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오 성가의 시각화
중세의 유럽사를 보면 종교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상태에서 감각에 대한 극단적인 반감
이 생겨나게 되는데, 그 이유는 감각적인 것은 신적인 것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
었다. 즉, 예수님은 감각적 자연으로부터 초월하여 너무나도 높은 곳에 계시기 때문에 지상
의 물질을 가지고 인간의 모습을 본떠서 표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감각적인 예술은 인간적인 것이므로 제거되야 한다는 주장이 생겨나게 되고 AD
306년 엘비라 종교회의와 AD 754년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에서 "감각적인 것을 제거하라"
고 결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성상파괴운동"이 일어나 많은 조각품과 성화(Icon) 등이 파괴되었다. 마찬가지
로 교회내에서의 음악행위도 인정되지 않았고, 교회내에서의 기악연주가 금지되었다. 그러
나 그레고리오 성가만은 허용이 되었다. 그 이유는 감각적인 것이 배제된 표정의 내향성과
거의 수평적인 선율에서 오는 안정감 때문이었다. 당시의 로마네스크라고 불리던 로마의
교회양식은 수평선을 강조하는 바실리카(Basilica)양식으로 그레고리안 챤트의 시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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