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회음악 산책3: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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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8-03-02 | 조회수1,830 | 추천수0 | |
[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3)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Matthaus-Passion)’ 참회의 통곡 뒤에 오는 평온
“나는 그 사람을 모릅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의 관계를 단호하게 부인한다. “당신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야. 분명해.” 주위 사람들이 이처럼 베드로를 예수님의 제자로 지목할 때 베드로는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기를 쓰고 그 혐의를 벗어나려 애쓴다. 세 번이나 부인(否認)을 반복하면서. 그러나 새벽닭이 우는 소리와 함께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음을 깨달은 베드로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나 서럽게, 서럽게 운다.
이때 가슴을 저미는 현악기 선율에 실린 알토 가수의 절절한 호소가 베드로의 찢어지는 심경을 대변한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주님. 제 눈물을 보시고 제발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심장과 두 눈이 주님 앞에서 비통하게 울고 있습니다.”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 중 제47곡인 이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는 연주를 듣는 이들의 오장(五臟)을 휘저으며 서러운 통회의 눈물을 이끌어낸다.
사순절 내내 유럽 교회 이곳저곳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음악회가 열린다. 이때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품은 역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마태오 수난곡’이다.
올해 2월에는 바흐가 이 ‘마태오 수난곡’을 작곡해 초연한 독일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해 바흐의 ‘미사 b단조’와 ‘마태오 수난곡’을 들려준다. 같은 시기에 영국의 계몽주의시대 오케스트라와 클레어 칼리지 합창단도 서울을 찾아 바흐의 ‘요한 수난곡’을 연주할 계획이다.
수난곡(Passion)이란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복음서에 들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에 곡을 붙인 것. 부활절을 앞둔 성 금요일 전례 때 성직자와 평신도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사가, 베드로, 유다, 빌라도, 군중 등의 역할을 나눠 맡아 복음서의 수난 장면을 봉독한다.
이와 유사한 내용을 노래로 부르고 오케스트라로 반주하는 것이 곧 수난곡이다.
9세기 경에 처음 작곡된 단선율 수난곡은 성경 구절에 음정을 붙여 높낮이가 있게 부르는 정도였다. 그러나 음악의 형식이 복잡해지면서 수난곡도 모테트 풍의 수난곡, 폴리포니 수난곡을 거쳐 오라토리오 수난곡으로 발전해갔다. 당시 오페라의 대중적인 인기와 더불어 수난곡도 연극적인 성격이 강해졌던 것이다.
독일, 이탈리아, 영국을 거쳐가며 유럽 전역에서 사랑을 받았던 작곡가 헨델과는 달리 평생 독일을 떠나지 않았던 바흐는 고집 센 성격 때문에 고용주들과 충돌이 잦았다. 그러다가 나이 서른여덟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자신이 원했던 직장을 갖게 된다. 그것이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의 음악감독직이었다.
당시 교회의 음악감독은 교회력에 따라 전례에 사용할 음악 프로그램을 짜고 그 프로그램에 맞는 음악을 작곡해 연주할 책임을 지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일도 맡아야 했다. 전례 연주용으로 매주 새로운 칸타타를 작곡해야 하는 과중한 업무로 인해, 바흐는 예전에 작곡했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같은 세속음악 작곡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이듬해인 1724년 성 금요일 전례 때 토마스 교회에서 ‘요한 수난곡’을 선보인 바흐는 3년 뒤인 1727년 성 금요일에는 ‘마태오 수난곡’를 초연한다. 연주 시간이 세 시간 넘는 대곡(大曲)이지만 청중은 누구도 길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바흐 시대의 신자들은 아침 7시부터 11시까지 계속되는 주일 ‘아침 설교’ 시간에 꼼짝 않고 말씀과 음악을 듣는 데 익숙했고, 성 금요일 같은 중요한 전례일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교회에 앉아있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태오 수난곡’은 연주회용 작품이 아닌 전례곡이었다. 게다가 연극적 성격이 강하고 연주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바흐가 세상을 떠난 뒤 이 작품은 거의 공연되지 않고 망각 속에 묻혀버렸다.
그러나 1829년, 갓 스물의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은 이 작품을 발견해 베를린에서 초연했고, 이 연주회는 음악사에 중요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되었다. ‘마태오 수난곡’이 부활했을 뿐 아니라, 바흐의 생애와 작품 전체가 새롭게 조명되는 ‘바흐 르네상스’가 여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 수난곡의 1부에는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바른 여인, 유다의 배신, 최후의 만찬, 겟세마니 동산의 기도 등이 담겨 있다. 그리고 2부는 가야파와 빌라도의 심문, 베드로의 배반, 유다의 자살, 골고타 언덕,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두시고 무덤에 묻히시는 과정 등을 다룬다.
‘마태오 수난곡’에서 특별히 여러 차례 되풀이되며 마음을 울리는 멜로디는 옛 코랄(성가)에서 바흐가 가져온 것으로, ‘가톨릭 성가’ 116번 ‘주 예수 바라보라’의 선율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무덤에 묻히신 뒤에 합창단이 부르는 마지막 곡 ‘저희는 눈물로 무릎 꿇고’에 이르면, 우리는 한참을 격정적으로 울고 난 뒤의 평온하고 맑은 마음으로 이 위대한 작품과 작별한다. 그리고 가슴 속 긴 여운의 고요 속에서 수난의 고통을 묵상할 수 있게 된다. [이용숙(안젤라, 음악평론가)]
Tip
세계 최고(最古)의 역사를 자랑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합창단의 ‘마태오 수난곡’ 연주회는 2월 28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열린다. 4년만에 다시 한국에서 열리는 무대다. 이번 무대는 바흐의 음악정신을 계승한 제16대 칸토르,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빌러의 지휘로 꾸며진다. 이에 앞서 27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는 바흐의 ‘B단조 미사’도 들려줄 예정.
‘마태오 수난곡’을 담은 음반은 클래식 종교음반 중에서도 레이블이 다양한 편이라 선택의 폭이 매우 넓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토마스 교회합창단의 연주를 듣고 싶으면 루돌프 마우레르스베르거가 지휘한 음반(베를린 클래식)이 대표적이다.
칼 리히터가 지휘하고 뮌헨 바흐합창단과 뮌헨 바흐 관현악단 연주 음반(Archive)은 가장 고전적인 명연주로 추천된다. 또 성바오로미디어가 2005년 발매한 바 있는 빌렘 멩겔베르크 지휘의 음반도 명반으로 꼽힌다. 이 음반은 193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연주실황을 녹음한 것으로, 당시 실황연주의 관습대로 내용의 3/4 정도를 생략해 현대인들이 느낄 수 있는 지루함을 덜고 더욱 진한 감동을 응축하고 있다.
1988년 존 엘리어트 가디너가 지휘하고 잉글리쉬 바로크 솔리스트가 연주한 음반(Archive)과 오트 클렘페러와 필하모니아 연주의 음반(EMI)도 유명하다. 헬무트 릴링이 지휘한 바흐 콜레지움 슈투트가르트(hanssler)의 음반은 음질과 완성도에 대한 평가도가 높은 음반이다. 특히 필립 헤레베게는 바흐 음악 해석에 있어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 만큼 그가 지휘하고 콜레기움 보칼레, 라 샤펠 로얄이 연주한 음반(Harmonia Mundi)도 꼭 들어봐야할 명반 중 하나다. [가톨릭신문, 2008년 2월 3일, 주정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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