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음악편지: 붉은 머리의 사제 비발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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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4-13 | 조회수7,054 | 추천수0 | |
[아가다의 음악편지] ‘붉은 머리의 사제’ 비발디
봄이 오면 자의든 타의든, 어떻게 해서든 듣게 되는 클래식 음악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 작품으로 항상 상위권에 오르는 비발디의 <사계> 중 ‘봄’입니다. 얼어붙었던 시내가 다시 흐르고, 새들이 노래하는 생동감 넘치는 ‘봄’을 들으면, ‘아, 계절이 드디어 바뀌었구나!’, 귀로도 실감을 하게 되는데요. <사계>의 작곡가로 너무나도 유명한 비발디는 가톨릭 성음악으로도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긴 작곡가입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교회음악 작곡가로서의 비발디를 소개하고, 그가 작곡한 주요 교회음악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비발디(Antonio Lucio Vivaldi, 1678~1741)에겐 ‘Il Prete Rosso’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prete’는 ‘성직자’, ‘rosso’는 ‘붉다’라는 뜻이고요. 우리말로 이 별명은 ‘붉은 머리의 사제’로 옮겨지는데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 소속 바이올리니스트의 아들로 태어난 비발디는 음악과 함께 신학을 공부하다가 25세가 되던 해인 1703년에 가톨릭 사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비발디는 교회가 아닌, 자선시설에서 소임을 맡게 됩니다. 칠삭둥이로 태어나 타고난 체질이 약했고, 천식까지 있어서 미사 집전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는데요. 미사 중에 악상이 떠오르자, 이것을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놓으려고 갑자기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일화도 전해지는 걸 보면, 음악에 대한 열정도 남달랐으리라는 걸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비발디가 일한 자선시설은 가난한 아이들과 고아를 위한 보금자리였던 피에타 여학교(Ospedale della Pieta)였습니다. 비발디는 그곳에서 소녀들에게 음악 교육을 하고, 학교의 기금을 마련하는 연주회까지 맡아서 일했습니다.
피에타 여학교의 음악회는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고 합니다. 이들의 연주가 당시 베네치아를 찾아오는 유럽 관광객들에게 필수 코스가 될 정도였다고 전해지는데요. 연주 횟수가 늘어나면서 비발디는 새로운 음악을 끊임없이 작곡해야 했고, 그런 빡빡한 일정 속에서 다양한 기악 협주곡들을 비롯해 다수의 모테트, 오라토리오 등의 교회음악들도 나오게 됐죠.
비발디의 교회음악 가운데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을 꼽자면, 영화 <샤인 Shine(1996)>의 수록곡이었던 소프라노 독창을 위한 모테트 ‘세상에 참평화 없어라 Nulla in mundo pax sincera’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샤인>은 부친의 과도한 기대와 집착으로 정신질환의 고통을 앓았던 한 천재 피아니스트가 마침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자유로워지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 영화인데요. 영화 최고 명장면으로 꼽히는, 주인공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파란 하늘로 솟아오르는 장면에서 흘러나왔던 선율이 바로 ‘세상에 참평화 없어라’입니다.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통이 없다면, 세상엔 참평화 없어라. 순수와 진실, 이것은 다정한 예수, 당신에게 있으니. 고뇌와 고통 속에 편안한 영혼이 있으며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며 순결한 사랑이어라.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가 평화롭고 온화하기 그지없는 음악이었다면, 영화 <샤인>에 일부 삽입되었던 또 한 곡의 비발디 작품 <글로리아> RV589는 천상 기쁨의 찬란함이 가득한 음악입니다. ‘글로리아’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미사 통상문의 ‘대영광송’을 가사로 하는데요.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는 가사에 맞게 가장 영광스럽고 화려한 분위기로 연주가 됩니다.
두 명의 소프라노와 한 명의 알토 독창자, 혼성 4부 합창, 그리고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이 작품에서는 특히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특별히 현악기 선율을 작곡하는 데 탁월했던 비발디의 능력이 합창과 어우러지는 기악 반주 부분에서 돋보입니다. 화려한 기악 반주가 성악 성부와 잘 어우러지면서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는 더욱 높아졌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봄. 이번 봄에는 생동감 넘치는 비발디의 성음악 작품들로 행복하게 채워보시는 건 어떨까요?
[평신도, 2016년 봄(계간 51호), 양인용 아가다(KBS 1FM <새아침의 클래식>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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