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12: 음(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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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06-20 | 조회수2,471 | 추천수0 | |
[전례 ·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 (12) 음(音) 화음에 화음 쌓아가며 익숙한 음에서 새로운 곡 만들어
며칠 전 멕시코 쪽 허리케인 영향으로 이틀 내내 쉬지 않고 큰비가 계속 내렸습니다. 그래서 어떤 건물들이 무너져 내렸다고도 하고, 도로와 집들이 온통 잠기면서 몇 명이 사고로 숨졌다고 합니다. 저희가 있는 곳은 아바나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성당이라 큰일은 없었지만, 하도 습해서 축축해진 침대 시트 때문에 쉬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날이 개고, 모처럼 침대 시트와 수건 등을 빨래해서 옥상에 널었습니다. 가을하늘같이 멋진 날씨에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있는데, 근처에 처음 보는 새 한 마리가 앉아 노래를 부릅니다. 처음 보는 새인데, 노랫소리가 꽤 맑고 박자도 참 독특합니다.
새의 노랫소리를 듣다가 새와 관련된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이 떠올랐습니다. 메시앙은 아주 독특한 곡들을 많이 남겼는데, 신앙심이 아주 깊었던 그는 예수님과 관련한 곡을 위하여 예루살렘의 새 소리를 수집하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새들의 노랫소리와 노래 박자를 수집하고서는, 특별히 예수님 일대기와 신학적인 주제를 다룬 오르간곡들에 집어넣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곡을 연주해 보면, 어떤 곡에서는 예수님 사건을 목격했던 새들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이 곡에서 노래로 그 신앙을 증언해주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됩니다.
물론 메시앙의 곡을 연주하는 것과 그냥 듣는 건 또 다르긴 합니다. 사실 악보 없이 그냥 듣기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거든요. 짧게 한 번 정도는 괜찮은데, 계속 듣고 있다 보면 조금 힘들다고할까요. 한번은 메시앙이 오르가니스트로 있었던 파리의 삼위일체 성당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했었는데, 우리 차례가 끝나고서는 드뷔시 생가를 찾아가 본다는 핑계로 도망을 친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메시앙도,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도 독특한 색깔로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들입니다. 메시앙은 독특한 박자만이 아니라, 박자보다도 더 유명한 메시앙만의 선법을 만들어냅니다. 그 가운데 ‘반음’과 ‘온음’이 계속해서 차례대로 반복되는 메시앙 제2 선법이 제일 유명합니다.
마침 지난 성령 강림 대축일의 그레고리오 성가 봉헌송(Offertorium)인 ‘Confirma hoc Deus’는 교황청과의 공동작업으로 가장 최근에 출판한 준표준판본(Editio iuxta typicam) 그라두알레 노붐(Graduale Novum)에 재미있게도 샤프(#)가 붙어있습니다.
- 성령 강림 대축일 봉헌송 ‘Confirma hoc Deus’.
1000년 전에 기보되지 않았지만, 당시 음악 이론과 관행에 따라 그레고리오 성가 학자들이 복원해서 붙인 건데, 그러면 노래 시작 부분에서 ‘시-도#-레/레-미/미-파-솔’이라는 ‘온음-반음-온음-반음’의 메시앙 제2 선법이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복원된 노래를 한번 불러보면 성령께 바치는 ‘굳건하게 하소서’(Confirma)라는 청원을 더욱 간절하고 깊이, 그리고 신비롭게 부르게 됩니다.
드뷔시 음악은 정말 아름다운 울림을 줍니다. 그가 화음을 7도, 9도, 11도, 이렇게 위로 겹치고 겹쳐 올리다가 결국 중요한 부분에서 자주 사용한 화음 가운데 하나는 바로 ‘도레미솔라’로 대표되는 오음음계, ‘펜타토닉’(Pentatonik)입니다. 그래서 드뷔시 음악을 들을 때 분명 절정이고 음이 엄청 많은 것 같은데 동시에 음과 음 사이의 공간이 꽤 크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가만 살펴보면 펜타토닉을 화음으로 쌓아 올린 때가 많습니다.
언뜻 보면 메시앙이나 드뷔시 모두 아주 새롭게 자기만의 음악을 처음으로 개척한 사람들인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음악이든, 어떤 사상이든 어느 날 뚝 떨어진 건 없습니다. 음악도 낭만 시대의 쇼팽, 슈만, 리스트를 거치면서 화음에 화음을 쌓아가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13도까지 쌓게 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13도 화음은 ‘도’를 기준으로 했을 때 ‘도-미-솔-시♭-레-파#-라’가 되는데, 결국 ‘도-레-미-파#-솔-라-시♭’라는 한 옥타브 안의 일곱 음이 됩니다. 이 화음, 이 음들이 왜 중요하냐면, 우리가 어떤 하나의 음을 들을 때 우리도 잘 모르는 사이에 듣게 되는 모든 음이 바로 이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어려우시지요? 예를 들어 우리가 피아노 건반으로 ‘도’를 칩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우리도 모르게 ‘도-도-솔-도-미-솔-시♭-도-레-미-파#-솔-라-시♭’의 음들을 듣게 됩니다. 여기에 ‘배음’이라는 거창한 표현이 붙긴 하는데, 우리 귀는 강하게 나기도 하고, 배음 안에 가장 많이 들어있기도 한 ‘도’를 ‘도’라고 알아듣게 됩니다. 그리고 ‘솔’이 다음으로 많아 ‘도’는 ‘솔’과 잘 맞습니다. 그래서 ‘도’와 ‘솔’을 동시에 쳤을 때 뭔가 딱 들어맞는 느낌이 납니다. ‘완전 5도’라고도 표현합니다. 다음으로 화음을 좌우하는 ‘미’, 도미넌트 화음을 만드는 ‘시♭’이 옵니다. 여기까지가 첫 음부터 7번째 음까지이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음들입니다. 그런데 8번째 음부터 11번째 음까지는 온음들이 이어집니다. 한편 10번째 음부터 14번째 음까지는 온음과 반음이 반복됩니다.
메시앙은 우리가 이미 우리 안에 가지고 있던 이 음들을 가지고 고유한 선법을 만들었습니다. 드뷔시는 인간의 가장 기본인 펜타토닉 다섯 음과 더불어 앞서 말한 13도 화음, 즉 8음부터 14음까지의 일곱 음을 쌓은 화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 이 일곱 음은 일반적인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일곱 음과는 다른 제2의 일곱 음이라고 해서 ‘헵타토니아 세쿤다’(heptatonia secunda)라고도 하고, 어쿠스틱 조성(Akustische Tonalität) 이라고도 합니다. 스크리아빈(Skriabin)도 이 어쿠스틱 13도 화음을 가져다가 거기에서 제5음, ‘솔’만 빼놓고 화음을 만들고서는 ‘신비 화음’(Mystische Akkord)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한편 메시앙도 어쿠스틱 화음과 비슷한 화음을 만들기는 했는데 조금 다릅니다. 왜냐하면 프랑스인들은 배음 13번째 음을 ‘라’가 아니라 ‘솔#’으로 듣거든요. 그래서 마지막 배음은 ‘솔-라-시♭’가 아니라 한 음이 더 추가되어 ‘솔-솔#-시♭-시♮’의 15개 배음이 됩니다.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메시앙의 곡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여기서는 주말만 되면 스피커가 있는 집마다 새벽 3시까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추면서 떼창을 하거든요. ‘에라 잠을 못 잘 바에 메시앙이나 듣자’ 했다가 이래저래 생각할 게 많아져 더 뒤척이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또 어쿠스틱 조성을 쓴 드뷔시와 스크리아빈, 그리고 거슈윈의 음악을 듣고는 편하게 잘 수 있었습니다. 모두 우리 귀에 들리는 소리로 만든 곡들이지만 하나는 묵상을, 하나는 차가운 편안함을, 하나는 신비를, 하나는 신나는 기분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다가 궁금해집니다. 지금 우리 귀로는 듣지 못하는 더 많은 배음, 혹은 더 작은 소리, 그리고 지구의 소리와 우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때가 온다면 무엇을 배우게 될까요.
[가톨릭신문, 2022년 6월 19일,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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