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특별기고]성가대원과 애국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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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건정 | 작성일2002-02-04 | 조회수1,941 | 추천수13 | |
너는 조국을 위하여 무엇을 하였느냐?
지금으로부터 약 50 년 전.... 김일성의 남침으로 우리 식구도 고생 고생하여 부산으로 피란갔을 때 거리에 나붙은 포스터가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포스터는 백발의 노인이 눈을 부릅뜨고 검지손가락으로 행인을 향하여 묻는 말입니다. 그 때에도 일부 계층은 군대에 안 가고 해외로 도피성 유학을 가고 전쟁이 끝난 후 귀국하여 박사, 정치가, 사업가로 출세하여 대대손손이 잘 살고 있습니다. 그 때 순박한 마음으로 국가와 민족을 지키다가 죽고 다친 순국자와 그 가족은 충분한 보상도 없이 회한의 삶을 살고 있지요.
요즘 인기 있는 어떤 대중가수가 군 입대를 여러 번 공언하고, 입영통지서를 받은 후에는 미국 국적을 취득하여 군 복부의무를 고의로 기피하였다고 하여 뉴스가 되고 있는데 필자는 군악대(음대)출신 성가대원 얘기를 경험담 소개로 소감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몇 년 전 필자는 현역장교로 대한민국 육, 해, 공군 3군 본부가 있는 충청남도 소재 삼위일체성당에서 성가대 지휘자를 2년간 역임한 사실이 있다. 성가대원은 약 40 명! 남성 파트는 3군 영관장교(대령, 중령, 소령)들이 주축이고 여성파트는 군인 부인들이다. 그런데 이 맘때 쯤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를 연습하려는데 테너가 못 받쳐준다. 템포도 빠른데다가 박자 진입이 쉽지않아서 군대행진곡 이외에는 평생 듣도 보도 못한 곡이니 잘 될 리가 없다. 그래서 부득이 군악대장들을 만나 가톨릭 신자인 군악대원 차출 협조를 당부하니 본인은 신자가 아니면서도 잘 도와준 기억이 있다. (즉 저녁 점호시간에 성가연습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다)
한 공군 병장은 국악(대금) 전공이라 성악곡을 어려워 하던 차이고 육군 일등병과 이등병 2명이 성악과 출신이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선임자인 일병은 지방대학 성악과 1학년을 마치고 입대하여 나이가 어리고 무대경험도 없지만, 후임 신병은 이등병인데 서울에서 성악과를 졸업하고 즉, 졸업연주회까지 마치고, 입대하여 적령기가 지난 나이백이 였다. 노래는 물론 이등병이 잘하는데 가끔 연하의 선임자(일병)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가? 내무대에 가면 계급사회이니 도리가 없다. 늦게 입대한 대졸 신병이 얼마나 몸고생, 마음고생이 많았겠는가? 이들은 성악병으로 입대했는데 손등을 보니 피부가 두더지처럼 터져있기에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성악전공이지만 의장행사를 위하여 금관악기를 꼭 불어야 하므로 추운 겨울에 야외에서 훈련하고 나팔 연습하느라 그렇다는 것이었다.(관악기를 못 불면 익힐 때까지 휴가 금지!)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숙연해 지기도 했다. 아무튼 이들의 활약으로 군종성당에서 부활대축일(군종교구장 주교미사)에 할렐루야를 열창한 기록을 세웠다. 그 때 합창을 했던 성가대원들의 자긍심이 대단하여 지금도 낡은 녹음 테이푸를 듣고, 또 듣고 한다. 이 들은 지금 명예롭게 국방의무를 다하고 병장으로 제대하여 외국에 유학 간 것으로 알고 있다. 음악을 전공한 대한의 아들들은 이렇게 국가에 충성하며 제 의무를 다 하고 있다. 분단국가에 태어난 숙명이므로 선택이 아니라 의무인 소이이다.
이렇게 고생을 해 가며 조국의 부름에 응하는 젊은이가 대다수인데 아무개는 시간을 끌고 끌다가 이제는 미국시민이 되었으므로 한국 군대에는 안가고 한국에서는 돈과 명예만 따 먹겠다니.....국민을 우롱한 처사를 납득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이들을 두둔하는 열성 팬이 또 있다니 ......
이스라엘 군대는 겉으로는 헐렁해 보여도 야물차기 그지 없다. 전쟁이 나면 젊은이들이 해외로 튀는 것이 아니라 유학 중에라도 자진 귀국하여 입대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러기에 아랍권에 포위되어 살아도 생존권이 보장받는 것인데 이스라엘 군대에서는 기율 위반자에게 가장 큰 처벌이 " 전투 참가 금지" 이다. 이 처벌은 매우 굴욕적이라서 가장 겁내는 처벌이다. 우리네 일부 못 난 젊은이 같으면 당장 집으로 전화하여 "엄마!, 나 전투 면제 받았어!" 하며 자랑하고, 그 못난 어미는 또 "아이구 잘됐구나 ! 귀여운 내 아들아!" 할른지도 모른다. 우리는 신앙인 이전에 국가관이 뚜렸해야 한다. 국가관이 흐물흐물한 사람이 정치를 하면 백성이 피곤해진다(꼭 그런것은 아닐진데 대한 남아로서 군복무 의무를 마치지 않은 사람을 국가관이 투철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가관이 뚜렸해야 신앙도 지킬수 있다. 나라없이 2천년을 방황한 이스라엘 민족의 사례를 교훈 삼아야 한다. 북녁 땅에서 순교한 외국, 한국성직자와 신자가 얼마인데.....순국자 집안에서 순교자도 나올 수 있을지니....
우리나라의 80여명 군종신부님들은 신학생시절에 졸병으로 복무하고 제대한 후에, 나이 서른이 넘어서 다시 군사훈련을 받고 두 번째 군복무를 하고 있는데.....한 번도 못하겠다?
[지금 평양에 성당이 하나 있다고 하니까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없는지, 평양 장충성당 성가대원은 모두 성악을 전공한 골수 공산당원이라는데.....외국이나 한국 신부가 와서 미사를 마치고 나면 성서와 성가책을 모두 대외비로 취급하여 별도 보관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모든 종교행사가 당국에 의한 연출인것을.......북한 정권을 제대로 알아야하는데...]
제 나라 국가와 민족에 대한 신성한 의무를 내 팽개친 사람은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주님을 찬양하는 성가대에 와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대령부터 이등병까지 현역으로 구성돤 군인성당 성가대 지휘자였음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오늘도 외친다.
"대한민국의 모든 병역필, 지휘자, 성가대원 만세!"
서울에서 김빠뜨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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