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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가의 참맛: 가톨릭성가 286번 순교자의 믿음(Faith of our Fa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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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9-04 조회수3,251 추천수0

[성가의 참맛] 가톨릭성가 286번 〈순교자의 믿음〉(Faith of our Fathers) (상)

 

 

영국에 93년 동안 이어져 온 출판사가 있습니다. 페이버 앤드 페이버 사(Faber and Faber Limited)인데요, 영국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T. S. 엘리엇이 편집자 및 감독직을 역임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출판사의 설립자 제프리 페이버의 종조부(great-uncle)는 영국의 가톨릭 사제 프레드릭 윌리엄 페이버(Frederick William Faber)인데요, 바로 오늘 참맛 성가의 작사가입니다.

 

페이버 신부는 마흔아홉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작고할 때까지 150여 개의 성가를 작사하였는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 바로 <우리 아버지들의 믿음>(Faith of our Fathers)입니다. 국내에선 1973년에 편찬된 『가톨릭 공동체의 성가집』에 <순교자의 믿음>이란 제목으로 실리게 되었습니다.

 

1517년 독일, 당시 아우구스티노회 수사 및 비텐베르크 대학의 윤리신학 교수였던 마틴 루터는 『95개조의 논문』(Ninety-five Theses)를 발표했고, 이를 촉매로 종교 개혁의 바람이 유럽 전역에서 불기 시작했습니다. 1534년, 영국의 국왕 헨리 8세 또한 이런 시류에 편승하여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를 국교로 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자신이 나라의 정치적 수장인 동시에 종교의 수장이 됩니다. 이후 개신교인들(Protestants), 가톨릭 신자들(Catholics), 성공회 교인들(Anglicans)뿐 아니라 다양한 그리스도교 분파들이 영국 내에서 서로 다투고 싸우면서 종교적, 정치적 갈등이 점점 커졌고, 이는 서로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처형으로 이어졌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피를 흘리며 화형과 참수로 순교하였지요.

 

시간이 흘러 1845년 영국, 당시 성공회 신부였던 페이버는 평소 깊이 존경하던 존 헨리 뉴먼이 옥스퍼드 운동을 주도하며 가톨릭으로 개종함에 따라 자신도 개종하여 가톨릭 신부가 됩니다. 1847년, 첫 미사를 드리며 가톨릭 사제의 삶을 시작한 페이버는 성모 신심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2년 뒤인 1849년, 3세기 전 피를 흘리며 죽어갔던 가톨릭과 개신교 순교자들을 기리며 성가를 한 곡 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아버지들의 믿음>입니다. 이후 이 곡은 영국,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및 미국에서 가톨릭과 개신교를 망라하여 널리 불리며 사랑받는 성가가 되었습니다. 물론 개신교 찬송가에선 성모신심에 대한 부분이 제외되었지요.

 

Faith of our Fathers! living still

In spite of dungeon, fire, and sword:

Oh, how our hearts beat high with joy

Whene'er we hear that glorious word.

우리 아버지들의 믿음이여

지하감옥과 불과 검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네

그 영광스러운 말씀을 들을 적마다

우리의 가슴이 기쁨으로 요동치오

 

Faith of our Fathers! Holy Faith!

We will be true to thee till death.

아버지들의 믿음! 거룩한 믿음!

죽더라도 우리는 당신께 참되리라

 

[2022년 9월 4일(다해) 연중 제23주일 의정부주보 7면, 까뮤(이새론 안토니오, 최슬기 마리아, 고윤서 마리스텔라, 이운형 마리아, 김구환 루까)]

 

 

[성가의 참맛] 가톨릭성가 286번 <순교자의 믿음>(Faith of our Fathers) (하)

 

 

1845년 조선, 우리네 믿음의 조상들은 최초의 조선인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맞이하였고, 무려 한 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모진 박해와 거친 풍파에도 그 신앙을 누구보다도 굳건히 지켜왔습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인들의 탄압과 처형에도 굴하지 않았던 것처럼 조선의 천주교도들도 신앙을 위해 그리고 진리와 정의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지요.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원하면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1900년대 후반 미국, 프레드릭 윌리엄 페이버 신부가 순교자들을 기리며 만든 성가 가사 <우리 아버지들의 믿음>은 영국에서는 전통 선율 소튼(Sawton) 가락을 통해 불렸지만, 미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영국의 작곡가 헨리 프레드릭 헤미(Henri Frederick Hemy)가 작곡하고 제임스 조지 월튼이 편곡한 <성 캐서린>(ST. CATHERINE)의 성가 선율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75년 대한민국, 살레시오회의 원선오 빈첸시오(Vincenzo Donati) 수사 신부와 수원교구의 이종철 베난시오 신부, 메리놀회의 조영호(DePorres Stilp) 수사는 주교회의의 새로운 지침에 응하여 새로운 성가집을 발간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쇄신된 전례에 사용될 수 있도록 전통적인 성음악뿐 아니라 새롭게 작곡되고 또 소개되는 성가들이 담긴 성가집이었죠. 바로 『가톨릭 공동체의 성가집』입니다. 이 책에 <우리 아버지들의 믿음>이 <순교자의 믿음>으로 번역되어 <성 캐서린> 선율과 함께 275번으로 수록되었습니다.

 

“전례 거행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톨릭 성가를 대중화하고 개발 육성하기 위하여 각 교구마다 인재를 모아 작곡 작사를 시도하고 경시대회 같은 방법을 통하여 개창 운동을 전개하며 이런 식으로 성가를 발전시킨 후 몇 년 후에 엄격한 심사를 전국적으로 실시하여 가톨릭 성가집을 발간한다.”(1973. 10. 30. 추계 주교회의 정기총회 서문에서)

 

2022년 현재, 1900년대와 20세기 그리고 21세기를 거치며 영국의 페이버 신부, 이탈리아의 도나티 신부, 미국의 스틸프 수사, 한국의 이종철 신부를 통해 성가 <순교자의 믿음>이 우리에게 전해진 것처럼, 우리는 믿음의 조상들로부터 그 신앙을 이어받았습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바쳐 신앙을 지켜온 그들. 덕분에 우리는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본받아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순교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각자의 위치에서 신앙을 굳게 지켜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혹의 박해를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믿음의 조상들을 기억하며 이 성가, 함께 불러보지 않으시겠어요?

 

“Faith of our Fathers, living still-.”

 

[2022년 9월 11일(다해) 연중 제24주일 의정부주보 7면, 까뮤(이새론 안토니오, 최슬기 마리아, 고윤서 마리스텔라, 이운형 마리아, 김구환 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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