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138번 만왕의 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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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11-12 | 조회수6,462 | 추천수0 | |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40) 138번 만왕의 왕 (상) 라틴어 시편에서 파생한 성가
- 1562년판 「제네바 시편집(Genevan Psalter)」.
138번 성가는 종교개혁이 발생하던 때 세상에 나온 곡이다. 당시 우리 교회는 전례를 거행할 때 라틴어로 된 그레고리오 성가를 불렀는데, 대부분 성직자나 수도자들 혹은 다성음악을 훈련받은 전문 합창단이 노래했다. 당연히 라틴어를 교육받은 바 없는 일반 신자들은 짧은 노래들을 외우고 있지 않는 한 성가에 참여할 수 없었다.
종교개혁 주역 중의 한 명이었던 칼뱅(Jean Calvin, 1509~1564)은 예배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성경의 시편을 자기들 언어로 함께 노래할 수 있도록 여러 시도를 했다. 가령 특별한 박자가 지정되어 있지 않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박자가 있는 곡으로 바꿔 부르기 쉽게 만들거나, 일반 세속 곡의 선율 혹은 새로 창작된 선율에 시편 가사를 붙이는 시도를 했다.
사실 그는 예배 중에 부르는 노래에 상당히 엄격한 정책을 취했는데, 어떠한 악기의 사용도 금지했으며 따라서 노래도 무반주로 화음 없이 선율만 노래하도록 했다. 당시 나온 악보 중 화음이 붙어 있는 악보는 예배 이외의 모임에서 부르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찬송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라틴어로 된 시편을 자기네 언어, 즉 일반 대중들이 쓰는 프랑스어로 번역해야 했고, 여기에는 시인 마로(Clment Marot, 1496~1544)와 신학자 베제(Theodore de Beze, 1519~1605)가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해서 1533년에서 1543년 사이에 시편 가사로 꾸며진 성가집들이 나오게 됐다. 이 책들은 개신교 찬송가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제네바 시편집(Genevan Psalter)」이다. 최종적으로 150편의 시편이 집대성돼 완간된 것은 1562년이었으며 여기에는 ‘시메온의 노래’가 포함돼 있었다. 이 시편 찬송가집에는 여러 작곡가의 선율이 수록됐는데, 138번 성가의 선율도 그중 하나였다. 이 선율의 작곡자는 부르조아(Loys Bourgeois, 1510~1560)다.
이 선율은 ‘Old 100th’라는 이름으로 1551년 출판된 「제네바 시편집」 두 번째 판에 처음 등장한다. 이 이름은 시편에서 유래했는데, 본래 시편 134편이 가사로 수록되어 있었지만, 프랑스어로 된 「제네바 시편집」을 영어로 번역한 이들 중 한 명인 케쓰(William Kethe,)가 ‘땅 위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아’(All People that on Earth do Dwell)라는 제목으로 시편 100편을 바탕으로 한 가사를 붙여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이 찬송가는 영국의 작곡가 본 윌리엄스의 편곡으로 1953년 영국의 엘리자벳 2세 여왕의 즉위식에서 불렸다. 하지만 후에는 여러 다른 가사가 붙기도 했다. [평화신문, 2016년 11월 13일, 이상철 신부(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41) 138번 만왕의 왕 (하) 작곡가에 얽힌 아픈 교회사
- 만왕의 왕을 편곡한 르네상스 시대 작곡가 구디멜.
우리 성가집 「가톨릭 성가」에는 ‘만왕의 왕’ 성가를 르네상스 시대의 작곡가 구디멜(Claudio Goudimel, 1514/1520~1572)이 작곡한 것처럼 표기돼 있다. 하지만 사실 그는 이 곡을 작곡한 것이 아니라 화음을 넣어 편곡한 사람이다. 그는 이 선율 외에도 여러 선율을 4성부뿐만 아니라 다성음악적으로 다양하게 편곡하기도 했다. 1549년 파리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했던 구디멜은 본래 가톨릭 신자였으나 1557년 칼뱅파 개신교로 개종하게 된다. 이후 1572년 가톨릭 신자들이 칼뱅파 개신교 신자들을 대규모로 학살한 사건(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대학살)이 벌어졌을 때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선율은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여러 성가집에 등장하는데, 현행 「가톨릭 성가」에는 4분의 3박자로 수록돼 있다. 하지만 1965년에 나온 성공회성가집에는 4분의 2박자로 표기돼 있어 이 성가의 박자에 대한 여러 학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금 오래된 서양 악보에서는 마디가 없이 표기된 악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사 중에 자주 부르게 되는 성가 가운데 하나인 138번 ‘만왕의 왕’ 성가를 통해 무엇보다 두 가지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다. 다행히도 오늘날에는 ‘신자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중심으로 진행돼 온 전례 개혁과 함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자국어 미사가 가능해지면서 신자들이 미사에서 소외됐던 부분이 해소됐다. 하지만 이 성가가 나올 당시 일반 신자들은 라틴어 교육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해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전례 중에 봉헌되는 노래에 전혀 참여할 수 없었다. 이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신성시하던 당시 교회의 가르침과도 연관이 있다. 그래서 이때 종교개혁가들은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자국 언어와 더불어 그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선율을 이용하는 음악적 개혁을 통해 일반 신자들이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후 우리 가톨릭 교회는 약 400년이 지난 뒤에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자국어 전례를 허용했다. 나아가 그레고리오 성가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고유한 음악도 전례의 품위에 어긋나지 않으니 장려한다고 천명하게 된다. 이 사실에서 전례와 교회음악에 대한 엘리트주의, 그리고 항상 낮은 자들과 함께하셨던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다른 한 가지는 구디멜이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대학살’ 때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1572년 벌어졌던 이 사건은 ‘위그노(Huguenot)’라 불리는 칼뱅파 개신교도들이 가톨릭 신자들에 의해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이 살해당했던 사건이다. 199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공식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사과한 바 있는데,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는 구디멜의 이름이 가톨릭 성가집에 수록된 것이다. 성가 책에서 그의 이름을 접할 때마다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는 인간의 역사 속에 작용하는 화해와 일치를 위한 성령의 역사하심을 바라보게 된다. [평화신문, 2016년 11월 20일, 이상철 신부(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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