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가 이야기 : 전례-전례음악 공부해서 남 줍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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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헌 | 작성일2013-02-20 | 조회수4,397 | 추천수3 | |
성가이야기 김종헌(발다살)|신부, 한티순교성지 관장 · 대구가톨릭음악원 원장 2월 3일자〈가톨릭신문〉은 기획기사로 ‘신앙의 해 : 전례 활성화로 신앙 내실 기해야’를 실었습니다. 이 기사는 ‘신앙의 해’를 맞은 각 교구가 새로운 복음화의 노력으로 ‘전례 활성화’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한국교회의 주일미사 참례자 감소와 냉담교우 증가 현상을 언급하면서 전례 활성화의 문제야말로 한국교회 신앙의 내면을 강화하기 위한 필수적인 배경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례 활성화에 대한 한국교회의 고민은 전례 거행에 있어서의 사제의 역할, 본당에서의 전례 교육 등 전례 문제 전반에 대한 점검과 인식 환기를 불러 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낳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제나 신자 모두 “전례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이 약하다.”고 한 어느 전례학자의 말을 소개하면서 “무엇보다 전례 활성화의 키워드는 사목자의 열성과 비례한다고 할 때 미사 준비와 전례 거행에 대한 사목자들의 의식이 새로워져야 할 것이고, 신자들의 능동적인 전례 참여 및 미사 자체에 대한 이해를 위해 전례교육도 활발해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사제들을 위한 전례 교육이 평생 교육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끝을 맺고 있습니다. 사제는 전례 도사인가? 저는 자동차 운전을 30년 정도 했습니다. 큰 사고 없이 이제껏 운전을 했으니 제법 차는 잘 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동차라는 기계 자체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길에서 고장이 났을 때에는 견인차를 불러 정비소에 가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답니다. 운전은 잘(?) 하지만 자동차에 대해서는 거의 백치 수준입니다. 이 세상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권한과 자격을 가진 사람은 서품을 받은 사제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사제들은 서품을 받기 전에 전례에 대해 배우기는 합니다만 미사 전례 자체에 대해 그렇게 많이 배운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권한이 있고 드린다고 해서 전례에 도사가 된 것은 아니겠죠? 평신도들이 전례에 대해 왈가왈부하면 신부님들은 ‘미사도 못 드리는 사람들이….’하는 생각과 태도를 은연중에 보여주십니다. 평신도들은 미사를 드릴 자격은 없지만, 미사 전례에 대한 공부는 사제 이상으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신부님들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당에서 아무리 이상한 전례를 거행하여도 신자들은 군소리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사제들만큼도 배우지 못한 신자들이 대부분이니까요. 신부님이 권위 있게 “교회 전통이 그렇다.”고 하면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가톨릭신문〉에서 말하는 대로 사제들의 전례에 대한 교육은 평생교육의 차원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미사 준비와 전례 거행에 대한 사목자들의 인식의 변화는 미사전례에 대한 꾸준한 공부 이외에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부님들도 공부하시면서 신자들에게 능동적인 전례 참여 및 미사 자체에 대해 교육을 제대로 시켜주셔야 합니다. 신자들이 못 알아듣는 교회 용어와 권위만 내 세우셔서는 안 됩니다. 전례야말로 모든 영적인 힘이 흘러나오는 샘이요 교회의 모든 활동이 모아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전례헌장 10항 참조) 이런 미사는 아니아니, 아니 되오! 여러 본당에서는 별의 별 이름을 붙인 미사가 성행하는 것 같습니다. 떼제 미사, 영상 미사, 입체미사, 찬미기도 미사, 영화 미사 등등. 저는 이런 미사가 어떤 것인지 배운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떼제 미사라고 하면 아마도 떼제 공동체에서 작곡한 노래를 주로 부르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떼제 공동체가 무슨 가톨릭 수도공동체도 아니고 거기서 작곡되어 사용되는 모든 노래들이 미사전례를 위한 것도 아닌데 노래만 좋다고 해서 미사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미사 전례 기도문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미사 전례 모든 부분을 감당할 수 있는 음악도 없는데 어떻게 ‘떼제 미사’라고 이름을 붙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떼제노래를 사용하는 미사’라 하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떼제 미사라는 것, 그런 미사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떼제 음악을 싫어한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저 개인적으로 한국교회에서 신자들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음악의 형태는 떼제 풍의 노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쉽게 외울 수 있는 가사와 선율,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도의 음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본당에서도 여러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미사 전례행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소위 신나는 노래들을 선호하고 사용을 고집합니다. 이유는 젊은이들이나 중 고등학생들을 더 많이 미사에 나오게 하는 구실이 된다는 겁니다. 과연 젊은이들이나 청소년들이 미사에 많이 나오고 있던가요? 아마 얼마 못가서 이런 음악을 사용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미사에서 음악의 힘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음악만으로는 그들을 사로잡을 수 없습니다.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거죠. 더구나 마치 세속음악 같은 그런 음악으로는 절대로 젊은이들을 사로잡지도 못할 뿐더러 미사의 참 의미도 깨닫게 해 주지 못할 것입니다. 정치권에서 말하는 포퓰리즘이라는 것이 우리 전례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볼 때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올바른 전례정신은 어디로 사라지고 신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신자들이 좋아하니까 혹은 신자들의 기분을 맞추어 주려는 마음에서 미사 전례 중에 엉뚱한 연출이나 노래를 마음대로 사용하는 신부님들이 많아졌다고 느낍니다. 우선 사제들은 『미사 경본 총지침』부터 완독, 그리고 숙독하셔야 할 겁니다. 미사 전례의 모든 부분과 행위에 대한 세세한 의미와 지침을 제대로 알고 계셔야 엉뚱한 미사전례를 만들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아직도 평일미사 때에도 꼭 노래로 불러야 할 ‘환호송’을 노래하지 않는 본당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당 안에는 오직 하나의 독서대를 사용하라고 교회 공문이 몇 차례나 나갔지만 아직도 두 개의 독서대를 사용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미사의 참된 의미부터 먼저 배우고 그 다음에 가르치자 미사의 참된 의미를 먼저 사제 자신이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전례는 비록 신자들이 모여 바치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인간들만의 모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최고의 예배행위입니다. 그리고 이 예배행위에서 사용되는 음악 역시 우리를 신명나게 하고 우리의 희로애락을 표현하게 하는 것이 첫째 목적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감사의 노래임을 잊어버리게 되면 단순한 신자들의 모임에서 부르는 노래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청년들이나 청소년 미사에서의 화답송을 잠깐 생각해 봅시다. 화답송은 방금 들은 하느님의 말씀인 제1독서에 대하여 하느님의 말씀인 시편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시편을 들으면서 제1독서를 우리 마음속에 좀 더 깊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행위이자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때 많은 본당의 청소년 미사나 청년들 미사에서는 제1독서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네’, ‘목마른 사슴’, ‘이 시간 주님께’ 등을 노래합니다. 아주 감미롭고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이런 노래가 아름답게 느껴지고 가슴에 와 닿기는 하겠지만, 화답송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는 못하기에 화답송으로서는 가치가 없는 노래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인 시편보다 더 아름답고 뜻 깊은 시(詩)가 이 세상에 있을까요? 하느님의 말씀을 사제가 선포하는 복음의 봉독 역시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은 선포되어야 하는 것이지 모두가 읽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몇몇 본당에서는 신부님들이 이상한 논리를 내세워 신자들과 함께 같이 읽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하느님의 어린양’을 생각해 봅시다. 이 기도와 노래는 사제가 미사 중에 성체를 쪼개어 같이 집전하는 사제들에게 나누어 줄 때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신자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래서 공동 집전하는 사제들이 많을 경우, 응답인 ‘자비를 베푸소서.’는 여러 번 할 수 있고 마지막에만 ‘평화를 주소서.’라고 마치면 됩니다. 그런데 어린이미사와 청소년, 그리고 청년 미사에서는 이 때 교리교사나 청년들이 제단 앞으로 나아와 율동을 유도합니다. 이 부분이 그렇게 율동까지 할 만큼 중요한 부분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이 기도는 노래로 해도 되고, 그냥 읽어도 되는 전례 음악적으로 그리 비중 있는 부분이 아니랍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데 율동을 하면 어때?” 하실 분도 계시겠죠? 그러나 어린이들은 이 기도를 다른 어떤 기도보다도 엄청 중요한 기도로 어릴 때부터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만약 율동을 한다면 오히려 미사 중에 반드시 노래로 불러야 하는 환호송들(알렐루야, 거룩하시도다, 신앙의 신비여, 주님의 기도 직전의 아멘)과 함께 하면 더 좋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제직을 살아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리지만 신부님들께서는『미사 경본 총지침』만큼은 읽고, 읽고, 또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지침에서 가르치는 대로 미사를 거행하시면서 신자들에게도 전례교육을 시켜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방법이 참다운 제자로서의 신자를 양성할 수 있고 신자들의 신앙을 강화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신자들의 삶은 사목자의 열성과 비례한다고 하였습니다. 사제가 열심하면 신자도 열심해 지고, 사제가 전례를 귀중하게 생각하면 신자들도 전례를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올바른 전례를 행하고 신자들에게 가르친다면 우리 신자들의 삶이 전례를 살게 될 것입니다. 마치 사제가 제단에서 하느님 백성의 기도를 모아 하느님께 올리고 그분의 말씀을 신자들에게 전하듯이, 우리 신자들도 각자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말 그대로의 전례(찬미의 제사)를 거행하는 사제로 살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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