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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 문화산책: 성음악 (4) 다성부 음악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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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18 조회수3,390 추천수0
[가톨릭 문화산책] <17> 성음악 (4) 다성부 음악의 탄생

다성부 음악, 작곡기법 발달과 함께 전례음악도 풍요로워져


귀도 다레초(995~1050?)의 악보 발견은 음악사에 새 지평을 연다. 그렇지 않아도 음악계에선 단성부 그레고리오 성가를 10세기 동안이나 불러와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터였다. 그때 오르가눔(Organum)이라는 단순한 다성부(多聲部) 음악이 태동했다. 그런데 다성부 음악은 치밀한 계산이 필요했고, 악보의 도움이 필요했다. 지금도 작곡하는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구상한 음악을 악보에 적어 기억하고, 이를 토대로 가꾸고 보완 발전시킴으로써 좋은 곡을 완성한다. 이렇게 발달하는 초기 다성부 음악으로 앞에서 언급한 오르가눔과 콘둑투스(Conductus), 모테투스(Motettus), 론델루스(Rondellus) 등을 꼽을 수 있다.

오르가눔은 아주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도(Do)와 솔(Sol) 사이처럼 완전 5도라고 불리는 음정의 두 소리는 마치 한 소리처럼 섞여 들린다. 도(Do)와 파(Fa) 사이는 완전 4도라고 불리며, 역시 한 소리처럼 섞여 들린다. 남자와 여자가 같은 노래를 부르면 실은 8도, 즉 옥타브 차이가 나지만 이것도 너무 잘 섞여 한 소리 같아 완전 8도라 한다. 이렇게 자연 속에서 아주 잘 섞이는 소리들을 모아 노래를 부르다 보니 5도로 나란히 가도록 부르는 5도 병행 노래, 이와 같은 4도 병행 노래, 5도와 옥타브 병행노래, 혹은 4도와 옥타브 병행노래를 발견한 것이다.

지난해 5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가톨릭 교회의 성인으로 공식 선포할 당시 교황청에 내걸린 힐데가르트 성녀의 대형 걸개그림. 머리에 관을 쓰고 양피지 두루마리에 깃펜(Quill Pen)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 성녀는 12세기 당시 신학은 물론 문학과 자연과학, 의학,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유명한 저서와 악보를 남겨 중세의 위대한 저술가로 꼽히고 있다.


지금의 화성학에서는 이를 금지하는 데, 이는 이 음정들이 너무도 잘 섞여 마치 한 소리 같고, 심하게 표현하면 유니슨(Unison, 제창)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시 사람들은 두 개 혹은 세 개의 다른 소리들을 함께 내면서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열광했다. 이런 간단한 원칙에서 시작한 오르가눔은 당연히 더 복잡한 형태로 발전돼 나중에는 디스칸트(Discantus) 양식이라는 형태로 바뀌고, 디스칸트 양식 노래의 클라우술라(Clausula)라는 부분에서 유명한 모테투스 양식이 탄생한다.

모테투스는 프랑스어 '짧은 문장'이란 뜻의 모(Mot)에서 유래한다. 오르가눔은 2성부이든 3성부이든 모든 성부가 같은 성가 가사를 가지고 노래했다. 그런데 클라우술라 부분에서는 기본 성부가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는 동안 다른 제2, 혹은 제3성부에서는 다른 가사를 붙여서 노래했다. 이렇게 '다른 말(mot)을 붙인 노래'라는 뜻으로 모테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테투스 양식은 수많은 변천을 겪으며 오늘까지도 사용되는 모테트(Motet)의 조상이 됐다.

콘둑투스는 라틴어로 '함께 인도된다'는 뜻이다. 오늘날 4부 성가처럼, 모든 성부가 비록 다른 음을 노래하더라도 같은 가사를 같은 리듬으로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오늘날 화성음악의 원조인 셈이다.

론델루스는 우리가 아는 돌림노래인데, 부르는 방법에 따라 로타(Rota)라고도 했다. 이 밖에도 성부들 간에 서로 리듬을 주고받는 모습이 꼭 딸꾹질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하는 호케투스(Hocketus) 양식의 노래들도 있다.

이처럼 여러 형식의 다성부 음악이 발달하던 12~13세기를 부르는 특별한 명칭은 없었다. 그런데 14세기에 프랑스의 주교이자 음악가인 비트리(1291~1361)가 자기 시대의 음악을 '신 예술'이라는 뜻의 아르스 노바(Ars nova)라고 부르면서 그 이전을 '구 예술'이라는 뜻의 아르스 안티콰(Ars antiqua)라고 부르게 됐다. 아르스 안티콰 시대에 처음으로 작곡가들이 나타났다. 지난 번 연재에서 언급한 성녀 힐데가르트(1098~1179)와 레오냉(1150~1201?), 페로탱(?~1238) 등이다. 이들의 곡은 악보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음반 녹음도 많이 돼 고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시대에 역사상 합창곡으로서의 첫 미사곡이 나타난다. 작곡자는 전해지지 않지만, 발견된 지방 이름을 따 '뚜르내 미사곡(Missa Tournai)'이라고 부른다.

아르스 노바 시대의 특징이라면 차차 선율이 인간성을 띠고 사랑스러워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당시까지 선율은 교회선법을 따른 것이어서 때로 딱딱하고 부드럽지 못한 부분들이 있었으나, 이 때부터는 필요한 곳에 반음을 사용해 선율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완전음정인 4도나 5도, 혹은 옥타브의 진행이 사라지고, 요즘과 같이 3도와 6도의 화음이 도입되고, 가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선율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드리갈과 목가, 발라드, 카치아 등으로 불리는 세속음악이 크게 발전했다.

아르스 노바 시대에는 작곡기법이라고 특별히 새로 발견된 것은 없다. 다만 전 시대 모테트 작곡기법이 활발하게 사용되고 발전하면서 미사곡(Mi ssa)과 모테트(Motet)가 발전했다.

미사곡이란 미사 통상문(Ordina rium Missae) 가운데서 자비송(Kyrie)과 대영광송(Gloria), 신경(Credo), 거룩하시도다(Sanctus), 하느님의 어린 양(Agnus Dei)뿐 아니라 미사 고유기도문(Proprium Missae)인 입당송과 화답송, 봉헌송, 영성체송 등을 음악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모테트란 이제 뜻이 바뀌어 미사의 기도문이 아닌 기도문, 특히 시간전례(성무일도)의 후렴구나 찬미가 또는 시편 등을 가사로 해 대위법적으로 작곡한 합창곡을 뜻했다.

이 시대 작곡가로는 프랑스의 기욤 드 마쇼(1284~1377),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란디니(1325~1397)와 야코포 다 볼로냐(1340~1386), 조반니 다 카쉬아(1436~1476), 게라델로 다 피렌체(1320~1362)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이 작곡한 수백 곡이 악보 덕분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데, 그 가운데 마쇼의 성모 미사곡(Missa de Notre Dame)은 단연 일품으로 꼽힌다. 마쇼의 미사곡은 음악사에서 두 번째 미사곡이며, 작곡자가 알려진 첫 번째 미사곡이다.


성녀 힐데가르트(Hildegard von Bingen)

음악사에 첫 번째 작곡가로 기록, 신학 · 문학 · 의학 등 다방면에 업적, 2012년 시성


중세의 가장 뛰어난 여성으로 손꼽히는 성녀 힐데가르트는 단테, 윌리엄 블레이크에 견줄 만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독일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성녀 힐데가르트는 8세 때 디지보덴베르크에 있는 베네딕도수녀회에 맡겨진다. 이 시기에 그는 수도원장 유타 문하에서 문학과 음악 등에 관한 교육을 받았으며, 12세 때 은수생활을 시작해 14세 때 수도서약을 한다. 그는 38세의 나이로 유타의 뒤를 이어 수녀원장이 된다. 그리고 1141년 43세 생일에 신비한 영적 체험을 통해 예언자로서 소명을 받는다. 훗날 그는 빙엔에 수도원을 분가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쳤기에 '빙엔의 힐데가르트'라고 불렸다.
 
힐데가르트는 정치가이자 저술가, 예언자, 신비가, 교황과 황제, 영주들의 조언자로 활동했다. 또 신학은 물론 문학과 자연과학, 의학에도 유명한 저서들을 남겨 그야말로 중세의 뛰어난 여성 지도자로 꼽힌다.

옛날 그림들을 보면 힐데가르트 성녀는 여성 아빠스로 주교관과 같은 관을 쓰고 목장을 짚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당시는 남성 중심의 중세 사회였음에도 그는 음악사에 첫 번째 작곡가로 기록되고 있으니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힐데가르트는 교회에서 오랫동안 시성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독일에선 성녀로 공경을 받았고, 1664년 이후 독일 마인츠 교구 시간전례서와 미사경본에는 9월 17일을 그의 축일로 기념하기 시작한다. 교황청도 1940년부터 이 축일을 인정했고, 드디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12년 5월 10일 교황청 시성성을 통해 시복시성 관련 교령을 선포한다. 이어 같은 해 10월 7일 성녀 힐데가르트를 교회박사로 선포했다. 이로써 10세기 만에 그는 성인이 된다.

요즘 고음악 애호가들은 성녀 힐데가르트의 음반을 한두 장 정도는 다들 소장하고 있다. 음악사에 이름이 남는 첫 번째 작곡가일 뿐 아니라 그의 작품은 오늘에도 풍부하게 전해지고 있어 연구를 통해 계속 녹음되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13년 5월 19일, 백남용 신부(서울대교구, 교회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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