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8: 파스카 신비, 우리 삶에 스며들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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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04-27 | 조회수2,133 | 추천수0 | |
[전례 ·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 (8) 파스카 신비, 우리 삶에 스며들기를 “나는 부활하여 지금 너와 함께 있노라, 알렐루야”
- 독일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경당 복도의 부활하신 예수님 상.
격주로 가톨릭신문 독자 여러분을 찾아뵙는지라 인사가 조금 늦어버렸지만, 먼저 부활 인사로 이 글을 열고 싶습니다.
“많이 아프고 어려운 이 시대에 언제나 우리와 함께, 또 우리 앞서 걸어가시는 주님께서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시고 우리에게 부활이라는, 새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니 모두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4월은 참 많이 아픈 달입니다. 전례 주기 상으로 보통 성주간이 오는 때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가 겪어온 아픈 역사가 아직도 자꾸 현재화된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만물이 소생하는 때, 꽃이 활짝 피는 때, 따뜻한 바람이 부는 때이기도 합니다. 또 4월은 사순 마지막 시기와 성주간이라는 주님의 수난과 고통, 죽음을 묵상하는 시기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날들의 핵심인 파스카 성삼일은 바로 주님 만찬 저녁미사부터 시작해서 주님 부활 대축일을 모두 포함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은 파스카, 즉 ‘건너감’이라는 신비 안에서 우리 모두 주님의 부활에 초대받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겪어온 아픈 역사, 자꾸만 현재화되는 우리의 역사도 지금 어디쯤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참 건너가고 있는 도중이라고 믿게 됩니다.
주님의 죽음에서 부활로 건너가는 전례의 정점은 뭐니 뭐니 해도 파스카 성야입니다.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대영광송 이후로 침묵을 지켰던 오르간과 종이 파스카 성야 대영광송을 시작하면서 화려한 전주로 다시 소리를 냅니다. 물론 그 사이에 멋진 그레고리오 성가나 합창 음악을 많이 부르기는 했지만, 이제 노래는 더 화려합니다. 사제 혹은 선창자가 부르는 세 차례의 알렐루야는 음을 높여가면서 부릅니다. 수도원에서 제 전임자로 오랫동안 고운 목소리로 선창을 맡으시고 선창자들(cantores)을 지휘하셨던 장휘 엘마르 신부님은 이 알렐루야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첫 번째 낮은 알렐루야는 아직 누워계신 예수님을 조심스럽게 흔들어 깨우듯이 부릅니다. 두 번째 알렐루야에서는 그런 예수님이 벌떡 일어나신 모습을, 마지막 세 번째 알렐루야는 막혀있던 무덤 돌들이 굴러떨어지고,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이 환하게 퍼져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아니면 예수님 부활을 의심하고, 혹시나 하다가, 확신하고 선포하는 우리의 마음을 떠올려 볼 수도 있겠죠. 그래서 매번 음만 높아질 뿐 아니라 나중에는 예수님 무덤으로 달려가서 확인하는 베드로와 요한처럼 이 노래 속도도 달려가듯 부를 정도로 점점 빨리 부르게 됩니다.”
사실 이 알렐루야는 사순 제4주일 입당송 ‘Laetare Jerusalem’(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 첫 단어, Laetare의 멜로디와 겹칩니다. 바로 ‘주님’이라는 뜻의 ‘야’라는 음절에 오는 멜로디와 말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파스카 성야 알렐루야의 마지막 세 번째 환호는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하게 됩니다.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연주하고 또 노래하고 나면 파스카 성야 미사를 마칠 땐 이미 꽤 피곤합니다. 게다가 수도원에서는 밤 10시에 성야 미사를 시작하니, 마치고 나면 자정이 훌쩍 넘지요. 다른 수도회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제가 다녀본 베네딕도회 수도원들에는 파스카 성야 미사를 마치고 나면 기쁨을 함께 나누라고 푸짐한 먹거리와 마실 거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김없이 주님 부활 대축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사순 기간 절제했다가 먹고 마실 게 눈앞에 있으니 형제들과 오래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즐깁니다. 그러면 결국 몇 시간 못 자고 일어나서 다시 주님 부활 대축일 전례를 준비하게 되는데요,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바로 주님 부활 대축일 낮미사 입당송이 거의 ‘레’와 ‘파’로 이루어진 낮은 노래거든요.
마침 가사도 “Resurrexi, et adhuc tecum sum, alleluia”로 시작합니다. “나는 부활하여 지금 너와 함께 있노라. 알렐루야”라는 뜻입니다. 혹시나 이 곡을 들어보신다면 ‘후~’ 하고 한숨을 쉰 다음에 부르는 것만 같습니다. 그레고리오 성가에는 오늘날 우리가 ‘장조’, ‘단조’하듯이 선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8개의 선법이 있습니다. 이 선법들은 그 느낌이 아주 다릅니다. 그 가운데 제4선법은 한숨 쉬고, 탄식하고, 슬퍼하는 노래에 어울리는 선법인데, 가장 기뻐해야 할 이날에 이 선법을 사용합니다.
- 파스카 성야 미사 알렐루야 악보. 이장규 신부 유튜브 채널 갈무리.
그래서 마치 힘든 일을 다 치른 사람이 턱 걸터앉아서 한숨을 쉬듯이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예수님이 무덤가 침상에 걸터앉아서 ‘후~’ 하고 한숨을 쉬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희도 부활 아침은 꽤 힘듭니다. 밤새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알렐루야를 부르고, 형제들과 한잔하고 나서 맞이하는 부활 아침 말입니다. 그럴 때 이 노래로 시작하니 내뱉는 한숨과 들이시는 한숨이 교차하면서 힘을 얻게 됩니다.
이날 부르는 부속가 ‘Victimae paschali laudes’(파스카 희생께 찬미를)는 본래 총 7개의 절로 이루어져 있는 노래인데, 1절을 제외하고는 두 개의 절씩 같은 멜로디를 부릅니다. 이 노래를 잘 아시는 분들은 ‘마지막 절은 음이 같은 게 없는데?’하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잘 보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유다인들을 폄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6절이 생략된 노래입니다.
아쉽게도 솔렘수도원이 이 노래를 복원할 때 조금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바로 마지막 문장, ‘tu nobis, victor Rex / miserere’(우리의 승리자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로 문장을 중간에 끊은 건데, 6절을 이대로 끊어 부른다면 ‘quam Iudaeorum tur-/-bae fallaci’(거짓된 유다인 군중들보다), 즉 ‘turbae’라는 하나의 단어가 끊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7절은 원래 ‘tu nobis victor / Rex miserere’로 불러야 합니다.
아무튼 이 노래는 진중하고 참 멋진 노래입니다. 멋진 배우 강동원씨가 불러서만이 아닙니다. 바흐가 젊은 날 작곡하고 한참 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다시 연주할 정도로 마음에 들어한 ‘Christ lag in Todesbanden’(그리스도께서 죽음의 사슬에 놓여계셨도다)라는 칸타타, 그리고 같은 이름의 오르간곡의 원래 코랄, ‘Christ ist erstanden’(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도다)라는 오르간곡의 옛 독일어 찬미가 모두 주님 부활 대축일 부속가 멜로디를 주제로 삼아 작곡한 곡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부활 팔일 축제가 끝나는 부활 제2주일, 세례를 받은 새 신자들이 팔일 축제 내내 입던 흰옷을 벗는 날이라고 해서 ‘사백’(卸白)주일입니다. 부활 팔일 축제 내내 이 부속가를 부를 수 있는데, 그 마지막 날이기도 합니다.
때 묻지 않은 옷에서 자연스러운 옷으로 갈아입듯 파스카의 신비가 우리 삶에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또 어렵고 어지러운 세상이 자연스레 파스카가 가져다주는 순수함으로, 그게 당연한 평화의 세상으로 건너가기를 바랍니다.
[가톨릭신문, 2022년 4월 24일,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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