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준성사] 소금의 의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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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 작성일2004-10-30 | |||
소금의 의미
성서에서의 소금
소금은 인간 생활에 있어서 두 가지 면에서 필수적인 요소를 갖고있다. 첫째는 음식물의 맛을 내는 가장 기본적인 조미료로서 생존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고 둘째는 음식물을 장기간 보존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되는 방부제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중요성으로 소금에 대해 고대로부터 많은 국가들이 매우 엄중한 관리를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으나 이스라엘은 사해의 높은 염도(26%)에 의해 큰 어려움 없이 소금을 얻을 수 있었고 성서는 이 사해의 위치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고 있다(창세14,3; 민수34,3.12: 신명3,17).
구약 성서에서의 소금은 일반적인 용도로서 사용되었음을 나타내기도 하며 또한 매우 중요한 상징으로서 사용되기도 한다. 우선 생필품으로 중요하게 여겨졌음을 구약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에즈라 6,9 : 7,22 ; 집회39,26) 특히 집회서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제일 필요한 것으로 물과 불, 쇠와 소금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기온이 높은 사막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소금이 꼭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음식 맛을 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의 소금(욥6,6)으로 조미료로서의 중요성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구약성서 특유의 상징적인 의미로 소금이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는데 우선 하느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약의 징표로 소금을 사용하였다(민수18,19 ; 2역대13,5). 이는 부패하지 않는 소금의 성질을 상징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셈족의 관습에 의하면 소금이 우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소금은 제의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물에는 의무적으로 소금을 뿌려야 했고(레위2,13; 에제43,24), 하느님의 제단에 분향하기 위한 가루 향을 만들 때도 소금을 사용하였다(출애30,35). 그런가 하면 정화의 의미로 소금을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엘리세오가 우물에 소금을 뿌리는 장면(2열왕 2,20-23)과 아기가 태어나면 소금으로 닦아주는 관습을 언급하는(에제16,4) 이야기는 소금이 약품으로 사용되었던 로마시대의 관습과도 맞닿아 있다. 또한 염도 높은 소금 땅은 모든 생물을 생육을 막는 불모지를 의미하여 소금의 땅(예레17,6:스바2,9)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하였고 또한 저주하다, 초토화시킨다는 의미로 “아비멜렉이 세겜성을 점령하고 그 안의 백성들을 죽이고 온 성읍을 헐고 소금을 뿌렸다”(판관9,45)라는 기술도 구약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구약성서에서는 일상적인 소금의 사용과 함께 보다 소금의 의미를 보다 상징화 제의화시겼다고 할 수 있겠다.
신약성서에서는 비록 단 몇 차례만 소금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지만 소금의 의미를 그리스도론적으로 재해석함으로서 완전히 새로운 상징을 소금에 부가하고 있다. 마태오복음의 산상설교와 참된 행복선언에 이어서 예수는 곧바로 제자들이 세상의 소금임을 선포한다(마테5,13). 이는 구조상으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14절의 선언과 병행되어 있다. 여기서 소금과 빛은 당대의 종교 사회적인 상황의 반영으로 예수의 제자는 불신의 세대에 참 신앙의 맛을 주는 소금이며 불신의 암흑을 비추는 빛과 같은 존재라는 선언이 담겨있다. 이러한 선언은 병행하는 공관복음에서 더욱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마르코복음에서 예수는 유혹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성 담화에 이어 소금에 관해 언급하는데 먼저 소금은 좋은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세상의 소금인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유혹에 빠지거나 변질되지 않고 사회를 그리스도의 계명으로 변화시킬 것을 명령한다(마르9,50). 루가복음도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하며 그렇지 못하면 짠맛을 잃은 소금과 같음을 예수는 선포한다(루가14,34). 그러므로 신약성서에서 예수가 선포하는 소금의 새로운 상징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겠다. 첫째, 소금은 우선 그리스도인들의 신원과 연결되어 있다. 마태오 복음에서 보이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어둠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하며 세상을 그리스도로 맛들이는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소금은 그리스도인들의 결단의 항구성과 관련되어 있다. 마르코와 루가가 전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향한 선택의 단호함과 불변함을 견지해야 하는데 이는 마치 소금의 맛이 변화되면 더 이상 소금이 아닌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신앙의 항구성을 필연적으로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례에서의 소금
고대 로마에서는 아기가 태어난 지 8일이 지나면 소금을 그의 입술에 뿌려주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는 어린 아기를 악신의 세력이 가하는 위험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한 제례적 행위였다. 성서에서도 제물에 반드시 소금을 뿌린 후 봉헌하라는 규정이 있었으니 이는 그리스도교 전례 안에서 소금을 사용하게 하는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전례에서 소금의 사용은 성서가 말하는 소금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 때문이었다. 우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5,13)이라는 예수의 선포는 곧 바로 초대교회의 세례성사와 연결되었다. 3-4세기경의 아프리카와 로마에서는 새 영세자들에게 십자표시를 해준 뒤에 곧 이어서 입에 축복한 소금을 넣어주는 예절과 구마예절을 행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상징인 동시에 악신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를 청하던 로마의 이교 관습과도 연결되어있는 듯이 보인다. 참고로 젤라시오 성사집(sacramentarium gelasianum: 7세기) 288항에는 소금으로 악신을 쫓게 해달라는 기도문이 있었고 이는 1614년 예식서에 어른 세례예식과 어린이 세례예식 모두에 전해졌다. 그러나 새 예식서에서는 구마기도에 소금의 사용을 삭제하였으나 첫 구마기도에 부패를 없애달라는 내용이 아직 남아 있다(성인입교예식서114항).
소금은 또한 성수의 축복에 전통적으로 사용되어왔다. 고대 로마에서도 소금을 물에 넣어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하였다. 6세기경에 이르러 소금을 넣은 성수의 사용을 그리스도교 전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소금이 주는 성서적인 의미와 함께 물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이유에 의해서 성수를 축복할 때 소금도 함께 축복하여 성수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소금을 사용하면서 성수를 축복하던 기도문은 젤라시오 성사집 1559항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는 1614년 예식서를 거쳐 현행 예식서에 부분적으로 남아있는데 기도문의 내용이 예언자 엘리세오가 우물을 축복하여 부패를 막았던 성서기록을 떠오르게 한다. 젤라시오 성사록의 기도문 의하면 소금은 영혼과 육신의 건강과 악신의 세력으로부터의 보호받는 하느님의 상징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현행 <미사경본>의 부록 중에서 <성수예절(ordo ad faciendam et aspergendam aquam benedictam)>은 성수 축복 시에 전통적인 방법대로 소금을 사용하던지 소금 사용을 생략하던지를 성수를 축복할 집전자가 선택하게 하였으며 미사 밖에서 성수를 축복하는 <축복예식서> 33장은 소금을 사용하지 않도록 되어있다.
그 밖에도 이전의 로마예식은 동물들을 위한 소금의 축복을 부록에 포함하고 있고 지역별로는 개에 물린 곳에 바를 소금을 성 후베르또 축일에 축복하기도 하였다. 현행 축복예식서는 소금을 축복하는 예식이나 소금을 사용하여 축복하는 예식은 없으나 만일 소금을 축복해야할 필요가 있다면 <축복예식서> 36장 <신심 때문에 요청되는 음식이나 기타 물건의 축복>에서 행할 수 있다.
참고문헌 ▷ g.gancho, sale, in 5권, torino:leumann cc.70-73 / j.gratsch, liturgical use of salt, in nce 12권 pp.989-990 / w.nauck, salt as a metaphor in instructions for discpleship. in stth 6 (1952), pp.165-178
[인천가톨릭대학교 홈페이지에서, 이완희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