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회음악 산책18: 비발디의 오라토리오 '승리를 거두는 유딧'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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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8-10-27 | 조회수1,662 | 추천수1 | |
[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18) 비발디의 오라토리오 ‘승리를 거두는 유딧’ “적장 쓰러뜨린 매혹적인 여전사”
-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딧', 캔버스에 유화, 1620년경,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들고 있는 유딧', 캔버스에 유화, 1613년경, 피렌체 피티 궁 팔라티나 미술관.
잘라낸 적장의 머리통을 쳐들고 있는 용감한 여전사. 왜군의 적장을 끌어안고 투신했다는 논개 이야기보다도 더 자극적이고 엽기적이지 않은가.
성경 속의 이 소재는 당연히 예술가들의 관심을 일깨웠다. 카라바조, 알로리, 클림트…. 수많은 남성 화가들이 적장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를 처단한 이 유딧이라는 인물의 여성적 매력에 초점을 두었다. 그 그림들 속에 서 있는 유딧은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무시무시한 머리통을 쳐들고 있어도 여전히 매혹적이고 치명적인 ‘팜므 파탈(femme fatale)’로 보인다.
여성 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2년경)만은 좀 달랐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딧’이라는 젠틸레스키의 그림 속 유딧은 별로 아름답지 않다. 그대신 남성 화가들이 그린 어떤 유딧보다도 단호하고 결의에 차 있다. 소매를 걷어붙인 유딧의 튼튼한 두 팔, 복수심과 혐오감으로 일그러진 얼굴, 공범인 하녀의 적극적인 협조가 이 살인 장면을 더욱 실감나게 만들어 주었다.
구약성경의 ‘유딧’서는 아시리아 왕 느부갓네살의 ‘보복성 침략’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벌인 전쟁에 파병을 거부한 나라들을 전쟁이 끝난 뒤 침략으로 응징했던 것이다.
그가 최고사령관 홀로페르네스를 보내 점령하고 파괴하게 한 지역들 중 하나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베툴리아였다. 홀로페르네스의 군대에 포위된 베툴리아가 함락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이곳에 사는 과부 유딧은 고향을 위해 목숨을 걸기로 작정하고 하느님께 기도한다.
“간계를 꾸미는 이 입술을 이용하여 원수들을 넘어뜨리소서… 그리고 여자의 손을 이용하여 그들의 콧대를 꺾으소서… 당신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하느님이시고… 희망 없는 사람들의 구조자이십니다”(유딧 9,10~11).
그러나 그녀는 간계를 쓰되 원칙을 저버리지 않으며, 적진에 들어가 적을 속이면서도 자신이 믿는 신을 욕되게 하지 않는다.
타고난 미모 위에 갖은 치장을 하고 하녀와 함께 홀로페르네스를 찾아가는 유딧. 천하를 호령하는 적장을 한눈에 사로잡고 만다. 연회에서 종들이 다 물러나고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둘만 남은 뒤 홀로페르네스는 미녀를 앞에 두고 기분 좋아 마신 술에 취해 곧 잠이 들고 만다.
유딧은 홀로페르네스의 칼을 가져다가 두 번 목을 내리쳐 죽이고, 밖에서 망보고 있던 하녀를 불러 그의 목을 곡식자루에 넣게 한 뒤 함께 도망쳐 베툴리아로 돌아온다. 베툴리아는 넘치는 기쁨 속에 해방되었고, 결연한 용기를 보였던 유딧은 순결과 품위를 잃지 않은 채 민족의 영웅이 된다.
민족 구원의 상징이 된 성경 속의 과부 유딧은 회화 작품들 뿐만 아니라 모차르트, 스카를라티, 비발디, 오네게르 등 여러 작곡가들의 종교음악 작품 속에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문학작품 속의 인물이 되어 성경에서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보여 주기도 한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의 오라토리오 ‘승리를 거두는 유딧’은 유딧이 하녀 아브라(Abra)를 거느리고 홀로페르네스 진영을 찾아오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홀로페르네스를 비롯해 모든 아시리아 인들은 유딧의 빼어난 용모와 말솜씨에 반한다. 탐미주의적이라 할 만큼 이 오라토리오의 텍스트는 아름다움의 묘사에 총력을 기울이는데, 유딧을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이 앞다투어 그녀를 칭송하는 부분은 음악적으로도 듣는 이를 완전히 무장해제시킨다.
홀로페르네스의 오른팔인 내시 바고아(Vagaus)의 찬탄, 베툴리아의 지도자 우찌야(Ozias)와 베툴리아 인들의 유딧을 위한 기도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이 작품 속의 홀로페르네스 역시 피비린내가 뼛속까지 밴 야만적인 장수가 아니라 사랑 앞에서 저절로 시인이 되고 마는 부드럽고 매력적인 영웅이다.
1716년 ‘유딧’이 초연되었을 때 모든 배역은 비발디가 음악선생으로 일하고 있던 고아원 소녀들이 맡았다. 등장인물 중 남성이 셋인데도 모든 역할을 여성의 목소리로 듣게 되니 오늘날의 청중이라면 의아해하겠지만, 당시에는 여성 가수가 남성 배역을 노래하거나 남성 카스트라토가 여성 역할을 노래하는 일에 익숙했기 때문에 청중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 무렵 로마를 비롯한 다른 음악의 중심지에서는 오라토리오 대본을 이탈리아어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베네치아에서만은 라틴어 오라토리오가 유행했다. 카세티가 쓴 이 라틴어 대본에서 적장 홀로페르네스는 터키의 지배자 술탄을, 유딧은 이슬람의 폭력으로부터 기독교 세계를 구할 사명을 띤 베네치아를 상징하고 있다.
또 하녀 아브라는 기독교 신앙의 상징이고 민족의 지도자 우찌야는 교황을 뜻한다. 유딧은 홀로페르네스를 죽이기 전에 인간적인 연약함을 드러내며 자신의 두려움을 하녀 아브라에게 호소하는데, 이는 베네치아가 신앙의 힘에 의지해 기독교 세계의 아드리아해를 지킨다는 설정이다.
비발디가 이 오라토리오를 작곡하고 있는 동안 마침 베네치아 연합군은 터키와의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그래서 오라토리오의 초연은 전승 축하연의 일부가 되었다. [음악평론가 이용숙(안젤라)씨]
Tip
바로크 음악사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승리를 거두는 유딧 (Juditha triumphans)’은 비발디의 오라토리오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전해진다.
‘…유딧’은 종교 오라토리오지만 각 등장인물들이 뚜렷한 특징을 드러내고, 이야기 구조에서도 거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는 극적 긴장감을 선보여 더욱 높이 평가받는 작품이다. 또 대규모 편성의 오케스트라, 특히 비올라와 다모레, 바로크 클라리넷, 만돌린 등을 사용한 독특한 관현악법이 일품이다.
실제 ‘…유딧’은 비발디의 작품 중 가장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 편성을 보인 작품. 이는 비발디가 이 작품에서 종교음악의 색채를 보여주기보다는 각 등장인물과 이야기의 극적 요소가 지닌 매력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용숙 칼럼니스트는 이 작품을 담은 음반으로 이탈리아의 유명 고음악 레이블인 오푸스111이 2001년에 출시한 음반과 필립스가 2003년 출시한 음반을 추천하고 있다.
오푸스111의 음반은 알레산드로 데 마르키의 지휘로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합창단과 아카데미아 몬티스 레갈리스가 연주했다. 마르키는 특히 이번 레코딩에서 비발디가 지휘했을 때와 동일하게 테너와 베이스의 합창 부분을 한 옥타브 가량 올려서 해석했는데, 이 연출은 여성합창이 주는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아울러 유딧역의 막달레나 코제나는 배역이 지닌 복잡한 감정을 잘 표현한 가수로, 마리아 호세 트룰루 또한 여느 카운트테너보다 더욱 풍부하고 따뜻한 음색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8년 10월 26일, 주정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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