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248번 한 생을 주님 위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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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5-14 | 조회수7,162 | 추천수0 | |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15) 248번 한 생을 주님 위해 (상) 고향 그리는 이주민의 거실 음악에서 유래
- 1800년대 미국의 이민자 가족이 거실에서 음악과 노래를 즐기는 모습. ‘거실 음악’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우리 교회는 매년 ‘이민의 날’을 기념한다. 우리 성가에도 이민자들과 관계된 성가가 있을까?
「가톨릭 성가」 248번 ‘한 생을 주님 위해’가 이민자들의 고달픈 삶에서 비롯된 성가다. 이 성가는 특히 사순 시기 중 성모님 성가를 부를 때 많이 사용되는 곡이며, 성모님과 아들이신 예수님의 관계에 대해 아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가톨릭 성가」 책에는 ‘전통 성가’라고 나와 있어서 대단히 유서 깊은 가톨릭 성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드버리(Isaac B. Woodbury, 1819~1858)가 작곡한 약 160년밖에 안 된 성가다. 본래 성가 제목은 ‘사랑하는 어머니, 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Mother Dear, O Pray for Me)였다.
우드버리는 1819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난 개신교 작곡가이며, 보스턴과 파리, 런던에서 음악 공부를 한 후 보스턴으로 돌아와 음악 교사, 오르간 연주자 및 합창 지휘자 등으로 활동했다. 음악 교사들을 위한 교육기관을 설립하기도 했고, 음악 잡지 편집자로도 일했다. 그는 당대 가장 유명했던 「뉴욕 성음악 모음집」(The New York Collection of Sacred Music)과 같은 찬송가집을 비롯해서 약 700여 곡의 작품과 15권의 찬송가집, 그리고 14권의 세속 음악 작품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우드버리가 만들었던 이 노래는 본래 ‘거실 음악’(parlor music)의 하나였다. 미국에서 오늘날과 같이 유흥 문화가 발달돼 있지 못하던 시절, 청교도 문화에 충실했던 중산층들은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과 함께 거실에 모여 함께 노래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갖곤 했는데, 이때 부르던 노래들이나 즐겨 연주하던 곡들을 ‘거실 음악’이라고 칭했다. 대표적인 노래로 ‘켄터키 옛집’이 있으며, 이런 부류의 노래들을 작곡하며 생계를 꾸려 갔던 포스터(Stephen Foster, 1826~1864)가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당시 ‘거실 음악’을 즐기던 이들은 사실 유럽에서 미국 대륙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이었다. 그들이 낯선 땅에서 적응하며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지내야 했던 그 고단했던 시간 속에서 유럽 땅에 두고 온 가족과 친척들을 그리워하며 부르던 노래가 초창기 ‘거실 음악’의 주된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어머니로 상징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는 노래들을 부르곤 했는데, 248번 성가의 기원이 된 노래도 사실은 성가가 아니라 이런 내용을 지니고 있었던 ‘거실 음악’의 하나였다.
1850년에 처음 출판된 이 곡은 본래 이 작곡자 우드버리가 ‘자신이 유혹에 빠지거나 차가운 세상에서 냉대받을 때, 자신과 항상 함께해 주시고 열심히 기도해 주실 것’을 어머니께 청하는 내용으로 만들었다. 이 곡은 당시 이주 미국인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유명해졌다. 이 노래에서 어머니는 성모님이 아니라 당시 특별히 사랑받았던 주제였던 인간적인 어머니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어머니를 성모님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하면서 성가가 되었는데, 1861년 오늘날 본당마다 존재하는 ‘성모회’를 위한 교본이 필라델피아에서 발간되면서 이 책에 처음으로 성가로 수록되었다. [평화신문, 2016년 5월 8일, 이상철 신부(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16) 248번 한 생을 주님 위해 (하)
이민자의 애환과 성모회가 탄생시킨 성가
본래 미국 이민자들이 즐기던 ‘거실 음악’에서 비롯된 가톨릭 성가 248번 ‘한 생을 주님 위해’란 성가는 오늘날 거의 모든 본당에 조직돼 있는 ‘성모회’와 깊은 관계가 있다.
‘성모성심회’는 1836년 테즈네트 신부에 의해 프랑스 파리 승리의 성모 대성당에서 처음 시작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846년 11월 2일에 페레올 주교에 의해 공주 수리치골에서 처음 조직됐다. 그 전통이 이어져 오늘날 각 본당 ‘성모회’로 자리 잡게 됐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1841년 필라델피아에서 ‘성모회’(Sodality of the Blessed Virgin)라는 이름의 단체가 조직됐다. ‘교우회’로 번역될 수 있는 ‘sodality’라는 용어는 ‘애덕회’ 혹은 ‘형제회’를 의미하는 ‘confraternity’라는 말과 함께 교회의 오랜 전통 안에서 신심과 애덕을 실천하고자 조직됐던 크고 작은 평신도 단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돼 왔다.
필라델피아의 요한 복음사가 성당에서 성모회를 창설했던 수린(E. Sourin) 신부와 바벨린(F. Barbelin) 신부는 이 단체의 교본을 함께 만들기도 했는데, 이 교본에는 회원들이 모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악보 없이 가사만 있는 성가들도 함께 수록했었다.
이들의 교본은 「거룩한 화환(The Sacred Wreath)」이란 이름으로 발행됐다. 이 가운데 1861년 출판된 교본에 작곡자 우드버리(Isaac B. Woodbury, 1819~1858)가 쓴 ‘사랑하는 어머니, 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Mother Dear, O, Pray for Me)라는 거실 음악 노래가 처음 성가로 수록된다. 이후 성모회 회원들은 이 노래에 등장하는 어머니를 성모님으로 바꿔 이 모임에서 부르기 시작했다.
본래 가사를 약간 수정해 불렀던 성가 가사는 이 모임에 참석했던 한 신자가 썼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고, 수린 신부가 직접 붙였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이는 마치 꾸르실료나 성령 기도회에서 세속 가요에 신앙적 가사를 붙여서 노래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로 지칭되는 이 방식은 오늘날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이처럼 성모회라는 신심 모임에서 함께 성모님께 기도하는 데에 적합한 노래를 찾던 중에 어머니께 바치는 이 노래를 성모님께 바치는 가사로 바꾸어 부르게 된 것이 248번 성가의 기원이다.
1863년에 세속 음악뿐 아니라 가톨릭 교회 음악에서도 이름을 알리던 작곡가 겸 출판가였던 피터스(William Cumming Peters, 1805~1866)가 펴낸 「피터스의 가톨릭 노래(Peter‘s Catholic Harp)」 성가집에 이 성가가 처음으로 악보와 함께 등장한다. 제목은 ‘오 동정이신 성모여,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O Virgin Mother, pray for me)로 되어 있고, ‘성모회 노래’(Sodality Hymn)라는 부제가 달려 있으며, 도입 부분이 약간 변형되어 나타나는데 아마도 피터스가 새로 만들어 넣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같이 248번 성가는 미국 이민자들의 애환과 성모회라는 단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성가다. 사랑하는 친지와 가족, 그리고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고달픈 삶을 개척해 나가던 이민자들이 어머니를 통해 고단함과 시름을 잠시라도 잊고자 했던 애잔한 마음들이 녹아 있다. [평화신문, 2016년 5월 15일, 이상철 신부(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 가톨릭 성가곡들은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www.catholic.or.kr)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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