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회음악 산책1: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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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8-01-07 | 조회수2,264 | 추천수0 | |
[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1)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Die Schoepfung’ "갓 창조된 세계의 흥분과 희망"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맨 처음에 어떻게 탄생했을까? 또 인간은 어떻게 지금의 지구에 살게 되었을까? 현재는 빅뱅(big bang. 우주를 탄생시킨 대폭발) 이론이 우주 기원의 정설로 굳어져 있지만 이 가설 역시 완벽한 증명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우주의 탄생으로부터 인간이 마침내 지구에 살게 되기까지의 기나긴 과정을 나름대로 추측하고 상상해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Die Schoepfung>는 그런 상상에 날개를 달아주는 음악이다.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는 창세기 1장의 한 구절을 읽고 그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면 태초의 카오스(혼돈) 상태를 묘사한 하이든의 <천지창조> 1부 첫 곡을 들어보자. 우주의 혼돈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악기들을 사용해 이처럼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는 작곡가의 재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음악이 어떤 구체적인 상황이나 성질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곡에 ‘카오스’라는 제목이 붙어있지 않다면, 이 음악이 우주의 혼돈을 묘사하고 있다고 짐작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라토리오는 어떤 스토리를 전해주는 음악인만큼, 내용에 어울리는 음악적 묘사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스트리아의 로르아우에서 목수의 열두 자녀 중 맏이로 태어난 하이든은 모차르트, 베토벤과 시대를 공유했지만 천재적인 괴팍함이 거의 없는 온화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고, 모차르트는 그를 ‘파파(papa) 하이든’이라고 부르며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했다. 가난한 집안 환경 때문에 제대로 음악교육을 받지 못한 하이든은 나폴리 출신의 유명한 작곡가 포르포라의 집에 하인으로 들어가 허드렛일을 하며 그 보수로 작곡을 배우기도 했다.
서른 살 무렵 헝가리의 대귀족 에스테르하지 가의 궁정악장으로 평생직장을 얻은 하이든은 이후 30년 간 이 궁정악단을 지휘하며 평생 104곡의 교향곡, 현악 4중주 83곡, 미사곡 14곡, 오페라 25편 등 엄청난 양의 악곡을 남겼다. 유머감각도 뛰어났던 그는 <놀람>이라는 교향곡 2악장에서 조용히 연주하다 갑자기 큰 소리를 내게 만들어서, 음악회에서 졸기 일쑤였던 귀족들을 놀래켜 잠에서 깨우기도 했다.
빈의 궁정 도서관장이자 <실락원>의 독일어 역자인 고트프리트 반 슈비텐은 성경을 토대로 천지창조 6일 간의 과정과 창조주에 대한 찬미를 핵심으로 삼아 이 오라토리오의 대본을 썼다. 1796년에 작곡을 시작해 1798년에 작품을 완성한 하이든은 66세라는 나이가 무색하도록 열정적으로 이 작업에 몰두했다. “예전에는 한번도 <천지창조>를 작곡할 때만큼 경건한 마음으로 작곡에 임한 적이 없었다. 이 작품을 쓰는 동안 나는 날마다 하느님께 무릎을 꿇고, 작곡할 힘을 주십사 하는 간절한 기도를 바쳤다.”
하이든 스스로가 이렇게 밝힌 <천지창조>의 초연은 1798년 4월 29일 빈의 슈바르첸베르크 후작의 궁에서 이루어졌고, 이듬해 3월에는 빈 부르크테아터 에서 일반 대중을 위해 재초연되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간의 전쟁이 있던 시기인 만큼 하이든은 전쟁의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고 평화를 희구하는 심정을 작품에 반영했고, 나폴레옹 전쟁 시기 유럽의 불안한 정치적 상황 때문에 더욱 뜨거운 반응을 얻게 된 <천지창조>는 곧 유럽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연주되었다.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의 1부는 ‘빛이 있으라’는 하느님의 말씀 하나로 어두운 혼돈의 세계가 빛으로 가득한 질서의 세계로 바뀌는 과정을 담았다. 합창단이 ‘빛(Licht)’이라는 독일어 단어를 외치고 현악기들이 일제히 빠른 속도로 활을 그어댈 때 우리에게 쏟아지는 찬란한 빛의 폭포는 음악이 선사할 수 있는 체험의 극한을 보여준다. 여기서 세 명의 대천사 라파엘(베이스), 우리엘(테너), 가브리엘(소프라노)은 창조 첫 날부터 넷째 날까지의 작업을 해설하고 천사의 무리(합창단)는 주님의 영광을 찬미한다.
2부는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에 이루어지는 생명의 창조를 묘사하고 있다. 독수리의 힘찬 날갯짓, 사자의 포효, 기어다니는 벌레의 묘사도 흥미롭지만, 2부의 절정은 역시 인간의 창조다. 천사들에게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창세기 1장 26절)라고 하느님이 말씀하신 뒤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의 창조가 이루어진다.
3부에서 아담(바리톤)과 이브(소프라노)는 천사들과 함께 하느님의 창조를 찬미한 뒤 “그대와 함께 있으면 기쁨은 곱절이 되고...”라는 유려한 멜로디로 두 사람의 행복한 사랑을 노래한다. 1부의 숭고한 웅장함, 2부의 절묘한 유머감각, 3부의 우아한 아름다움에 이르기까지 <천지창조>는 노장 하이든이 평생 쌓아올린 음악적 성취를 유감 없이 보여준다. 갓 창조된 세계에 첫 발을 내딛는 흥분을 느끼게 해주는 가슴 벅찬 걸작이다.
■ 이용숙씨는 - 음악평론가이자 번역가인 이용숙(안젤라)씨는 이화여대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독문학과 음악학을 공부, 글쓰기와 강의, 방송, 음악회 해설 등을 통해 음악의 즐거움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지상에 핀 천상의 음악’ ‘음악이 들린다 클래식이 보인다’ 등 40여 종이 있으며, 현재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Tip
오라토리오는 대체로 성경을 근거로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음악극을 말한다. 오페라와는 달리 무대장치와 무대의상을 사용하지 않으며, 합창의 비중이 크다. 또 해설자가 등장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는 무대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곡으로, 많은 이들이 음반을 통해 만나는 작품이다. 특히 ‘천지창조’는 종교적인 극음악으로는 가장 많은 녹음을 남긴 곡 중 하나다.
‘천지창조’는 합창에 비중을 크게 둔 오라토리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합창이 압권으로 알려진 명반을 꼽는다면 부르노 바일이 지휘한 타펠뮤직 원전악기 오케스트라의 음반(소니)을 들 수 있다.
1983년, 카라얀 지휘로 빈 필하모닉과 빈 싱베라인의 연주를 녹음한 음반(도이치 그라모폰)은 감각적인 연출력이 돋보인다. 또 1980년에 녹음된 네빌 매리너 지휘로 성마틴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서정적인 연주가 특징인 음반(필립스)도 많은 평론가들이 추천하는 명반이다. [가톨릭신문, 2008년 1월 6일, 주정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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