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음악자료실

제목 천주교 CCM과 청년들-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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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지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2-12-11 조회수2,081 추천수2

사실 가톨릭CCM에선 새로운것을 좋아하는 청년가톨릭신자들의

욕구를 전혀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청년가톨릭신자들의 욕구가 없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대개는 고전성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따라부르기에 오히려 더 벅찹니다.

그렇기에 싫증을 느낄수 밖에 없습니다.

유행가. 널리 알려지고 듣기 좋은 노래는 결국 따라부르기 좋은 노래입니다...

 

 

요즘 세대는 좋아하지 않는것은 듣지 않는 세대입니다.

 

젊은이에 대해 촛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생활성가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바보스럽게도 그런문제에 대한 확실한 대안을 아직 못찾고 있습니다

아직 천주교 CCM 은 모든것이 시작하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그 예전의 예가 없는 것도 큰 이유입니다.

 

 

일단 모든것이 부족합니다. 완성되어 있는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가를 부를 가수,성가를 만들 작곡가,성가를 연주할 연주자,

성가를 연주할 장소,성가음악을 발표할수 있는 기획사,

그리고 가장 중요한것은 실력있는 사람들을

이미 개신교에 너무 많이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신상옥,김정식씨 우리 생활성가계의 1대 분들이십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노래는 우리 신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음악적인 정보에 비추어볼때

너무나 어려운 상황에서 너무 좋은곡들을 많이 만들어내셨습니다.

지금 세월이 많이 흐른 시점에서 그분들의 노래를 들으면

좋게 느껴집니다.

마치 비틀즈의 노래가 지금처럼 듣기 좋은것처럼,...

 

하지만 중요한것은 언제까지 그분들에게 의지할수 만은 없다는것입니다.

 

가끔 그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분들이 너무 장악하고 있는것 아니냐고.

 

저는 단호히 말할수 있습니다.

그렇게 좋은 곡들을 당신은 만들었냐고...

그런데 저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또 그분들 편곡이 너무 촌스럽지 않느냐 라는 말도 듣습니다.

하지만 촌스러운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노래 멜로디가 아주 현대적인 멜로디가 아니기 때문에

구수한 멜로디에는 오히려 구수한 편곡이 더 어울리는 법입니다.

 

밥에다가 케찹을 발라먹으면 안되겠죠.

 

업적에 대해선 인정하고 존경할만한 부분에 대해선 존경하는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것은 언제까지 그분들에게 의지할수 만은 없다는것입니다

 

이제 그분들 이야기는 그만하고.

 

최근에 여러 신부님들을 주축으로 한 생활성가가 많이 발표되어서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근데 문제는 신부님들 외에 다른 사람들의 생활성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것입니다...

 

 

이것은 생활성가를 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었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줄었다는것은 기반이 없기 때문에 라는 말과도 똑같습니다.

기반이 없다는것은 발전이 없다는 말과도 똑같습니다

발전이 없다는 이야기는 지금 결코 잘하고 있는것이 아니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PBC생활성가대회 등등... 많은 생활성가 등용문이 있고..

매년 많은 생활성가 뮤지션들이 그런곳들을 통해서 발돋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등용문은 정말 필요한것입니다, 그리고 그곳들을 통해 발표되는 노래들또한

훌륭합니다/

하지만 그 등용된 인재들이 활동할곳이 없기 때문에..

그저 그 대회한번 뿐으로 수많은 인재들은 묻혀가고 있습니다..

활동해야 할곳은 당연지사로 신자들이 모이는 유일한 공간 성당이지만

아이러니 하게 성당에선 활동을 할수가 없게 되어있습니다

 

 

 

물론 생활성가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생활성가만을 하시는 분은 없습니다.

대개는 다른 직장을 갖고서 짜투리 시간에 조금씩 조금씩

생활성가를 하는것인데...

 

뮤지션이 음악에 대해 투자하는 시간이 적다는것은

결국 퀄리티가 낮아질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 밖에 안나옵니다.

 

그리고 생활성가 뮤지션이 다른직업을 갖게 되는것은

생활성가 활동으로 돈을 벌수 없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퀄리티를 낸다는것은 결국 대중가요의 형식을

따오는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대중가요의 형식이란 것은 결국 하나의 스타일의 편곡법일 뿐입니다.

듣기 좋은 편곡이란것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것은 메세지이고 그러한 편곡법에는 성서의 메세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것은 고정관념일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가요를 따라하는것이 아닙니다.

그런 스타일의 편곡법을 참고할뿐입니다.

 

마치 비틀즈의 렛잇비가 성가인것처럼...

듣기좋은 멜로디와 편곡법은 대단히 중요한것임을

비틀즈의 렛잇비는 너무나 잘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저는 개신교쪽의 활동하시는 분들은

그 수입의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이 되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퀄리티 높은음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분들은 그 문제 해결이

안되겠지요

 

 

저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정말 이 생활성가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할수 있는

폭넓은 기반이 생긴다면...

또 그안에서 서로 생계를 위한 뮤지션들의 치열한 경쟁.

경쟁이라 함은... 더 좋은 퀄리티의 음악을 만들어내는것이겠지요.

 

뭐 세력싸움이든 무엇이든간에

결국은 음악퀄리티가 가장 중요한것이지요.

 

 

가톨릭안에서 퀄리티 높은 음악이 존재하느냐

퀄리티 낮은 음악이 존재하느냐 이것의 차이는 엄청나다고 생각합니다.

신자들은 모두 음악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서 지적해낼수는 없지만

그들은 음악을 들으면서 무의식적으로 퀄리티가 낮은 음악에 대해선

마음속에서 거부를 하게 되어있습니다.

 

(저의 퀄리티의 기준은 뮤지션의 주님에 대한 찬양,곡의 완성도,흡입력,

많은 공감대 형성,연주력 등등.... 여러가지들입니다)

 

생활성가음악을 하는것은 단순히 음악을 하는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 찬양을 위해 생활성가 음악을 하는것이지

만약 음악이 좋아서 생활성가 음악을 하는것이라면 이것은 ...

엄청난 모순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음악이 좋아서 생활성가를 해야지만

좋은 퀄리티의 음악을 만들어낼수 있는것은 사실이고.

또!가톨릭 교회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생활성가를 해야겠다라는 발상은

사실 하기 어려운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어단어를 몇개 모르는 사람은 절대 영어를 유창하게 말할수 없습니다.

 

제 생각은 생활성가 뮤지션이 생계를 보장받을수 있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중음악에 익숙해진 가톨릭 젋은 청년들에게

그것보다 더 강한 중독성으로 다가설수있는 음악이 필요하다는것에 대해서...

제 생각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런 중독성 강한 음악이 만들어 지기 위해선

많은 경쟁이 있어야 하고

경쟁이 생기기 위해선 생계를 보장받을수 있는 환경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부님들을 통한 생활성가의 보급도 굉장히 소중합니다.

하지만 신부님들의 숫자는 경쟁을 하기에 너무나 적습니다.

 

 

환경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가톨릭에서 그것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

느껴야 하겠죠.

아무리 제가 백번 이야기 해봤자 가톨릭에서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면

제 이야기는 허공에 퍼질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에 대해서 점점 줄어드는 젊은 신자들의 숫자로 증명할수 있습니다...

 

물론 음악만으로 젊은신자들을 성당에 끌어들일순 없지만..

그나마 음악이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젊은 세대는 결국 젊은 세대들의 음악스타일을 듣게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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