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회음악 산책24: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장엄미사(Missa solemni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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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1-28 | 조회수3,022 | 추천수2 | |
[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24)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장엄미사(Missa solemnis)’ “음악으로 전쟁을 멈출 수 있다면”
- '장엄미사'의 악보. - 베토벤의 장례식 행렬. 2만 명 이상의 반 시민들이 광장에 운집했으며 빈의 모든 학교가 이날 휴교했다.
전쟁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오랜 분쟁 지역들이 있다. 전 세계의 시선은 몇 년간 이라크 전에 집중됐지만 현재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낸 가자지구가 뉴스의 초점이다. 모든 사람이 평화를 원하는 데도 왜 전쟁은 끝나지 않는 것일까? 인종이나 종교 차이를 이유로 뿌리 깊은 미움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기만, 전쟁은 언제나 특정한 개인 또는 정부를 부자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독재 권력과 권위주의와 전쟁을 혐오했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서양음악사의 걸작 ‘장엄미사 Missa solemnis’를 작곡했다. 여러 작곡가의 미사곡 대부분이 미사 전례를 염두에 두고 작곡된 것과는 달리 ‘장엄미사’는 미사용이 아닌 연주회용으로 작곡된 대규모 악곡이어서, 실제 미사에 쓰이는 일은 없다.
베토벤은 전체 작품 수에 비해 교회음악을 많이 작곡하지는 않았다. 미사곡 두 곡(‘C장조 미사’/ ‘장엄미사’)과 오라토리오 ‘올리브 동산의 그리스도’가 전부다. 대개의 미사곡들처럼 베토벤의 ‘장엄미사’도 키리에(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글로리아(대영광송)-크레도(사도신경)-상투스(거룩하시다)-아뉴스 데이(하느님의 어린 양)로 나뉜다.
라틴어로 된 기도문들의 내용도 여느 미사곡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그 많은 미사곡들 가운데 ‘장엄미사’가 듣는 이들에게 유난히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을 진정 사랑하고 후원했던 루돌프 대공과 베토벤은 깊은 우정을 맺었고, 베토벤은 대공에게 여러 작품을 헌정했다. 대공이 올로뮈츠의 대주교로 임명되자 베토벤은 대주교 취임식 때 연주할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이 작품이 바로 ‘장엄미사’였다. 그러나 ‘장엄미사’를 본격적으로 작곡하기 시작한 1819년은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해였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작곡을 한다는 건 초인적인 투쟁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무렵 건강도 급속도로 나빠져 하루에 두세 시간 이상 작곡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1820년에 취임식이 열렸지만 ‘장엄미사’는 미완성 상태였고, 연주시간이 1시간 반에 달하는 이 대곡이 완성된 것은 그로부터 3년이나 지난 1823년이었다. 베토벤 스스로가 ‘장엄미사’를 “나의 모든 작품 중 최고의 대작”이라고 칭했다.
사도신경의 라틴어 원제인 ‘크레도(Credo)’란 ‘저는 믿습니다’라는 뜻의 신앙고백이다. 다른 모든 미사곡의 작곡자들도 물론 이 기도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어울리는 음악을 작곡하려고 노력했지만, 이 기도에 베토벤만큼 극적인 호소력을 불어넣은 작곡가는 없었다.
우리가 날마다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를 수천 번 되풀이한다 해도, 매번 그리스도의 수난이 가슴에 절절하게 와 닿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엄미사’에서 이 ‘십자가에 못 박혀(Crucifixus…)’가 연주될 때면 듣는 사람들은 그 음악의 간절함과 비장함 때문에 오히려 십자가의 고통을 사무치도록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잠시 후 노래가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Et resurrexit…)’에 이르게 되면, 듣는 이들은 오랜 사순 시기를 끝내고 부활을 맞이할 때의 넘치는 기쁨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음악은 제 흥을 이기지 못하는 봄볕처럼 찬란하게 터져 나온다. 자신이 작곡한 것을 귀로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표현이 더욱 강렬해진 것일까?
30대 초반의 젊은 베토벤이 교향곡 제 3번 ‘영웅’을 구상하면서 매료되었던 나폴레옹의 ‘자유와 평등의 수호자’ 이미지는 1804년에 나폴레옹이 독재의 야심을 드러내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이후 스페인 독립전쟁, 오스트리아 독립전쟁, 러시아 원정 등으로 이어진 이른바 ‘나폴레옹 전쟁’은 유럽을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넣었고, 권력욕이 빚은 이 전쟁의 참상을 수년간 지켜본 베토벤은 평화를 기원하고 호소하려는 열망을 갈수록 억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장엄미사’의 ‘하느님의 어린 양’ 부분을 작곡할 때, 악보에 ‘안과 밖의 평화를 위한 기도’라는 메모를 적어놓았다. ‘안의 평화’란 마음의 평화일수도 있고 가정의 혹은 나라 안의 평화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밖의 평화’란 물론 국가 간의 분쟁이 없는 상태를 뜻할 것이다. 어쩌면 이 메모는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 모두의 평화를 뜻하는지도 모른다.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Agnus Dei... miserere nobis).’ ‘장엄미사’에서 베이스 솔로와 합창단이 이 부분을 노래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깨끗하고 넓은 성전 안의 미사전례보다는 폭격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굶주리고 부상당한 사람들이 탈진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눈앞에 보게 된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은 일부에서 ‘세속적인 미사곡’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어떤 교회음악보다 깊은 영성을 담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고 천국만을 노래하는 영성이 아닌, 시대와 이웃의 아픔을 몸으로 나누는 영성일 것이다. [이용숙(안젤라 · 음악평론가)]
Tip
‘음악으로 전쟁을 멈출 수 있다면.’ 이용숙 칼럼니스트가 전한 한마디 말에 퍼뜩 떠오른 일화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긴장감으로 더욱 매서운 한겨울 밤, 연합군과 독일군은 비참한 격전의 전장 속에서 성탄 전야를 맞는다. 잠시 총격이 멈추긴 했지만 아군과 적군 모두 평화롭고 따스했던 지난날 성탄절을 떠올리며 눈물짓던 시간이었다. 그때 독일군 진영에서 성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울려 퍼졌다. 뒤따라 양쪽 진영 장병들은 너나할 것 없이 총을 내려놓고 아름다운 선율에 목소리를 실었다. 심금을 울리는 한곡의 노래가 몇 시간 전까진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죽이고 죽던 적대감을 순식간에 녹게 한 순간이었다.
베토벤의 장엄미사곡이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는 지난 2005년 11월 4일 독일 드렌스덴 성모마리아성당에서 연주되면서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이 성당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단 사흘간의 공습으로 완전히 파괴됐었다. 재건된 성당의 축성식 후 꼭 일주일 만에 성당에서 열린 음악회, 장엄미사의 선율은 새로운 평화의 상징으로 더할 나위없이 좋은 곡이었다. 당시 연주 실황은 DVD(Eklasse, 92분)로 출시, 한글 자막본도 판매되고 있다. 부록은 드렌스덴 성모성당의 역사와 재건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이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로 녹음된 음반(DG, 1997)과 오토 클렘페러 지휘, 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의 연주로 녹음된 음반(EMI, 2001)도 들어볼만 하다.
클렘페러는 1927년 베토벤의 장엄미사곡을 처음 연주, 이후 강한 애정과 경외심으로 곡의 연주를 이어온 인물이다. BBC가 펴낸 또 다른 오토 클렘페러의 장엄미사 연주 음반은 1963년 제5회 베토벤 페스티벌 실황을 담고 있다. 스튜디오 녹음곡과는 또 다른 멋을 내며 클렘페러의 거시적인 안목과 곡 해석능력이 탁월하게 나타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Archive가 펴낸 존 엘리어트 가드너의 지휘 음반도 그라모폰지가 선정한 위대한 레코딩으로 꼽힌다. [가톨릭신문, 2009년 1월 25일, 주정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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