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음악칼럼: 앞서간 영혼을 위로하고 싶을 때,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Nimro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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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11-12 | 조회수1,606 | 추천수0 | |
[음악칼럼] 앞서간 영혼을 위로하고 싶을 때,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Nimrod)’
지난 달 이태원 참사의 안타깝고 비통한 죽음을 애도할 때, 방송에서 많은 추모곡이 흘렀었습니다. 그 중에는 지난 9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시, 잉글리쉬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공식 유튜브 계정에 여왕을 추모하며 올린 음악도 있었죠. 에드워드 엘가(Sir E. W. Elgar, 1857~1934, 영국)의 <수수께끼 변주곡(Enigma Variations)> 가운데 ‘님로드(Nimrod)’입니다. 이 곡은 종종 추모용 음악으로 선택됩니다. ‘영원한 빛을 비추소서….’라는 가사를 붙여 성악곡으로 편곡해 부르기도 하죠. 아다지오(adagio)로 느리게 연주되는 ‘님로드’의 아름다운 선율이 듣는 이를 자못 슬프고 경건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곡이 애초에 추도용으로 작곡된 것은 아닙니다. 1898년 어느 날, 엘가가 별생각 없이 피아노 즉흥 연주를 하고 있을 때, 그의 부인이 이를 듣고 멜로디가 좋다면서 더 연주해보라고 하죠. 평소 엘가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던 아내의 말에 힘입어 엘가는 이 곡을 여러 변주로 확장시켜 연주해봅니다. 그리고 이듬해 ‘주제와 열네 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관현악 작품으로 발표하죠. <수수께끼 변주곡>의 탄생입니다. 왜 ‘수수께끼’라는 제목이 붙었을까요? 이는 엘가의 유머감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곡의 변주곡 하나하나에는 첫 글자만 표기한 이름, 또는 누군가를 연상할만한 단어들이 소제목처럼 쓰여 있는데, 이를테면 제1변주에는 엘가의 부인, 캐롤라인 앨리스 엘가 이름의 약자 ‘C.A.E.’, 마지막 제14변주에는 아내가 엘가를 부르는 말 ‘E.D.U.’가 쓰여 있는 것이죠. 그리고 다른 변주들도 음악가, 출판업자, 배우, 건축가 등 모두 엘가 부부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을 묘사해놓고 알쏭달쏭한 제목을 붙여놓았습니다. 그래서 각 변주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알아맞히는 것이 하나의 수수께끼이고, 또 하나의 수수께끼는 엘가가 이 곡 안에 숨겨놓은 ‘더 큰 주제’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엘가는 이 주제를 잘 알려진 선율이라고만 하고 수수께끼로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엘가 주변인과 학자들이 추정하는 곡이 여럿 있지만 정답을 말해줄 사람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난 엘가뿐입니다.
<수수께끼 변주곡>의 제9변주 ‘님로드(Nimrod)’는 엘가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베토벤의 정신을 상기하라며 격려해준 출판업자 아우구스트 예거(A. J. Jaeger)와의 우정을 그린 곡인데, 님로드는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 ‘니므롯’을 말합니다. 노아의 증손자인 니므롯은 성경에 ‘장사’이며 ‘용맹한 사냥꾼’이라고 쓰여 있죠 (창세 10,8-9). 독일 출신인 예거의 성(姓)이 독일어로 ‘사냥꾼(Jäger)’을 말하기 때문에 성경에서 사냥꾼으로 나오는 니므롯(님로드)을 갖다 붙인 것입니다. 독일어도 알고 성경 내용도 알아야 맞출 수 있는 지적인 수수께끼지요. 이 곡의 제목에서는 이렇듯 재치가 엿보이지만 듣기에는 경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세상을 떠난 영혼을 위로하는 11월 ‘위령성월’에 딱 맞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22년 11월 13일(다해)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서울주보 6면, 임주빈 모니카(KBS프로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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