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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상의 소리 지상의 음악가: 주여 임하소서와 작곡가 로웰 메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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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26 조회수8,095 추천수6

[천상의 소리 지상의 음악가] ‘주여 임하소서’와 작곡가 로웰 메이슨

 

 

요즘에는 본당마다 성가집을 비치해 두고 있지만, 예전에는 성가집이 미사 참례의 필수품 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이 단성으로 된 성가집이건 사성부로 된 혼성 합창용이건 간에, 성가집은 신자로서 적극적으로 미사 전례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상징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지금의 가톨릭 성가집

 

1985년 3월 통일성가집편찬위원회가 편찬한 「가톨릭 성가」가 세상에 나온 지도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이 성가집과 관련하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의 「가톨릭 성가」(수정 보완판)에 수록된 528곡의 성가는 우리 신자들이 지난 세월 동안 어떤 음악들과 함께해 왔는가를 고스란히 담은 하나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가톨릭 성가」에 실린 성가는 중세에 만들어진 그레고리오 성가부터 한국 근현대 작곡가들의 곡까지 방대한 시공간을 망라한다. 음악 양식적으로는 또 어떠한가? 노래가 만들어진 시대가 다양한 만큼 다양한 양식의 곡이 수록되었다. 특히 399번 이후의 성가 가운데는 당시 대중음악의 영향을 받은 곡도 다수 엿보인다. 그런가 하면, 회중이 함께 부르기에는 너무 어려운 이른바 ‘음악회용’ 성가들도 있는 듯하다.

 

이 책에 담긴 성가들은 이제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우리 신앙생활 속 한 ‘소리의 풍경’(soundscape)이자, 교회 공동체와 관련한 공동체적 기억으로 남았음이 틀림없다.

 

이 책에 수록된 곡 가운데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의 순간이 자리하는 성가가 저마다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이 성가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어떤 곡을 꼽을까? 나는 성가 151번 ‘주여 임하소서’를 부를 때마다 가슴 저린 느낌이 든다.

 

“주여 임하소서 내 마음에 / 암흑에 헤매는 한 마리 양을 / 태양과 같으신 사랑의 빛으로 / 오소서 오 주여 찾아오소서.”

 

이른 아침 새벽 미사를 드리며 잠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나에게 이 성가는 새벽 시간의 고단함도 잊은 채 이 곡을 부르시는 어르신들의 목소리와 함께 기억되는 음악이기도 하다.

 

유독 이 곡을 부를 때 어르신들의 노랫소리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 소리 높여 이 성가를 부르시는, 나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어르신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는 주님께서 태양과 같으신 사랑의 빛으로 우리 안에 찾아오시기를 간청하는, 여전히 암흑을 헤매는 ‘한 마리 양’일 것이다.

 

영성체 전 빵을 쪼갤 때 바치는 ‘하느님의 어린 양’을 기도드린 뒤여서일까? 성체를 모시며 주님께서 나에게 오시기를 간청하는 기도를 노래하는 마음은 늘 간절하다. 이 곡이 장례 미사에서 불릴 때면 더욱 애절하게 들린다. 세상을 떠난 이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드리며 주님의 함께하심을 염원하는 마음이 애달프다.

 

 

영화 타이타닉과 ‘주여 임하소서’

 

이 성가는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한 영화 ‘타이타닉’(1997년)의 강렬했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해 준다. 이 영화는 실재했던 타이타닉호의 침몰 사건을 다룬다.

 

1912년 4월 영국 사우샘프턴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거대한 여객선 타이타닉호는 빙산에 부딪혀 서서히 침몰해 갔다. 구명보트에 오르지 못하면 죽을 것이 너무도 뻔한 이 상황에서 턱없이 모자라는 구명보트에 오르려는 사람들로 타이타닉호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그 한복판, 초호화 여객선에 오른 사람들의 여흥을 위해 연주하던 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탈출을 포기하고 ‘주여 임하소서’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곧 다른 연주자들이 가세해서 그 외롭던 선율을 4중주로 바꿔 놓는다.

 

영화는 ‘주여 임하소서’의 선율이 흘러나오는 그 순간, 아수라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음을 완전히 제거하고 음악의 아름다운 선율만을 남겨 놓는다. 이 장면의 주인공만큼은 타이타닉호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던 두 연인이 아니라 ‘주여 임하소서’라는 음악 그 자체인 듯하다.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에 이 음악을 배경으로 여러 장면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손을 꼭 붙잡고 침대에 누운 노부부, 아이들을 침대에 눕히고 자장가를 들려주며 안심시키는 엄마, 사랑의 순간을 추억하는 연인 등, 이들의 지난날과 현재, 기억과 현실은 죽음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 채 질서를 잃고 쏟아져 들어오는 물과 함께 뒤엉킨다.

 

이 혼란의 순간, 이들을 향한 구원의 빛은 여객선에서 음악가들이 연주하던 ‘주여 임하소서’에서 나온다. 이 영화의 가장 잔혹한 순간에 음악은 그 아름다움을 통해 삶의 모순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와 동시에 이 모든 상황 앞에서 인간은 그저 한낱 ‘길 잃은 어린 양’일 뿐이라는 사실이 음악 소리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필자가 ‘한 마리 양’을 떠올린 건, 오랜 시간 동안 가톨릭 성가집에 수록된 이 곡의 한글 가사와 함께했기 때문이다. 같은 음악이지만 한국의 개신교 찬송가인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과 영어권 찬송가인 ‘Nearer my God to thee’(나의 주님, 당신께로 더 가까이)의 가사는 「가톨릭 성가」의 ‘주여 임하소서’와는 다르다.

 

 

작곡가 로웰 메이슨

 

‘주여 임하소서’의 원곡은 19세기 미국의 작곡가 로웰 메이슨(Lowell Mason)이 작곡한 ‘Bethany’(베타니아)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메이슨은 그 당시 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미국 땅에서 미국 종교 음악의 역사를 태동시킨 인물이다.

 

오늘날 메이슨은 영미권의 가장 권위 있는 음악사 교과서인 「그라우트 서양 음악사」의 제7판(2006년)에서부터 19세기 음악사, 특히 종교 음악과 관련한 역사의 한 지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작곡을 배우긴 했지만,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음악인은 아니었다. 은행에서 일하며 틈틈이 교회에서 음악을 했던 비전문가 음악인이었다.

 

메이슨이 수집, 편곡, 작곡한 성가를 모은 성가집은 미국 개신교회에서 사용하는 찬송가집의 원조가 되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가톨릭 성가집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메이슨을 통해 19세기 초 미국 사회는 유럽 대륙에서 만들어지던 음악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참고로 그가 이 모음집을 내놓았던 시기에 베토벤과 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었다.

 

로웰 메이슨이 작곡하고 편곡한 곡은 가톨릭 성가집에도 다수 수록되었다. 그가 우리 가톨릭 성가집에 남긴 흔적들을 찾아보았다.

 

그가 작곡한 곡은 ‘주여 임하소서’ 말고도, 「가톨릭 성가」 6번 ‘찬미 노래 부르며’가 있다. 성가 118번 ‘골고타 언덕’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바탕으로 그가 편곡한 작품이며, 편곡자가 명시되지 않았지만 헨델이 작곡한 성가 484번 ‘기쁘다 구주 오셨네’ 또한 메이슨이 편곡했다.

 

* 정이은 안드레아 - 음악학자. 국민대학교에서 음악학을 가르치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홍콩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9년 2월호, 정이은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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