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체성사] 성체 성혈 대축일 특집: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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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 작성일2020-06-16 | |||
[성체 성혈 대축일 특집]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그리스도 희생 제사 재현한 성찬례, 신앙생활의 원천이자 정점
교회는 매년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이뤄진 성체성사의 제정과 신비를 기념하는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기념한다. 이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후 첫 번째 목요일이나 일요일에 지켜지는데, 한국에서는 첫 번째 일요일에 지낸다.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인 성체성사를 기념하는 뜻깊은 날을 맞아 성체성사를 살아가기 위한 마음가짐과 자세를 살펴 본다.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성사
전 세계적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미사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다. 감염의 위험으로 인해서, 영혼의 양식인 성체성사로부터 강제로 ‘거리두기’를 해야 했던 그리스도인들은 한편으로는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모시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을 체험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거듭된 ‘거리두기’로 인해 점차 주일미사, 성찬례의 은총이 없이도 신앙생활이 가능할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신자들이 성당에 가지 않아도, 미사에 참례하지 않아도,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직접 만나고 친교를 나누지 않아도,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성찬례에 참례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러한 인식의 확산은 최근 평신도신학연구소인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실시한 ‘팬데믹 시대의 신앙 실천’ 설문조사에서 실증적으로 드러났다.
이 조사에 의하면, 소수의 열심 신자층을 제외한 많은 신자들의 경우, 주일미사 참례 의무에 대해서 느슨해진 의식을 갖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미사에 다소간 형식적으로 참례하거나, 또는 가끔 미사에 빠지곤 하는 대다수 신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강제적인 ‘거리두기’ 이후 주일미사 참례 의무에 대한 투철함이 상당히 퇴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앞으로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유행) 현상이 되풀이될 공산이 매우 크고 따라서 지금까지와 같은 경험을 어쩌면 앞으로도 종종 하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성당 공간과 대중적이고 집합적인 전례 및 행사 중심의 신앙생활과는 달리, 개인과 가정 등 소규모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일상적 신앙실천의 대안들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요체인 전례와 성사, 주님의 몸과 피를 모시는 성찬례의 의미와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교회는 성체성사로 살아간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상 희생 제사를 앞두고 최후의 만찬에서 제정한 성체성사와 교회의 불가분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조명하는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Ecclesia de Eucharistia)를 2003년에 반포했다.
이 회칙은 성체성사 각 부분의 신학적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성체성사의 가장 본질적인 신학적 원리인 구원 역사의 현재화와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해서 말해 준다. 즉, 회칙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명을 이어받아 온 세상을 복음화하는 소명을 갖고 있으며, 성체성사는 그러한 복음화 사명의 원천임을 일러준다.
“교회는 십자가의 영원한 희생 제사에서, 그리고 성찬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결합됨으로써 자신의 사명을 수행할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성찬례는 모든 복음화의 원천이며 정점입니다.”(회칙 22항)
‘성체성사와 교회의 관계에 관한’ 이 회칙은 가장 핵심적 교리이며 ‘교회 생활의 중심에 서 있는’ 성체성사의 ‘놀라움’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다. 특히 이 회칙은, 일부 지역에서 성체 조배가 거의 사라지고 성찬의 신비를 축소하거나 희생 제사가 아닌 단순한 형제애의 잔치로 거행하거나, 직무 사제직의 필요성이 가려지는 등 성체성사에 관한 오류와 혼란이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올바른 교회 가르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반포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자칫 전례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면, 교회는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재현하는 성찬례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일깨울 필요가 있다.
- 루카 지오다노의 ‘사도들의 영성체(1659년경)’.
바르게 성체성사에 참여해야
성체성사에 대한 올바른 참여를 위해서는 희생 제사로서 성체성사의 의미를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회칙은 “성찬례는 해골산의 희생 제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희생 제사이며 단지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에게 영적 양식으로서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것이라는 식의 일반적인 의미만을 지닌 것은 아닙니다”(13항)라고 강조했다.
즉 ‘희생 제사의 의미를 없애 버리고 단순히 형제애의 잔치로 거행’(10항)하는 것은 성체성사의 신비를 훼손하는 것이기에 성체성사를 단지 영적이거나 상징적인 의미로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성체성사 안에서 이뤄지는 그리스도의 현존, ‘실체변화’를 단지 상징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희생 제사의 구원의 힘은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실 때 완전하게 실현된다.”(16항) 모든 신자들은 미사에 참례해 영성체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우리 안에 받아 모심으로써 많은 은혜를 받게 된다. 그만큼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바로 성체성사다. 이에 따라 바른 자세와 준비로 성사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히 성찬례는 항상 미사 중에 거행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완전한 기도인 미사, 특별히 주일 미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교황교서 「주님의 날」(Dies Domini)에서 주일미사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심각한 장애가 없는 한 신자들은 미사에 참례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비록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강제된 물리적 거리두기로 주일미사에 참례할 수 없는 상황이 빈발한다고 하더라도, 주일미사와 성체성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소홀해져서는 안 된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성체성사, 삶으로 살아야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성당 안에서, 일정한 시간 속에 거행되는 미사와 성체성사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전례의 아름다움은 신앙 안에서 일치를 이루고 삶 속에서 신앙을 드러내 증거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통해 비로소 빛을 발한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전례 거행에 쏟는 관심과 노력은 항상 온 세상을 복음화하려는 교회 공동체의 사명 안에서 결실을 맺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교회 생활의 원천이자 정점인 성찬례의 본질은 선교하는 공동체의 모습 안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는 기쁨으로 가득하고, 언제나 기뻐할 줄 압니다. 또 작은 승리를 거둘 때마다, 곧 복음화의 활동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기뻐하며 경축합니다. 기쁨에 찬 복음화는 우리 일상의 요구 안에서 선을 키우며 전례 안에서 아름다움이 됩니다. 전례의 아름다움을 통하여, 교회는 복음화하고 복음화됩니다. 전례는 또한 복음화 활동을 경축하는 것이며 자신을 내어 주는 새로운 힘의 원천입니다.”(24항)
성체성사는 교회 울타리 안에서 폐쇄된 공동체의 모임으로 그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이들 각자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큰 사랑으로 구현돼야 한다. 그럴 때, 팬데믹이 강요하는 거리두기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중단시키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연대와 형제애의 계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가톨릭신문, 2020년 6월 14일, 박영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