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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성체 때에 성가부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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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헌 쪽지 캡슐 작성일1999-06-21 조회수2,326 추천수3 반대(0) 신고

영성체 때의 성가 부르기

 

이미 아우구스틴 (354-430) 성인의 시대 때부터 영성체 행렬 때에 시편을 노래하는 것은 교회의 관습이었다.  가장 사랑을 받던 시편은 34편으로 특별히 9번째의 구절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 때문에 영성체 성가의 가사로 많이 애용되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어린 양' 노래의 길이가 길어짐에 따라 그리고 아마도 영성체자 수의 감소로 말미암아 시편의 구절들은 삭제되기에 이르렀고 후렴만이 영성체 후에 노래불리어졌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로운 미사통상문은 이 성가를 영성체를 배령할 때에 부르는 노래로 다시 복구하였다.  사제와 신자들의 영성체는 하나의 예식임으로 영성체 성가는 사제가 성체를 영할 때부터 시작하여 적당한 때까지 계속된다. 비록 다른 적합한 성가들이 일치를 표현하고 주님과의 만남, 그리고 기쁨을 표현한다 하더라도, 교회는 시편 본문을 가사로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만약 영성체 때에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면 미사 경본에 나오는 후렴 (영성체송)을 신자들이나 독서자 혹은 사제 본인이 신자들에게 성체를 분배하기 전에 낭독한다.

 

 

사제와 신자들이 영성체 하는 동안 영성체송을 노래한다.  이로써 영성체자들의 영신적 일치와 마음의 기쁨을 소리 맞춰 표현하며, 영성체 행렬을 더욱 형제답게 만든다.  (로마 미사경본의 총지침 56i).  영성체 동안의 성가로는 로마 성가집의 응송이나 시편을 사용할 수도 있고 주교단에서 인준한 다른 성가를 사용할 수도 있다.

 

만약 영성체 동안의 성가의 가사를 시편에서 취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1969sis 11월 미국 전체 주교회에서 정한 아래의 기준을 참조하면 좋겠다. 즉 영성체 노래는 일치의 느낌을 강화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따라서 이 노래는 단순하여야 하며 신자들이 이성가를 노래부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이 노래는 그리스도 지체 안에서의 일치의 기쁨에 대한 표현을 나타내고, 미사에서 거행되고 있는 신비의 완성을 표현한다. 대다수의 성체 강복 때의 찬미가들은 통교보다는 성체에 대한 흠숭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영성체 노래로 사용할 수 없다 (공의회 문헌 Instruction on music in liturgy 36항에서 지시하는 바임, 미국 주교회의가 각 교구에서 로마 미사경본 총지침에 관한 부록 56i 항에서 지시)

 

일반적으로 교회 전례력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부활시기, 사순절, 성탄시기 그리고 대림시기 동안의 영성체 때에는 그 전례 시기에 적절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사실상 바람직하다. 이 시기를 제외한 전례시기에는 전형적인 성가를 영성체 행렬 때에 사용할 수 있고 준비된 이러한 가사들은 매 주일의 파스카적인 특성과 상반되지 않는다 (전례헌장 102항, 106항)

 

위의 기술한 사항들이 하나도 적용되지 않거나 영성체 노래가 없다면 미사경본에 있는 후렴을 외운다.

 

주님의 명령에 따른다면 영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우리 신자들은 미사에 완전하게 참여하는 것이 된다. "너희는 이 빵과 포도주를 받아 먹고 마셔라....." (마태 26, 26-27).  만약 누가 미사에 참여만 하고 영성체를 하지 않는다면 그는 미사에 진정으로 참여하는 것이 못된다. 그러나 옛날에는 이렇게 참석만 하는 것이 상당히 일반적인 것이었다.  신자들은 가끔 미사 전에 영성체 하였다.  그리곤 미사 동안에 그들은 마음 속으로 상징적인 영성체를 하였으며 사제는 그들 대신으로 영성체 하였다. 이런 대리 영성체는 '독송미사' (low Mass)에서는 상당히 흔한 것이었다. 즉 반드시 노래로 하여야 할 독서를 사제가 성가대 대신 읽고, 독서자를 대신하여 주례석에서 사제가 독서를 하였으며, 신자들을 대신하여 사제가 영성체를 하였다.

 

이런 상태가 영성체 노래에 상당히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 즉 신자들의 영성체가 없었기에 영성체 노래는 사제의 영성체 후의 노래가 되고 말았다.  모든 신자들이 앉아 있는 동안, 사제는 성직자의 사각모자를 쓰고 그레고리오 성가 후렴을 불렀다. 영성체 성가의 의미를 다 상실하고 말았다. 이런 역사적인 변천을 생각하면서 영성체를 함으로써 미사에 적극적이고도 완전한 참여를 하여야겠고, 다시 찾은 영성체 노래를 다 같이 부르도록 노력하여야겠다.

 

무엇보다도 본당의 성가대 지휘자 혹은 음악지도자는 우선 영성체 노래를 선택하는 데 가장 신경을 써야 한다.  위에서 말한대로 영성체 노래는 영성체자들의 하느님과 그리고 영성체자들과의 "영신적 일치와 마음의 기쁨을 소리맞춰 표현하며, 영성체 행렬을 더욱 형제답게 만든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노래를 선택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가진 '가톨릭 성가'에는 주님과의 일치와 통교, 하느님을 영접하는 기쁨을 나타내는 영성체 노래 이외에 성체 강복 때에나 사용할 수 있는 성체 흠숭, 찬송의 노래가 너무나 많다. 영성체 때에 노래할 수 있도록 성가집에 분류되어 있는 모든 라틴어로 된 성가들 (성가 번호 183-198까지. 여기에는 O Salutaris Hostia의 가사를 가진 성가와 Tantum Ergo의 가사를 가진 성가 그리고 Panis Angeliscus 의 가사를 가진 성가들이 모두 포함된다)은 미사의 영성체 행렬 때에는 절대(!!!!!) 사용할 수 없다. 이런 성가들 모두는 성체 강복 때에 사용하는 노래들이기에 성가집에서는 삭제되는 것이 바람직하고 대신 성가대를 위한 합창곡집에 삽입하기를 바란다. 한국 교회는 다시 한번 교회의 가르침을 상기하기 바란다.

 

그 다음 한국어로 된 영성체 성가 중에서도 이런 성체 흠숭과 찬미의 노래들은 노래하지 말아야 한다. (152 오 지극한 신비여; 161 성체를 찬송하세; 162 성체 성혈 그 신비; 163 생명의 성체여 (?); 164 떡과 술의 형상에 (?); 167 생명이신 천상 양식; 168 오묘하온 성체 (?); 169 사랑의 성사(?); 176 믿음 소망 사랑 (?); 178 성체 앞에; 180 주님의 작은 그릇; 181 신비로운 몸과 피 (?)).   한국어로 된 성가들은 시인들과 함께 각 성가들의 주제들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만 적어도 라틴말로 된 영성체 성가 모두와 한국어로 된 성체 흠숭, 찬미의 노래를 영성체하는 동안에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모두가 성체 강복 때에 부르는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노래들만큼은 절대로 (!!!!!!!!) 영성체 행렬 중에 신자들이 노래부르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목자들, 교회음악가들은 명심해 주기 바란다.

 

영성체 노래와 관련해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시편들을 그 가사로 사용하기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교회음악가 작곡가들은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애용되어온 시편들을 가사로 하여 작곡하도록 권고한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한국어로 된 성가들 중 성체 흠숭과 찬미의 노래를 미사 중에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영성체 노래 역시 상당히 부족한 것을 느낀다. 시편 34 (33)는 이미 4세기에 온 세계 교회에 공통적으로 사용되었다. 특별히 구절 6과 9는 영성체 예식에 아름답게 사용되었다.; 시편 145 (144) 역시 영성체때 사용되었음을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354-407)가 증명하고 있다.  이 두 개의 시편은 일년 내내 사용되었다고 한다.

 

위의 두 시편 이 외에도 교회 전통과 전례는 아래 시편들을 사용하여 성체 성사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시편 23(22) 특별히 구절 5; 시편 42(41) 특별히 구절 2; 시편 43(42) 특별히 구절 4; 시편 84(83) 특별히 구절 2-3; 시편 104(103) 구절 14-15 그리고 27-28; 시편 116(115) 구절 12-13; 시편 128(127) 구절 3; 시편 136(135) 구절 25; 시편 147 (147B) 구절 12와 14. 위의 시편들을 잘 연구하여 많은 영성체 노래가 작곡되기를 바란다. 이렇게 가사의 중요성을 생각하노라면 청소년성가집과 청년성가집의 많은 성가들의 가사들이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도 말씀 드린대로 이 성가는 신자들이 영성체를 위한 행렬을 하면서 불러야 하기 때문에 선율이나 가사 모두를 기억하기 쉽고 노래부를 수 있도록 후렴을 가진 노래가 가장 바람직하다. 예를 들면 35번의 '나는 포도나무요' (비록 연중성가로 분류되어 있고, 후렴이라고 악보에 적혀있지 않지만, 이 노래는 아주 좋은 영성체 노래이며 앞의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그 가지라"하는 부분을 후렴으로 이용할 수 있다) 같은 노래이다. 이런 종류의 성가를 이용하면 신자들은 영성체하러 가는 행렬 중에서도 신자들은 성가책 없이도 그 후렴을 노래할 수 있다.

 

영성체하는 동안 신자들이 한 곡을 연주하고 성가대가 특송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신자들은 노래부르기 위해 성당에 오는 것이 아닌 만큼 좋은 방법이라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실상 이 때에 부를 노래가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 한국 교회의 문제이다.  그래서 개신교의 노래들을 성가대들이 많이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개신교에는 성체성사를 인정하지 않는 만큼 가사에 문제가 많다.  우리 교회음악 작곡가들이 분발해야 한다. 미사곡과 찬미가 style 말고는 거의 작곡을 하지 않기에 그런대로 그럴듯한 대곡의 합창곡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본인이 너무 과문해서인가? 물론 몇곡 알고 있지만 작곡가를 밝힐 수 없는 심정을 이해해 주시 바란다)  동요 비슷한 4성부의 찬미가들 말고 합창단을 위한 합창곡을 구경하고 싶다.  오늘도 각 성가대 지휘자들은 이 부분 혹은 영성체 후 묵상시간에 부를 성가를 찾느라고 혈안이 되어 있음을 작곡가들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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