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음악칼럼: 바이올린으로 바치는 묵주기도, 비버 묵주 소나타(Rosary sonata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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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10-10 | 조회수1,464 | 추천수0 | |
[음악칼럼] 바이올린으로 바치는 묵주기도, 비버 ‘묵주 소나타’(Rosary sonatas)
1905년 출판될 때까지 약 230년 동안 독일 뮌헨의 한 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던 악보가 있습니다. 발견 당시 이 필사본의 표지는 이미 소실되어 제목을 알 수 없었으나, 열다섯 곡의 시작마다 곡 내용을 암시하는 동판화가 새겨져 있었지요. 그 판화는 예수님의 잉태부터 성모승천까지 이어지는 묵주기도의 신비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후 이 곡은 ‘묵주 소나타(Rosary sonatas)’, ‘신비 소나타(Mystery sonatas)’ 또는 ‘동판화 소나타(Copper-Engraving sonatas)’라는 제목으로 불렸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하인리히 비버(Heinrich Ignaz Franz von Biber, 1644-1704, 오스트리아)의 작품입니다. 바흐보다 40년 정도 앞서 보헤미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비버는 20대 중반 이후, 잘츠부르크에 정착해서 궁정, 교회 음악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면서 작곡가로서 수많은 교회음악과 세속음악을 작곡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악기에서 새로운 음색을 찾아내고 음악적 효과를 높이려는 실험적 시도를 한 개혁적인 음악가였습니다. 그래서 바이올린의 기존 조율 방식이 아닌, 현을 하향 또는 상향 조정하여 특이한 음색, 새로운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독특한 조율 방식을 사용했는데, 스코르다투라(scordatura)라는 조율 방식입니다. 비버는 이 스코르다투라를 <묵주 소나타>에 다양하게 적용해서 이 곡을 드라마틱한 동시에 신비로우면서 매력적인 음악으로 만들었죠. 곡마다 다른 조율로 묵주기도 내용에 부합하는 음악적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는데, 특히 11번 ‘부활’에서는 바이올린의 두 번째 줄과 세 번째 줄을 서로 교차되게 줄감개에 걸어서 악기에 십자 형태가 만들어지게 조율 지시를 해놓았습니다. 이런 식이다 보니 연주자에게는 아주 까다로운 곡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코르다투라 조율 자체가 표준적인 조율 방식이 아니다 보니 평소와 다른 음이 나와 연주자가 혼란스럽기 쉽고, 화음을 내기 위한 주법, 확장된 음역에서 빠른 연결 등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비버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이런 것들이 전에 없던 새로운 연주법이었기에 더욱 어려웠다고 하죠. 이는 이 곡이 1676년경에 작곡됐지만 오랜 동안 잊혀왔던 이유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바치는 묵주기도에 지금은 ‘빛의 신비’가 추가되었지만 비버가 작곡할 당시에는 ‘환희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 5단씩 총 15단만으로 구성된 형태였기에 비버는 열다섯 곡의 짧은 소나타(여기서 ‘소나타’는 소나타 양식의 곡이 아니라 단지 기악곡을 의미)를 쓰고, 마지막에 ‘파사칼리아(passacaglia: 원래 17세기 초엽 스페인의 춤곡이었지만 바로크 시대에는 변주곡 형식의 느린 3박자의 독립 기악곡이 됨)’로 마무리했습니다. 열다섯 곡의 소나타는 1번 ‘주님 탄생 예고(The Annunciation)’로 시작해서 15번 ‘천상 모후의 관을 씌우심(The Beatification (or Coronation) of the Virgin)’까지, 각 곡마다 15단 묵주기도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10월 묵주기도 성월에 그 옛날 신심 깊은 비버가 작곡한 바이올린 연주로 바치는 묵주기도는 우리의 묵상을 더 깊이 있게 해주리라 생각합니다.
[2022년 10월 9일(다해) 연중 제28주일 서울주보 6면, 임주빈 모니카(KBS프로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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