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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10: 음악의 기둥 -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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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5-24 조회수2,066 추천수0

[전례 ·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 (10) 음악의 기둥 – 조성


선법 이후 사용된 장 · 단조… 12개 조성마다 전해지는 느낌 달라

 

 

- 쿠바 헤수스 델 몬테 성당 옥상에서 바라본 아바나 시내 해질녘 전경.

 

 

정말 멋진 쿠바 하늘 아래에서 인사드립니다. 지난 5월 4일 자정 입국해서 아바나 외곽의 분원에서 하루를 보내고,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산호세(San José) 수도원에 이틀 다녀왔습니다.

 

제가 있는 곳은 헤수스 델 몬테 성당(Iglesia de Jesús del Monte)입니다. 몇 년 전 있었던 큰 폭풍우로 지붕이 무너지고 탑과 벽이 무너진 성당과 연결된 건물에, 네다섯 명이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분원입니다.

 

아바나 시내 중심가는 또 다르겠지만, 이쪽 동네는 우리나라 80년대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 1~2년 전부터 4세대 이동통신(4G)이 보급돼, 쿠바에 오기 전 들었던 것과는 달리 많은 사람이 길거리에서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다는 점이 조금 괴리감을 느끼게는 만들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이곳 성당 마당에서 온종일 공을 차고 매연을 내뿜는 차들이 도로를 지나다니며 쓰레기나 개똥을 조심하면서 다녀야 하는 영락없는 80년대 서울의 모습입니다.

 

며칠 전 아바나 시내에서 사고가 발생해 많은 분이 걱정해 주셨습니다. 쿠바에서 일어나는 사고가 우리나라에서 기사화될 일이 좀처럼 없는데, 큰일이었나 봅니다. 함께 생활하는 형제들이 쿠바는 안전 불감증의 나라라고 합니다. 안타까운 점은 안전 불감증이라는 게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라 미국에 의해 철저하게 봉쇄되다 보니, 건물을 유지·보수할 자재 자체가 없어서 몇 십 년 된 건물을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길을 가다 보면 언제 무너질까 위태위태한 전신주, 테라스, 벽, 지붕이 눈에 들어옵니다. 특히 각 건물을 지탱해주는 기둥이 큰 문제인데, 이곳 쿠바 공동체 원장을 맡은 장 아론 신부는 지난 몇 년간 한 성당에서 사목하면서 성당 건물을 떠받치는 주요 기둥들이 언제 무너질까 걱정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쿠바 산호세 수도원 주변 모습.

 

 

지난 호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음악 역시, 그 음악을 지탱해 주는 기둥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직 선법이 있던 시대의 음악, 그리고 다시 현대에 재발견되어 네오-클래식이나 네오-모달, 무엇보다도 재즈에서 사용하는 음악에는 각 선법이 이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렇다면 선법이 거의 잊혔던 시대, 그리고 지금까지 대부분 음악의 기둥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선법 가운데 이오니안과 에올리안이 발전한 장조와 단조라는 조성입니다. 물론 지금으로부터 한 백여 년 전후로 이 기둥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음악을 건축하고 있는 작곡가들도 많습니다만, 보통은 듣기 꽤 난해한 작품들이라 제가 감히 언급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도 각 선법이 어떻게 복잡하게 이루어졌는지 등을 이론적으로 말씀드리기보다는 각 선법이 주는 느낌을 말씀드렸는데, 오늘도 12개 장단조 조성이 주는 느낌을 함께 나눌까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조성이 주는 느낌이란, 오늘날 우리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각각의 조성이 주는 느낌을 말한 사람들이 바로 바로크 시대를 전후로 한 음악가·이론가들이기 때문인데요, 지금의 우리는 그때와는 다르게 모든 반음 사이의 거리가 거의 똑같게 조율된 악기들이 주를 이루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전자악기는 완벽하게 모든 반음을 한 옥타브 안에서 똑같이 나누어 조율했다고 하죠(물론 일부러 옛날 악기처럼 조율한 전자악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절대음감을 지니지 않은 이상, 어떤 노래가 높다고 하면 오르간 연주자가 반음이나 한 음을 낮추어 연주해도 보통은 전혀 이상한 점을 느끼지 않고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요즈음 고음악 연주자들이 작곡가들의 시대에 맞는 조율을 많이 하므로,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 음악을 즐겨듣는 분들, 바흐나 헨델을 사랑하시는 분들에게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조성의 느낌을 이야기한 음악가들 혹은 음악학자들은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유명한 ‘떼 데움’(Te Deum)을 작곡한 마르크-앙투안 샤르팡티에(Marc-Antione Charpentier)와 바흐 시대의 장-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는 특별히 프랑스인들이 조성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알려줍니다. 플루트의 발전을 이룩한 요한 요아힘 크반츠(Johann Joachim Quantz)와 오르간 구조와 음색의 발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오르크 요셉 포글러(Georg Joseph Vogler), 속칭 ‘아빠스’ 포글러(Abbé Vogler)도 있고, 시간을 로만틱 시대 뒤로 조금 미루면 유명한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과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도 조성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이야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자주 사용하는 조성을 장조 위주로, 바흐 시대 가장 유명한 이론가이기도 한 요한 마테존(Joahnn Mattheson)의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어떤 샤프(#)도, 어떤 플랫(b)도 붙지 않은 다장조(C-Dur)입니다. 다장조는 거칠고 날 것 그대로의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그래도 기쁨과 행복을 주는 조성입니다. 샤프를 하나 얹으면 사장조(G-Dur)입니다. 사장조는 말이 조금 많고 그래서 알랑거리면서 참견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그런 만큼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샤프 두 개의 라장조(D-Dur)는 날카롭고 고집이 셉니다. 시끄럽고 유쾌하지만, 전쟁을 묘사하는 데도 사용됩니다. 그래도 기운을 북돋아 주고 가장 편안한 조성이기도 합니다. 샤프 세 개의 가장조(A-Dur)는 반짝반짝 빛이 나지만, 공격적이기도 하고 슬퍼하며 탄식하는 수난의 분위기도 줍니다. 샤프 네 개의 마장조(E-Dur)는 절망 가득하고 아주 죽음의 분위기가 가득한 슬픔, 영육의 분리와 같은 통절한 슬픔을 보여줍니다.

 

플랫 하나의 바장조(F-Dur)는 마테존이 가장 칭찬을 아끼지 않은 조성입니다. 마치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이뤄내는 완벽하고 멋진 사람에 비길 수 있는데, 그 자체로 관용·침착·사랑 등 모든 종류의 덕을 보여주는 고귀한 조성입니다. 플랫 두 개의 나장조(B-Dur)는 유쾌하고 화려한데, 겸손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웅장하면서도 작고 사소한 것까지 모두 다루는 조성입니다. 플랫 세 개의 내림 마장조(Es-Dur)는 비장하고 진지하며, 한탄하는 성격을 띱니다. 이 조성은 모든 거만함의 숙적이라고 합니다.

장조들만 다루었는데도, 그 안에 슬픔이 담겨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당시 조율에 따라 플랫이나 샤프가 많아질수록 우리 귀에 화음이 괴상하게 들리게 되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옛사람들이 바로 이렇게 조율된 음악을 들었으니 장조라고 해도 단조만큼이나 슬프게 듣는 게 이상하지 않았을 겁니다.

 

인터넷 혹은 음반을 통해 옛날 방식으로 조율한 악기나 연주단체의 음악을 들어보시고 당시 작곡가들이 어떤 마음으로 작곡했는지를 느껴보시는 건 어떨까요.

 

[가톨릭신문, 2022년 5월 22일,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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