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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준성사] 성사, 은총의 표징: 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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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작성일2014-12-11

[성사, 은총의 표징] 준성사

 

 

가톨릭교회에는 일곱 성사 외에도 준성사(準聖事)라는 예식이 있습니다. 성사는 아니지만 성사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면서 신자들에게 영적인 도움을 주는 교회의 예식들을 준성사라고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희회의 문헌인「전례헌장」60항에 따르면, 준성사란 “어느 정도 성사들을 모방하여 특히 영적 효력을 교회의 간청으로 얻고 이를 표시하는 거룩한 표징들”입니다.

 

이를테면 세례성사에 사용될 세례수의 축성,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그리고 병자성사 등에 사용하기 위한 각종 기름의 축성, 미사가 거행되는 제단의 축성 등이 준성사에 속합니다. 준성사에는 언제나 기도가 포함되며, 흔히 안수, 십자성호, (세례성사를 기억하기 위한) 성수 뿌림과 같은 일정한 표징이 따릅니다.

 

 

준성사의 핵심은 축복입니다

 

준성사의 기본 형태는 축복으로서, 축성(祝聖), 축복(祝福), 구마(驅魔)의 3가지로 구분됩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 그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악마를 쫓아내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셨으며, 어린이들을 축복하셨고, 빵과 물고기를 축복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그들에게 병자 치유와 악마 퇴치의 능력을 부여해주시고, 사람들에게 평화를 빌어주라고 하셨습니다(마태 10,5-8.12; 마르 3,15; 루카 10,9). 제자들의 뒤를 이어서 교회도 신자들의 영적 이익을 위해 사람과 물건을 축성하거나 축복하고, 악마를 쫓아냅니다. 

 

준성사의 기본이 되는 축복은 내용적으로는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하느님의 선물을 청하는 기도입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온갖 영적 인 복”(에페 1,3)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거나, 혹은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십자표를 그으면서 축복을 합니다. 

 

축복의 대상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음식, 물건, 장소도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서 병자와 임산부가 축복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활 계란과 같은 음식, 묵주나 성상(聖像) 또는 자동차와 같은 물건, 집이나 상점, 사무실 같은 건물도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축복은 사람을 성별(聖別)하여 하느님께 봉헌하고, 물건과 장소를 세속적인 것에서 구별하여 전례 거행에 사용합니다. 이 경우에 성유(聖油)를 발라서 축복을 하면 축성이라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봉헌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성당의 제대에 성유를 바르면서 축복하는 것을 축성이라고 부릅니다. 수도원장이나 수녀원장의 축복, 동정녀들의 축복, 수도자들의 서원 등은 봉헌이라고 표현합니다. 

 

교회가 어떤 사람이 마귀의 세력에 침해받지 않고 마귀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공적으로 권위를 갖고 하느님께 청하는 것을 구마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세례성사를 거행할 때 사제는 다음과 같은 구마기도를 바칩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죄에 얽매인 저희에게 주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자유를 주시려고 당신 외아드님을 보내셨으니, 저희가 여기 있는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겸손되이 간구하나이다. 세상의 유혹을 겪으며 악의 간계에 걸려들어 스스로 범죄하였음을 주님께 고백하였사오니, 이 형제들을 당신 성자의 수난과 부활로 어두움의 권세에서 구해내시고, 그리스도의 은총을 지켜주시며 인생길에 항상 보호해주소서.”

 

어떤 사람이 마귀에 들렸다고 판단되면 특별한 구마 예식을 행하게 되는데, 이를 대구마(大驅魔)라고 부릅니다. 대구마를 행하기에 앞서 해당되는 사람이 정신질환과 같은 질병에 걸린 것인지, 정말 마귀 들린 것인지를 식별해야만 합니다.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이라면 구마 예식이 아니라 마땅히 정신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대구마는 주교의 허락을 받은 사제만 행할 수 있으며, 교회에서 정한 규칙을 정확하게 지키면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교회는 구마예식을 통해서 예수님이 주신 영적인 권한으로 악령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켜서 다시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의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준성사와 성사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준성사는 두 가지 점에서 성사와는 차이가 납니다. 첫째,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제정되었지만, 준성사는 교회가 신자들의 영적 이익을 위하여 제정한 것입니다. 준성사는 교회가 설정한 것이기 때문에 교황은 새로운 준성사를 설정하거나, 기존의 것을 고치고 폐지할 수 있다.(교회법 1167조 1항)

 

둘째, 성사는 성사 자체의 힘으로, 곧 사효적(事效的)으로 은총을 전해주지만, 교회가 제정한 준성사는 자체적으로 효력을 내지 못하며, 교회가 중개자로 나서서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준성사의 효력은 그것을 받는 사람의 정성에 달려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십자가를 축복하여서 집에 모셔둔다고 할 때, 축복 받은 십자가 자체가 무슨 효력을 낸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축복 받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십자가 죽음으로써 인간을 구원하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분께 자신을 맡겨드리며 그분의 길을 따르고자 결심하며 기도한다면 분명 필요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준성사는 누가 집전하나요?

 

준성사의 기본 형태는 축복인데, 축복은 성직자만이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 받은 사람은 모두 하느님께 선택되어 축복 받은 사람으로서 다른 이를 축복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신도들도 축복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아 세례 때 부모와 대부모는 세례 받는 아이의 이마에 작은 십자표를 그으면서 축복을 해줍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잘 실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부모가 자기 자녀들이 먼 길이나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들에게 축복해 줄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기회가 되면 부모가 자녀에게 축복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가족이 함께 모여서 저녁기도를 마친 다음에 잠자리에 드는 자녀에게 부모가 이마에 십자표를 그어주면서 축복해 줄 수 있습니다.

 

교회의 공적인 차원에서 행해지는 축복이나 성사생활에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진 축복은 성품성사를 받은 주교, 신부, 부제만 줄 수 있습니다. 제단의 축성이나 수도자의 봉헌 예식은 주교 혹은 주교의 위임을 받은 사제만이 유효하게 거행할 수 있습니다. 대구마의 경우도 앞에서 언급한 대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교의 허락을 받은 사제만이 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법은 (남용을 방지하지 위해서) 준성사가 교회 권위에 소속되어 있고, 그 집행에 있어서 교회 권위에 의해 승인된 예식과 경문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제 1167조).

 

 

축복 받은 사람은 축복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1984년에 교황청이 발간한 『축복 예식서』는 축복이 교회의 전례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면서, 가능한 말씀 전례와 공동의 기도와 함께 연결해서 축복을 전하라고 강조합니다(20-22항.) 즉 준성사는 단지 외적인 표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축복을 받기 위해 성령의 임재를 간구하는 청원의 행동입니다. 따라서 묵주나 성물을 축복할 때 아무 말 없이 십자표만 긋는 것보다는 짧더라고 기도문과 함께 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축복은 좋은 데에 사용되는 사물에만 가능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데에 사용되는 무기를 축복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에는 전쟁터에서 사용되는 병기와 무기를 사제가 성수를 뿌리면서 축복을 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오늘날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습니다.

 

신의 축복을 받으려는 소망은 그리스도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종교에서든 다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의 축복은 동시에 과제를 의미합니다. 축복을 받은 사람은 주위에 축복을 주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었듯이 말입니다.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이 떨치게 하리라.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 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창세 12,2-3)

 

따라서 축복을 청하면서 단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자세를 버리고 다른 이에게 축복의 표지가 되고자 하는 마음 자세를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자동차 축복을 받으면서 자기 차가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기를 청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스스로 안전운행, 양보운전을 하고 음주운전을 피함으로써 다른 운전자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결심도 함께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축복을 받은 메달(성패)이나 성상이 마치 부적처럼 그 자체로서 어떠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성패를 몸에 지니게 되면 무조건 축복을 받고 모든 위험과 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자동차에 묵주를 걸어두거나 작은 성상을 모셔두는 것 자체로 사고를 방지해준다고 믿는다면, 이는 미신적인 태도입니다.

 

성패나 성상은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우리를 축복하시고 악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해주시기를 기원하는 표지일 뿐입니다. 성패를 몸에 지니고 성상을 모셔두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축복과 보호를 청하면서, 그것을 받기에 합당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12월호, 손희송 베네딕토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서울 Se. 담당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