깨끗한 양심과 깨끗한 봉헌을 드리자.

 

 

사진 속의 억순이 엄마처럼
건강한 노동, 정직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주님 앞에
정직한 봉헌, 정직한 양심도 함께 봉헌하자…!

 

    오늘도 밝고 기쁜 하루 되십시오.*^^*

            Why Worry, Nana Mousko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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