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가의 참맛: 밤은 내리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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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1-12-13 | 조회수1,772 | 추천수0 | |
[성가의 참맛] 「밤은 내리고」
밤이 내려 태양도 사라져 / 날선 바람, 차디찬 외로움 이 밤도 우리는 기도하니 / 실낱같은 새 희망의 기다림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불쑥 집 안으로 들어온 낯선 이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너무나도 놀랐지만 나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며 숨을 고른다. 등 뒤로 뜨는 아침 햇살에 얼굴도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제 곧 혼인하게 될 그이는 차치하더라도, 지금 갑자기 내게 아들이 생길 것이며 그가 장차 하느님의 가호 아래 어떤 큰 나라의 왕이 된다고? 말도 안 된다며 코웃음 치기에는 눈앞에 있는 이의 아우라가 심상치 않다. 맙소사, 하느님의 아들이라니.
문득 지난달에 만났던 엘리사벳 언니의 일이 기억난다. 갑자기 형부가 말을 하지 못하게 되고, 내게 조카가 생길 거라며 놀람 반, 두려움 반으로 내게 조심스레 고백하던 우리 언니. 아기가 나오고 해산한 뒤에나 놀러 가려 했었는데- 라는 생각들이 이렇게 저렇게 스쳐 지나간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건지 그 낯선 이가 곧바로 그녀의 일을 이야기한 것이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밤이 내려 고요에 물들어 / 구름마저 비켜서는 별빛 이토록 따스하게 빛나니 / 긴 슬픔을 달래주네, 다정히.
“여보, 이제 우리 출발해야 하는데 짐은 다 꾸렸소?”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준 그이. 그도 나처럼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간절하게 서로를 믿고 또 주님을 믿으며 이 길을 떠나야 한다. 아,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다. 점점 불러오는 몸도 그렇지만 요즘 나라가 뒤숭숭하니 좋지 않은 소문들도 많이 들려온다. 궁에서는 매일 연회가 벌어지고 임금은 자신의 왕권을 위해 무슨 일이든 서슴없이 한다는 이야기들. 이런 어두운 생각이 들 때면, 나는 리지 언니를 생각한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그 장난끼 가득했던 얼굴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행복한 기분이 든다. 석 달 동안 정말 즐거웠지.
그래, 하느님께서 함께해주신다고 하셨잖아. 나는 다시금 각오를 다진다. 비록 따스했던 집을 떠나와 낙타 위에서 한겨울의 칼바람을 맞으며 길을 재촉하고 있지만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 현실은 무겁고 냉엄하지만 내 옆엔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고, 주님께서 성령의 은총으로 함께하고 계심을 믿으니까. 오늘 내린 어둠이 걷히면 새로운 햇살이 따스한 나날을 품고 떠오르리라는 걸 믿기에, 이제 더는 두렵지 않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먼동이 터 되오르는 희망 누구일까, 저 귀한 아기는? 빛에서 나신 빛, 구세주여! 온 세상을 사랑으로 구하리.
[2021년 12월 12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의정부주보 4면, 까뮤(이새론 안토니오, 이운형 마리아, 김구환 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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