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373번 글에 관한 의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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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대성 | 작성일2001-04-13 | 조회수2,333 | 추천수8 | |
성가 게시판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꼴로쎄움 안테나 관리자 이대성(요한)입니다. 부활 대축일을 맞이해 여러분 모두에게 부활의 기쁨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자주 들르지는 못하지만 가끔식 이 곳 성가게시판에 들어와 올려져 있는 글들을 볼 때마다 우리 한국 천주교회도 이제는 성음악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분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모습을 대하는것 같아 마음 속 깊히 뿌듯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한국 천주교회 성음악 발전을 위해 여러가지 제안과 기탄없는 의견들이 오가고 있는 것을 볼 때 그 모양새가 참 아름답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분들이 계시는 한, 이제까지 교회안에서 그 위치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한국 천주교회의 성음악 분야가 기필코 큰 발전을 이룩해 낼 것이라는 기대감 역시 큽니다.
오늘은 외국곡 특히 라틴어 곡의 가사의 자국어 번역에 관한 저의 의견을 올리고져 합니다.
성가 게시판 2458번에 올려진 이유재님의 "라틴어로 부를까? 한국어로 부를까?"라는 글을 읽고 난 후 이 글을 올려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음악 작곡/이론가로써의 의견이기도 합니다.
우선 서양어 가사로 씌여진 음악을 굳이 자국어로 개사해서 부를 때, 음악해석론적인 관점에서 야기될 수 있는 가장 큰 혼돈은 원곡의 가사에서 각 단어의 음절 액센트와 단어들이 조합해서 이루고 있는 한 문장 전체의 억양(Intonazione/Intonation)이 가장 큰 문제거리로 등장합니다. 이는 비단 동양어권뿐만 아니라 라틴어를 모어로 하고 있는 서양언어들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유재님께서 밝히셨듯이 오스트리아가 낳은 천재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도 오페라는 서양 오페라 음악의 발상지인 이탈리아어로 작곡되어야 오페라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다고 고집했던 사실도 언어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리듬과 억양때문이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듭니다. 라틴어를 모어로 하고 있으며 라틴어를 가장 오랫동안 사용했던 이탈리아에서 그레고리오 성가의 가사를 라틴어에서 이탈리아어로 번역해서 불렀을 때 이웃사촌간이니 별 문제가 없을 듯 하지만 액센트와 억양의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주님의 기도’가사를 보면 그레고리오 성가에서는 "Pater Noster, qui es in caelis: sanctificetur nomen tuum"입니다. 이를 다시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면 "Padre nostro, che sei nei caeli: Sia santificato il tuo nome"입니다. 이 ’주님의 기도’는 이탈리아인이라면 열심한 신자가 아니더라도 어려서 첫 영성체 준비를 할 때(이탈리아는 본당에서 첫 영성체 교리를 3년, 견진교리를 2년씩 의무적으로 하고 있음) 배운 곡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악보를 보지 않고도 외워서 쉽게 부를 수 있는 성가입니다.
그런데 "Sia santificato il tuo nome"부터는 원 곡인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라틴어 그레고리오 성가로 ’주님의 기도’를 부르다가 이탈리아어로 번역된 곡을 부르면 전혀 다른 성가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바로 액센트와 억양이 라틴어와 이탈리아어가 서로 충돌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음선상이 아닌 새로운 멜로디를 억지로 만들어 넣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교회 성음악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그것도 로마에서 ’주님의 기도’를 원곡인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과 리듬을 크게 손상시키면서까지 라틴어 가사에서 자국어인 이탈리아어로 번역해 부르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요?
성가의 중심은 멜로디가 아니라 가사이기때문입니다. 가사를 잘 이해하고 더욱 심도있는 기도를 성가로 바치기 위해서는 선율과 리듬이 원곡과 차이가 난다해도 이는 교회안에서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처럼 그레고리오 성가 전문가들의 귀에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레고리오 성가를 들어본 적도 불러본 적도 없는 대다수의 신자들은 자국어인 이탈리아어로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를 수 있다는 그 자체를 행복해 하고 또한 만족을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번 기회에 한가지 밝히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레고리오 성가를 자국어로 번역할 때 라틴어의 음절과 자국어의 음절이 차이가 날 경우 반드시 동음선상에서 음절을 해결해 주어야 선율진행상 큰 무리가 없으며 원곡에 충실한 곡이 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서양언어권에서는 라틴어 성가를 자국어로 번역했을 때 원곡에 대한 손상이 매우 크다는 것이 저의 학술적 이론입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음악해석론과 미학적인 관점입니다. 아시다시피 알파벳 언어에서는 액센트의 위치만 바뀌어도 상대방은 말의 뜻을 알아 듣지 못합니다. 외국유학 시절 언어문제로 고통이 있었다면 바로 현지언어의 액센트와 억양때문에 힘들었던 점이 유학을 경험해 보셨던 분이라면 누구나 공통된 견해일 것이라 사료됩니다.
라틴어로 된 성가를 자국어로 개사해서 부를 때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는 액센트와 억양을 해결할 수만 있다면 하는 점이 유럽의 그레고리오 성가 전문가들이 생각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 한글은 액센트와 억양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레고리오 성가를 자국어로 번역해서 불렀을 때 가장 원곡에 충실히 부를 수 있는 언어는 한글이 단연 최고라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실제로 제 스스로 그레고리오 성가를 한글로 번역해서 부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한글 가사를 이용해 중세기풍의 폴리포니아를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라틴어 성가(그레고리오 성가와 폴리포니아)의 한글 번역 관한 질문과 의견이 제 게시판(꼴로쎄움 안테나/성음악 질의응답)을 보시면 적지않게 게제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적어도 그레고리오 성가 또는 폴리포니아등 라틴어 가사로 된 성가들은 한글로 번역해 부른다 해도 큰 문제는 없으며 가사 내용까지도 이해할 수 있으니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이는 제가 30여년 이상 그레고리오 성가를 비롯한 가톨릭 교회 성음악 현장에서 배우고 익히면서 또한 연구하면서 얻은 결론이기도 합니다.
지금부터는, 이유재님께서 비록 성가 게시판에 사과의 글을 게제하였고 문제를 일으킨 글의 내용을 일부 수정하시어 다시 올리셨지만 이미 적지 않은 분들이 수정 이전의 글을 보셨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노파심에서 다음의 글을 계속합니다.
이유재님께서는 글 중에서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스스럼 없이 밝히셨습니다.
"... 그렇지만 우리나라 작곡가들 중에서도 황당한 작곡을 하신 분도 있더군요. 얼마전 우리 작곡가에 의해 새로 만들어진 ’알렐루야’를 불렀는데 못 갖춘 마디 3/4박자로 시작하는 곡이었습니다.( 아직도 제가 다니고 있는 성당 성가대는 이 곡을 쓰고 있답니다. -_-!). 즉 ’약/ 강 약 약/’ 이렇게 박자가 배치된 거지요. 그렇다면 당연히 ’알렐’이 약박으로 오고 강박에 ’루’가 배치되어야 하는데 박자를 맞추려고 그랬는지 작곡가는 ’알/ 렐 루 야/’ 이렇게 만들었더군요. 세상에 ’렐’에 악센트가 있는 알렐루야가 있다니! ..." 이상은 이유재님의 글 입니다.
이 글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알렐루야’는 반드시 ’루’에 강박이 오고 ’알렐’은 약박에 와야 한다는 작곡기법상의 한 원칙을 이유재님께서는 주장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선 ’알렐루야’에서 ’렐’에 강박을 준 세칭 황당한 작곡가들과 그 곡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너무 많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는 작곡가들만 소개합니다.
가톨릭 교회성음악의 대표적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는 빨레스트리나(Palestrina)의 폴리포니아 ’Alleluia/Tulerunt’ 제 35마디의 Altus와 Tenor 2 파트를 보면 ’렐’이 강박에 오며 2분음표로 사용되어 있습니다.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의 오라토리오 ’Christus’, 217쪽 ’O filii et filiae’의 가사에서 첫 번째 ’알렐루야’ 역시 ’렐’이 2분음표의 강박의 위치에 나타나 있습니다.
1912년부터 50년까지 로마 교황청 성음악 대학에서 작곡과 교수였으며 로마 4대 대성당중 한 곳인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성음악 감독이었던 레피체 리치니오(Refice Licinio)의 성음악 모음곡집 ’Trittico Francescano’, 제 23쪽 의 ’알렐루야’도 ’렐’이 모두 마디의 첫 음, 즉 강박의 위치로 사용했습니다.
재순악보 출판사에서 발행한 ’성암브로시오 사은찬미가/천상의 모후여 기뻐하라’ 곡집에서 제 34쪽 ’알렐루야’(안또니오 깔다라 작곡/김수창 신부 개사)도 ’렐’이 2분음표의 강박으로 사용되어 있습니다.
가톨릭 성가집 139번 ’알렐루야’(이문근 신부 편곡) 역시 3/4박자의 못갖춘마디로써 ’렐’이 2분음표의 강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작년에 발표했던 새 미사곡 5번(성바오로회 출판/이대성 작곡) 제 14쪽 ’알렐루야’에서도 ’렐’이 못갖춘마디의 강박 2분음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가지만 더 예를 듭니다. 가톨릭 성가집 127번 ’십자가 바라보며’는 바로크 음악의 대가 바하가 작곡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라틴어 가사를 보면 ’Tantum ergo Sacramentum’에서 라틴어에서 액센트가 오는 ’Tan-’은 못갖춘마디의 약박으로 ’er-’는 첫 째 마디에서 두 번째 음인 약 박의 위치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유재님의 의견대로라면 저를 포함해서 빨레스트리나, 리스트, 레피체, 깔다라, 바하 모두 "황당한 작곡가"들이 되었고 성가 139번을 편곡하신 이문근 신부님은 황당한 편곡을 하고 만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예만 더 들어 볼까요? 로마 가톨릭 교회 성음악에서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레고리오 성가 중 부활성야 미사 중에 부르는 성대한 알렐루야(세번 알렐루야)를 보면, 분명히 "렐"에 익투스(Ictus; 그레고리오 성가의 리듬 중 강박)가 오며 게다가 바로 그 음은 긴 멜리스마(Melisma; 음군)로 화려하게 장식까지 하고 있습니다. 단어 자체의 액센트는 분명히 "루"에 오는데 왜 이 그레고리오 성가에서는 오히려 이토록 "렐"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까지 강조하고 있을까요?
르네상스 음악시대 때야말로 라틴어 가사와 성가의 리듬과의 일치가 가장 핵심적인 작곡기법의 기본이었습니다. 이는 비단 성가뿐만 아니라 마드리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르네상스 음악의 대가였던 빨레스트리나가 그것을 몰라서 ’알렐루야’의 ’렐’을 강박으로 사용했겠습니까? 바로크의 대가였던 바하가 가장 기초적인 작곡기법을 몰라서 그렇게 썼겠습니까?
이제부터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화가들이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는 수많은 고뇌와 인내가 그 바탕이 됩니다. 한 작곡가의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술가들의 예술적 영감은 그 자신의 고유영역으로서 마땅히 존중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기본적인 원칙조차도 익히지 못한 풋내기가 자신의 영감이랍시고 아무렇게나 제 마음대로 곡을 써도 된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닙니다.
라틴어를 가사로 한 성가를 작곡할 때 단어의 액센트를 살려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또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됨에도 불구하고 그 차원을 뛰어넘는 더 아름다운 예술적 이상을 구체화 시키기 위해 빨레스트리나나 바하같은 "대가"들도 그 기본적인 원칙을 초월해 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단적인 예로 리스트의 곡에서 "렐"에 강세가 주어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듣는 이들이 어색하게 느끼기는 커녕 오히려 이 곡을 통해 "알렐루야"를 더 심오하게 느낄 수 있으며, 만일 이 곡이 반대로 "루"에 강세가 오도록 고쳐진다면 정말로 걸작을 망쳐버리는 일이되고 말 것입니다.
부활 성야를 하루 앞두고 있습니다. 한국천주교회에서 성음악 분야에 종사하고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 부활의 기쁨이 가득하기를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 "주님 수난과 부활의 빠스카 성삼일"은 가톨릭 전례력에서 정점을 이루고 있는 가장 큰 축일입니다. 이 중요한 축일을 보내면서 더 아름답고 합당하고 거룩한 성음악이 주님께 봉헌되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2001년 4월 13일 성 금요일 새벽에 로마에서
이대성 요한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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