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회음악 이야기: 하인리히 비버의 묵주기도 소나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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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1-10-26 | 조회수1,747 | 추천수0 | |
교회음악 이야기 (4) 하인리히 비버 <묵주기도 소나타>
수줍은 꽃들이 만발하는 5월의 밤, 고즈넉한 낙엽 내음 스민 10월의 밤. 성당 마당에 모여 여럿이 함께 바치는 묵주기도 소리는 지친 맘을 달래주는 위로와 힘을 지닌다. 비록 지금 그 아름다운 시간에 가까이 모일 수는 없지만 서로 같은 음악을 들으며 묵상하고 위안을 삼아 본다. 1676년경 독일의 작곡가이자 비르투오소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하인리히 비버(Heinrich Ignaz Franz Biber, 1644-1704)는 <묵주기도 소나타>를 작곡하였다.
비버가 <묵주기도 소나타>를 작곡했던 시기는 반종교개혁운동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묵주기도는 신자들의 신앙심을 공고히 하기에 충분한 신심행위이자 마리아에 대한 공경을 통하여 가톨릭의 교리를 뚜렷이 드러내는 신앙의식이기도 하였다. 그 결과, 묵주를 지닌 마리아의 모습은 마치 반종교개혁 시기의 클리셰(cliché)와도 같았다. 이와 같은 열풍을 불러일으킨 묵주기도를 기악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은 몹시 희귀하지만 그중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 비버의 <묵주기도 소나타>이다.
사실 비버의 악보집에 제목 표지는 사라지고 없지만 각 신비가 시작되는 모든 악보에 좌측 <그림>과 같은 동판화가 새겨져 있어 <묵주기도 소나타>라는 이름을 갖기에 충분하다. 바이올린과 바소 콘티누오를 위한 이 곡은 환희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 각 5곡씩, 무반주 바이올린 파사칼리아(passacaglia)를 포함 총 16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스코르다투라(scordatura)라는 독특한 조율법으로 완성되어 각 신비의 내용에 맞는 특별한 음색을 지닌다. 또한 음악으로 구체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방법이 탁월한데<그림. 영광의 신비 1단>, 소나타 1번 ‘수태고지’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의 준엄한 메시지와 마리아의 응답, 소나타 2번 ‘엘리사벳을 찾아 가심’에서는 태중의 아기가 뛰노는 모습, 소나타 11번 ‘부활’과 12번 ‘승천’, 14번 ‘성모승천’에서는 북소리, 트럼펫 소리를 연상시키는 환호가 가득하다.
비버의 음악은 종종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을 우리 눈앞에 만들어 내는 창조의 능력이 절정에 이른 작품”이라 일컬어진다. 특히 소나타 11번 ‘부활’의 경우, 청각적 효과뿐 아니라 물리적 악기의 세팅에서도 십자가의 영광이 드러난다. 즉 실제 악보에 표기된 방식으로 악기를 조율하면 바이올린 브리지에서 가운데 두 현이 X자 모양으로 엇갈리며 십자가 형태를 띤다. 이처럼 <묵주기도 소나타>에서 비버가 사용한 다양한 조율 방식은 마치 “각각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보이지 않는 문을 여는 비밀의 열쇠”와 같다. 깊어가는 가을밤 <묵주기도 소나타>를 들으며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비밀의 열쇠를 찾아 그 신비 속으로 들어가보자.
[2021년 10월 24일 연중 제30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 주일) 대전주보 4면, 오주현 헬레나(음악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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