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91번 구세주 빨리 오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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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1-09 | 조회수5,758 | 추천수0 | |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47) 91번 구세주 빨리 오사 수도회에 몸담았던 시인의 찬미가
- 91번 구세주 빨리 오사 가사를 쓴 프랑스 시인이자 극작가 펠르그랭.
91번 성가는 대림시기가 지니는 두 가지 복합적 의미, 즉 성탄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내용을 가사에 담고 있는 성가라고 할 수 있다. 이 성가의 악보에 표기된 이름 카브리소(Cabrisseau)는 1913년 미국에서 출판된 「미국 가톨릭 성가집(American Catholic Hymnal)」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물. 그런데 이 사람은 작곡자가 아니라 이 선율을 합창 악보로 편곡한 사람이다. 본래 이 선율은 16세기부터 프랑스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 선율로 작곡자를 알 수 없다. 선율에 붙여 부르는 성탄 가사인 ‘거룩하신 구세주여, 오소서(Venez Divin Messie)’는 17세기에 만들어졌다. 노트르담수도회 마리아 수녀(Frances Mary Lescher, 1825~1904)가 번역한 것으로 알려진 ‘O Come, Divine Messiah’라는 영어 가사가 널리 전해진다. 당시 이런 캐럴이나 찬미가들은 흔히 입당이나 퇴장 때 행렬용으로 부르던 찬미가였다.
성가의 원어 가사인 프랑스어 가사를 만든 이는 프랑스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펠르그랭(Abb Simon-Joseph Pellegrin, 1663~1745)이다. 그는 프랑스 무스티에생마리에 있는 성모의 종 수도회 수련자로 있었으나, 길을 바꿔 배를 타고 회계원으로 일했다. 1703년 파리로 돌아온 뒤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이듬해 당시 루이 14세 왕의 군사적 업적을 기리는 시를 썼고, 이것으로 ‘프랑스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그는 교황의 사면장을 받아 클루니의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지만, 거절했다. 그리고 루이 14세 왕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도비네(Franoise d‘Aubign)의 종용으로 그가 가난한 귀족 자녀들을 위해 세웠던 생시르 기숙학교에 머물면서 활동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칸티클(canticle, ‘마리아의 노래’와 같이 성경에 수록된 노래들)과 시편들을 번역하고 많은 성가 가사를 썼다. 이에 못지않게 세속적인 극장음악과 오페라 작품에도 열정을 보였다.
특히 작곡가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의 오페라 ‘이폴리트와 아리시’의 대본을 쓰며 함께 작업하기도 했는데, 이 오페라는 그리스 비극을 다룬 것으로 교회의 눈으로는 지극히 세속적인 내용이었다. 이런 작업들로 그는 “아침에는 가톨릭 신자, 저녁에는 우상 숭배자이며, 제대에서 성찬례에 참여하고 극장에서 술잔을 기울였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한편 그는 자신이 쓴 많은 성가 가사를 오페라나 민요와 같은 세속 선율에 붙여 노래로 만들기도 했다. 91번 성가도 그중 하나다.
원어 가사는 후렴을 포함해 4절로 구성된 대림 성가이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성탄을 언급하지 않는다. 반면 우리 성가책에는 “동정 마리아에서 탄생하옵소서”라는 구절을 삽입해 직접 성탄을 언급하는 성가로 바꿔 놓았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월 8일, 이상철 신부(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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