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가 이야기: 우리 이런 미사를 만들어 봐요 (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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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10-21 | 조회수3,976 | 추천수0 | |
[성가 이야기] 우리 이런 미사를 만들어 봐요 (4) 지난 호에는 각 본당에 구성되고 활성화 되어야 할 본당 전례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주임사제가 마음을 열고 신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적극적이지 않는다면 신자들은 언제나 수동적인 전례행위를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신자들이 마지못해 참여하는 전례에서는 아무도 생동감을 느낄 수도 없고, 신자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는 기대할 수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달 ‘우리 이런 미사를 만들어 봐요’의 마지막 회에서 몇 가지 문제를 더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마이크를 잡고 신자들의 찬미노래를 인도하는 선창자들의 문제 저는 미사전례 때에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선창자가 없어야 한다고 늘 생각합니다. 마이크를 잡은 선창자가 성가를 잘 불러도 문제고, 잘 부르지 못해도 문제입니다. 노래를 아주 잘하는 선창자는 신자들이 성가를 못 부르도록 기를 죽이게 됩니다. 신자들은 “그래, 당신은 노래를 잘 하니까 혼자서 불러 봐.”라는 식으로 대응하면서 신자들은 입을 다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특별히 중고등학생 미사와 젊은이들의 미사 때에 이러한 모습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마이크 잡은 소위 가수만 노래를 신나게 부르지,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중·고등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이 성가를 따라 부르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밴드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학생은 자신의 악기 연주에만 정신이 쏠려있고, 가수는 혼자서 무아지경에 이른 채 노래를 불러댑니다. 성가는 참여한 모든 사람이 함께 부르는 기도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밴드나 가수들은 자신의 연주나 노래 실력을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노래찬미를 잘 부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가가 시작되었을 경우, 신자들이 잘 아는 노래이고 적극적으로 성가를 열심히 부른다면 선창자는 마이크를 입에서 떼고 신자들이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신자들이 아는 노래조차 마이크로 크게 노래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신자들이 모르는 노래는 마이크를 이용하여 신자들을 도울 수 있을 겁니다. 본당의 미사 중에 실력도 없는 선창자들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그릇되게 성가를 부르는 선창자에게서 신자 전체가 엉터리로 성가를 배워 부르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고, 이렇게 잘못 배운 신자들의 성가는 거의 영원히 고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선창자의 역할이 이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좋은 예입니다. 전례에서 성가를 부르는 주체는 하느님의 백성인 모든 신자들이지, 노래를 잘 하는 성가대도 아니며 선창자도 아닙니다. 전체 신자들이 찬미노래를 잘 부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성가대나 선창자의 임무입니다. 2) 전례 기도문을 노래로 만들어 부를 경우, 가사를 바꿀 수 없습니다. 미사 전례 때에 사용되는 전례기도문들은 신심행위나 사사로운 기도 모임의 그것들과는 달리 교회의 합법적인 권위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그가 비록 사제일지라도 임의로 기도문을 변경할 수 없다고 교회는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전례헌장 22항 참조) 심지어 전례기도문을 자국어로 번역한 경우에도 오역을 막기 위해 교황청의 승인을 받으라고 지시합니다. 이렇듯 교회는 전례문의 중요성을 명백히 밝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작곡가가 임의로 전례기도문을 변경시킨다든지, 또 이렇게 변형시킨 문제의 기도문을 이용하여 작곡한 음악을 버젓이 미사 때에 부르고 있는 한국교회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렇게 기도문을 변형시켜 음악을 만들어야 할 정도의 중요한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요? 미사 중에 부르는 성가 중 가장 큰 환호송이라 할 수 있는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할 때, 많은 본당, 심지어는 수도회에서조차 교회에서 인정한 기도문을 사용한 곡을 무시하고, 독일미사곡의 일부인 ‘거룩하시도다’(가톨릭성가 333번)를 노래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는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슈베르트의 곡이라서 그런가요? 또 「한국 천주교 성음악 지침」 60항은 ‘주님의 기도는 사제와 백성이 다 함께 부를 수 있는 곡을 선택하며, 주님의 기도를 노래할 때 기도문을 변형시켜서는 안 된다.’라고 분명하게 지시하고 있는데도 많은 본당의 청년미사와 청소년미사에서는 변형된 ‘주님의 기도’를 가지고 노래 부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이미 다른 용도로 작곡된 외국 곡에다가 ‘주님의 기도’ 가사를 살짝 얹어 만든 곡입니다. 예를 들면 청소년 혹은 청년미사에서 즐겨 부르는 ‘에레스 뚜(Eres tu)’의 멜로디를 사용한 ‘주님의 기도’ 같은 것 말입니다. 3) 침묵도 전례행위입니다. 미사 중에 성가를 많이 부른다고 그 미사가 꼭 장엄하고 좋은 미사라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사 중에 하느님의 거룩함을 크게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자리는 바로 침묵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전례 안에서 침묵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모든 전례 예식과 칠성사의 거행에서도 가장 거룩한 순간에 신자들은 침묵을 지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개정된 《로마 미사 경본(Missale Romanum, 1970)》에서는 심오한 침묵 속에 미사를 봉헌하도록 가르치는데, 그 이유는 침묵 속에서 하느님과의 참된 교류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미사 중 몇 차례의 침묵시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미사 시작예식 부분, 본기도를 시작하면서, 각 독서 후에, 특별히 영성체 후에 침묵시간을 주고, 이를 지키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중 그 위치나 의미로 보아, 영성체 후의 침묵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많은 미사에서 이 침묵은 자리를 잃고 있으며, 그 자리는 성가대의 특송이나 악기의 독주 혹은 연주, 심지어는 사제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부르는 것으로 메꾸어지고 있습니다. 미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왜 신부님들이 기타를 들고 나와 노래를 부르는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미사경본 총 지침 86항에서는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면 회중전체는 시편 또는 찬양의 특성을 지닌 다른 찬가나 찬미가를 부를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으나, 이 지침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사목자는 찬가나 찬미가를 부르기 전에 먼저 침묵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성체 후의 침묵시간은 개인이 감사를 바치기에 적합하며, 전체 신자가 노래하는 것은 집단적인 감사의 표시가 되기에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김종헌, 사목 320호, 52-56쪽 참조) 이처럼 중요한 침묵과 침묵기도가 성가대나 독창자의 특송을 듣는 시간, 혹은 신자들의 성가 부르기 내지는 공지시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한심한 지경에 이르게 된 한국교회의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사제는 성작과 성반을 닦은 다음 주례석으로 가서 앉아 신자들과 함께 잠시 침묵 가운데 감사의 기도를 바치도록 배려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침묵기도는 모든 이가 잠시나마 영성체 및 미사 전체의 은혜에 감사하고, 자신 안에 들어오신 주님과 사랑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귀중한 시간을 우리 신자들도 중요하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침묵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하나의 전례행위입니다. 고요한 침묵에 잠기는 행위가 신자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더 깊이 느끼게 한다는 것을 사제는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월간빛, 2012년 10월호, 김종헌 발다살 신부(한티순교성지 전담, 가톨릭음악원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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